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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한재의 영정을 모신 구봉영당(九蜂影堂)
황경수 | 승인 2019.12.16 08:45

구봉영당(九蜂影堂)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2리 25-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29호로 지정된 구봉영당은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공인(左翼功臣) 1등으로 이름을 올렸고,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에 봉해진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종가에서 옮겨왔으며 1895년(고종32)에 고령 신씨(高靈申氏) 문중에서 매년 3월 5일과 9월 5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영당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좁은 골목을 들어가다 보면 나무로 된 안내판과 함께 정려가 보인다. 자연석 계단이 길게 놓인 길을 따라 오르면 3칸으로 된 대문이 있고, 자연석과 시멘트로 담장을 두르고 기와를 올려 전통미를 더했다.

지금의 영당은 1982년에 중건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된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내부는 통간 마루방에 3개의 쌍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구봉영당(九蜂影堂)’이라고 쓴 현판을 달았다. 내부에 모신 영정(影幀)은 1445년(세조1)에 그린 좌익공신상(左翼功臣像)이며 관복을 입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크기는 가로 110cm, 세로 167cm의 먹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으로 보물 제6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른쪽에 보한재 신숙주의 얼굴을 주로 그린 화상(畫像)임을 알리는 ‘조선영의정고령부원군시문충호보한재신숙주자?옹진(朝鮮領議政高靈府院君諡文忠號保閑齋申叔舟字?翁眞)’이라는 글자가 있다. 왼쪽에 신숙주가 죽은 지 75년 후에 다시 칠하였다는 ‘성묘을미공졸후칠십오년기유개장(成廟乙未公卒後七十五年己酉改粧)’란 기록이 있어 1549년(명종4)에 다시 단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정은 보물 제6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숙주(申叔舟, 1417∼1475)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保閑齋)이다. 신덕린(申德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참의(工曹參議) 신포시(申包翅)이고, 아버지는 공조참판(工曹參判) 신장(申檣)이며, 어머니는 지성주사(知成州事) 정유(鄭有)의 딸이다.

1438년(세종20) 사마양시에 합격하여 동시에 생원·진사가 되었다. 이듬해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농시직장(典農寺直長)이 되고, 1441년에는 집현전부수찬을 역임하였다. 1442년 국가에서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게 되자 서장관으로 뽑혔다.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참가하여 공적이 많았다. 중국음을 훈민정음인 한글로 표기하기 위하여 왕명으로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유배 중이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의 도움을 얻으러 요동을 열세차례나 내왕하였다.

1452년(문종2) 수양대군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갈 때 서장관으로 추천되어 수양대군과의 유대가 이때부터 특별하게 맺어졌다. 1453년 승정원동부승지에 오른 뒤 우부승지·좌부승지를 거쳤다. 1455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즉위한 뒤에는 동덕좌익공신(同德佐翼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예문관대제학에 벼슬을 내렸고 고령군(高靈君)에 봉하여졌다. 1456년(세조2)에 병조판서로서 국방에 필요한 외교응대의 일을 위임받아 사실상 예조의 일을 전장하게 되었다. 1457년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에 오르고 1459년에는 좌의정에 이르렀다.

1462년에 영의정부사가 되고, 1467년에 다시 예조를 겸하였다. 1472년(성종3)에는 ≪세조실록(世祖實錄)≫·≪예종실록(睿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75년(성종6)에 일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보한재집(保閑齋集)≫이 전하는데, 1644년(인조22)에 7세손 신숙(申洬)이 영주군수로 있을 때 교서관본(校書館本) 완질을 얻어 간행한 것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보한재집(保閑齋集)≫은 조선 전기의 문신 신숙주(申叔舟)의 시문집이며, 17권 4책, 목판본이다. 아들 정(瀞), 준(浚) 등이 유고를 모아 편차한 것을 1487년(성종18) 왕이 교서관(校書館)에 명하여 간행한 것이 초간본인데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그 뒤 임진·병자 양란을 거치면서 초간본이 거의 인멸되었다가 7세손 숙(瀟)이 경상도 영천군수로 있을 때 완질을 찾아내어 1645년(인조23) 이식(李植)의 발문을 붙여 간행하였다.

1922년에는 신흥우(申興雨)가 신용체(申龍體)의 발문을 첨가하여 청주에서 간행하면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속편 부록으로 함께 발간하였다. 권수에 김뉴(金紐), 김종직(金宗直), 서거정(徐居正), 임원준(任元濬), 홍응(洪應) 등 5인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1에 부(賦) 6편, 권2·3에 오언소시(五言小詩) 86수, 권4∼7에 칠언소시 361수, 권8에 오언사운(五言四韻) 36수, 권9에 칠언사운 49수, 권10에 오언고시(五言古詩) 51수, 권11에 칠언고시 30수, 권12에 요해편(遼海篇) 23수, 권13에 가훈·책(策), 권14에 기, 권15에 서, 권16에 제(題)·발, 권17에 행장·신도비 등과 빠진 것을 채웠으며, 부록(附錄)이 첨부되어 있다.

≪청주대학교 교수 겸 지역가치창출센터장≫

황경수  hksu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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