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초를 자르다

―세속의 망상과 집착을 끊는
스님들의 삭발은
정치인의 삭발과 다릅니다.
왜 일까? 이유는 ‘버림’과 ‘집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신도수가 가장 많은 기독교(23억명)와 이슬람교(18억명), 힌두교(11억명), 불교(5억명)등 4대 종교 가운데 성직자들이 삭발을 하는 종교는 불교의 스님들이 유일합니다.

언제부터 불교의 삭발이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BC2582년 카필라 왕국(현재의 네팔)의 태자로 태어 난 싯다르타(Siddhartha Gautama)가 29세에 출가(出家)를 결심한 뒤 “이 치렁치렁한 머리칼은 사문(沙門) 생활에 들어가는 나에게 적합하지 않다”며 허리에 찬 보검을 뽑아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랐다는데서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번뇌와 망상의 상징으로 여겨 무명초(無名草)라고 부릅니다. 그렇기에 스님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머리카락을 잘라 버림으로써 속세의 인연과 망상과 잡념을 끊는다는 결의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율입니다.

그렇다면 스님들은 평소 수도 생활 중 언제 삭발을 할까. 일반적으로 스님들은 한 달에 두 번 머리를 깎습니다. 예전에는 재일(齋日)에 맞춰 삭발식을 했다고 하나 요즘 사찰에서는 매달 그믐과 보름 전날 삭발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스님들이 삭발을 하는 날은 목욕을 함께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 날이 되면 세속의 반장 격인 유나(維那)스님이 “몇 시에 삭발을 하겠다”고 스님들에게 이르고 소임을 맡은 스님이 물이나 칼 등 삭발과 목욕에 필요한 준비를 합니다.

시간이 되면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머리를 잘라줍니다. 이날 스님들은 함께 생활하는 도반(道伴)의 머리를 자르면서 자신의 수행일상을 점검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처럼 삭발은 의례적인 관습으로서만이 아니라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과 교만의 싹을 자르고 깨달음을 얻어 미혹한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게 합니다. 스님들은 평소 매일 아침 세수할 때 마다 습관적으로 삭발한 머리를 만지며 잠시나마 출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불교의 율문(律文)은 출가 수행자는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출가 수행자가 머리를 깎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종교의 출가 수행자와 모습을 다르게 하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세속적인 번뇌를 단절함을 뜻합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는 불교 수행자 말고도 집을 떠나 부랑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경전은 이들을 외도(外道)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교단을 외도들의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불교의 출가 수행자들은 머리와 수염을 깎도록 했습니다. ‘사분율’ 제51권에는 부처님이 머리가 긴 어떤 비구를 보고 “깎으라! 스스로 깎든지 남을 시켜 깎든지 하라”고 말한 계율이 나옵니다.

율문은 출가자가 머리와 수염, 손톱을 기르는 행위를 스님의 모양에 어긋난다 하여 금하고 있습니다. 삭발은 다른 말로 체발(剃髮) 또는 낙발(落髮)이라고도 합니다. 낙발은 세속적 번뇌의 소산인 일체의 장식(裝飾)을 떨쳐 버린다는 의미에서 낙식(落飾)이라고도 합니다. 세속적 번뇌와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 출가인의 삶입니다.

부처님은 세속적인 번뇌와 얽매임을 단절하려는 결단의 상징으로 머리를 깎게 한 것입니다. 출가인이 머리모양에 연연하는 것은 출가의지를 흐리게 하고 무명(無明)을 더욱 더 키운다 하여 머리털을 무명초라고까지 한 것입니다.

한 스님이 단기 출가한 동자승의 머리를 자르면서 함께 웃고 있습니다. 스님과 동자승의 얼굴에 불타의 자비가 쓰여 있습니다. / NEWSIS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온 사회가 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법무부장관 자택이 검찰의 과도한 압수수색을 당하자 100만이 넘는 군중이 검찰의 총본산인 서울 서초동을 뒤덮는 심상치 않은 사태마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2016년의 촛불혁명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군중집회이기에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지극히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 보다 앞서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일부 무소속의원이 청와대 앞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삭발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황대표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지키자, 자유 대한민국!”을 외치는 당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삭발식을 감행했습니다.

국회 활동 말고는 야당으로서 집권당에 대항해 할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기에 삭발이라는 강력한 투쟁을 통해 국민들에게 야당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이벤트를 택했던 것이 아닌가 보여 집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자유한국당이 벌이고 있는 투쟁은 표면적으로는 조국이 타깃이지만 사실 사건의 본질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정권투쟁이 분명합니다. 내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 2022년의 대통령 선거를 향한 제1야당의 포석인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바리캉에 한 움큼씩 잘려 떨어지는 사이 눈을 감은 황 대표의 굳은 얼굴엔 무엇인가, 결기가 가득해 보였습니다. 제1야당의 대표로서 삭발이라는 초유의 결행에 심사가 예사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비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KBS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는 듯싶습니다. ‘삭발에 공감한다’는 여론은 32%, ‘공감하지 않는다’는 부정 여론은 57%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매일 1, 2명씩 계속해 삭발을 하겠다던 발표와는 다르게 흐지부지, 중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스님들의 삭발은 망상과 욕망을 내려놓기 때문인지 표정이 가벼워 보이는데 반해 정치인들의 표정은 사뭇 무겁고 굳은 것이 다릅니다. 스님들은 욕망을 버리는 수행이라서 밝고 맑아 보이지만 정치인들의 삭발은 정치적 목표를 앞에 놓고 새로운 전의를 다지는 행위인지라 무거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의 삭발이 참된 나를 찾기 위한 숭고한 행위라면 정치인들의 삭발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결의를 선언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됐든 난국을 잘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개혁의 대상이 된 검찰이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입장을 밝혔으니 그를 지켜 볼 수밖에 없지만 하여튼 작은 걱정은 아닙니다. 저 남쪽에서는 또 하나의 태풍 '미탁'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제발 피해가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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