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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계절
김영회 | 승인 2019.10.10 10:06

사색의 계절

―유난히 사건이 많았던 여름,
시절은 사색하는 가을인데
사람들은 둘로 패를 갈라
함성을 지르며 싸우네.
‘집단 히스테리’라고 하던가―

 

바야흐로 10월, 춘하추동 일 년 열 두 달 가운데 가장 좋은 때입니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에 들어서니 날씨 시원해 생활하기에 좋고 들에는 오곡백과 무르익어 먹거리 풍성하니 미상불 축복의 계절입니다.

그러기에 옛 부터 선조들은 10월을 일러 ‘시월상달’이라고 칭송하였습니다. 온 여름내 땀 흘려 가꾼 농사가 이때쯤 결실을 맺어 햇곡식, 햇과일로 배를 불리니 이 보다 더 고마울 데가 없습니다. 하늘(天神)이 고맙고, 일월산천(日月山川)의 신령이 고맙고, 조상 님 네가 고마워 정성으로 떡을 찌고 술을 빚어 감사의 제사를 올렸습니다. 마을 동네에서는 당산제(堂山祭), 집안에서는 고사(告祀), 산소에서는 시제(時祭)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사건이 많았습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불의의 타격을 입었고 30대 여인 고유정이 전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잔혹하게 훼손해 유기한 천인공노할 사건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단말마적인 일면을 보여준 역겨운 자화상이었습니다. 도대체 인간이 얼마나 더 잔인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몸서리치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30년 전 경기도 화성에서 십 수 명의 여성을 연쇄 살인한 희대의 범인도 뒤늦게 밝혀져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도 태풍이 잦았습니다. 7월부터 시작된 태풍은 1959년 이후 60년 만에 가장 많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9월에 들어 서만도 13호 태풍 ‘링링’(9.2~8), 14호 태풍 ‘가지키’(9.3), 15호 태풍 ‘파사이’(9.5~10), 16호 태풍 ‘페이파’(9.15~16), 17호 태풍 ‘타파’(9.19~23), 18호 태풍 ‘미탁’(9.28~10.3), 19호 태풍 ‘하기비스’까지 연 이어 태풍이 몰려왔습니다. 그중 ‘미탁’의 피해는 강도가 심해 물 폭탄과 강풍으로 부산, 경북, 강원도에서만 16명의 사망, 실종자를 내고 750명의 이재민을 낳았습니다. 여름내 가꾼 농작물이 쑥대밭이 되었고 산사태에 주택이 침수돼 크나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올 여름은 돼지들에게 수난의 계절이었습니다. 전염경로도 확인할 수 없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경기도 시・군에 마구 번져 수십만 마리가 살 처분이라는 떼죽음을 당하는 불행한 일도 있었습니다. 양돈업자들의 실망과 피해가 컸던 만큼 국민들의 공포가 뒤따랐습니다.

R・M・릴케(오스트리아・1875~1926)는 그의 시 ‘가을 날’에서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드리우시고/ 들판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略)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에게 여름은 수난의 계절이었지만 시인에게는 아쉽기만 한 추억이었던 것입니다.

가을은 단풍의 계절입니다. 온 여름 내내 뜨거운 햇볕아래서 청록색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은 가을이 되자 그 색깔을 바꾸고 있습니다.

지금 강원도 설악산에는 오색단풍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따르면 해발 1708m의 최고봉 대청봉에서 지난 달 28일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하루 50km씩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오대산(강원), 북악산(서울), 속리산(충북), 내장산(전북), 지리산(경남・전남・북), 팔공산(경북)을 거쳐 11월 2일 쯤 제주도 한라산에서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합니다.

8일 2019청주공예비엔날레 개막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이시종 충북지사(오른쪽 두 번째), 한범덕 청주시장(왼쪽)의 안내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NEWSIS

단풍은 차가운 기온과 일조량(日照量)이 짧아지는데 대한 반응으로 나뭇잎이 초록색의 엽록소 생산을 중단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단풍은 산의 20%가 물들면 ‘첫 단풍’이라 하고 80%가 물들면 ‘절정기’라고 합니다. 단풍은 평지 보다는 산, 강수량이 많은 곳 보다는 적은 곳, 음지보다는 양지 바른 곳에서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책은 인간의 스승입니다. 책속에는 시공을 초월해 우주만물의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책속에는 신화(神話)가 있고, 역사가 있고, 과학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밤을 새워 읽어야 하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책속에 있습니다.

그 옛날 선비들은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을 벗 삼아 밤새워 책을 읽었습니다. 책속에 진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책을 통해 인격을 수양했고 책에서 삶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좋은 음식은 사람의 몸을 살찌우지만 책은 마음을 살찌우고 성장시킵니다. 사람은 책에서 인격을 도야(陶冶)하는 동시에 행복을 느낍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입니다. 미처 뒤 돌아 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게 우리 모두의 삶입니다. 가을엔 높은 하늘에 구름이 떠갑니다.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입니다. 지금은 먼지로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지만 한국의 가을 하늘은 맑고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 밤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뭇 동물과 달리 만물의 영장이라 함은 생각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사랑의 계절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가족은 물론 내 이웃을 사랑하고 모든 인간을 사랑해야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을 사랑해야 하고 생명이 없는 것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아비규환으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날이 새고 지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사랑 결핍증 환자인 것입니다.

시인 김영랑(1903~1950)은 ‘오메 단풍 들겄네’라고 노래했습니다. 오색 단풍에 눈이 휘 둥 그래 진 숫처녀의 발그레한 얼굴이 떠오르는 시구(詩句)입니다.

8일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를 지나 24일이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이니 이제 가을도 한가운데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파주의보가 내리고 설악산, 지리산에 첫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설마하니 가을을 건너뛰고 그냥 겨울로 들어가려는 것은 아닐까, 궁금합니다.

하기야 100만, 200만 명의 대군중이 눈에 불을 켜고 패를 갈라 광화문, 서초동에서 함성을 지르는 집단 히스테리, 이런 비정상적인 소란한 분위기 속에서 독서는 무슨 독서? 사색은 무슨 사색? 가당찮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가을 같은 가을을 맞을 수 있을지,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김영회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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