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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愛國志士) 김태희(金泰熙) 묘소(墓所)황경수 교수의 청주 인물 이야기
황경수 | 승인 2019.10.07 08:59

애국지사(愛國志士) 김태희(金泰熙) 묘소(墓所)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암리 산36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운암삼거리를 지나 버스정류장에서 대략 3분 정도 걷다보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 몇 채가 있고, 마을 어귀에 3개의 묘소가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한 걸음에 달려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중에 두 번째 위치한 것이 애국지사(愛國志士) 김태희(金泰熙) 선생의 묘소이다.

형태는 고석 위에 상석이 있으며, 상석 앞에는 향로석, 옆에는 퇴주석이 있고, 왼쪽에는 비석이 서 있다. 비석에는 ‘독립투사일석김태희선생묘(獨立鬪士一石金泰熙先生墓)’라고 쓰여 있다.

*김태희(金泰熙, 1877~1937)는 조선 후기의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이다. 호는 일석(一石)이다.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 탑동(塔洞)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으나 예수교 장로회 장로로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한 애국지사이다.

1904년 11월에 김원배(金元培), 방흥근(方興根)과 청주에 청남학교(淸南學校)를 설립하고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학교경영이 어렵게 되자, 미국인 선교사 민노아(閔老雅)와 함께 운영하여 종교계통의 학교로 개편하였다. 1907년에 청신여학교(淸信女學校)를 설립하였으며, 1923년에는 학제 변경으로 청남학교에 남녀공학제를 시행하였다.

1909년에 김동삼(金東三), 남형우(南亨祐), 신백우(申伯雨) 등과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上海) 임시정부에 몰래 보냈고, 1920년 9월부터는 상해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의 충청북도참사(忠淸北道參事)로 임명되어 군자금 모집과 독립운동과 관련된 문서들을 배포하는 등 국내 독립운동의 공작책임을 맡았다.

또한 국민회(國民會) 충청북도지회를 조직하였고, 청주청년회(淸州靑年會)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1921년 전국의 청년회들을 연합하려는 운동에 참가하여 정규택(鄭圭澤)과 함께 조선청년연합회(朝鮮靑年聯合會) 창립총회에 청주청년회대표로 참석하여 활동하였다.

1959년 4월 6일에 조건상(趙健相)의 주선으로 그의 유해는 미원면(米院面) 기암리(岐巖里)로 이장되었다. 1963년 3월 1일에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청주대 교수 겸 지역가치창출센터≫

황경수  hksu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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