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태풍이 왔다가든,
정치가 소란하든,
만고불변 시간은 흐르고
휘영청 둥근 달처럼
모든 이들의 마음도 밝았으면―

 

지난 한달 동안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조국 법무장관 지명 논란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이라는 애초의 결단을 그대로 내림으로써 일단락되었습니다.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대통령은 지난 28개월 중 가장 곤혹스러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장관 임명을 강하게 반대한 자유한국당이 현충원으로 몰려가 “민주주의는 사망했다”며 정권퇴진투쟁을 선언함으로써 후폭풍이 휘몰아치는 양상이지만 일단은 한고비는 넘긴 형국입니다.

사실 이번 파동은 문대통령에게 있어 밀릴 수 없는 한 판의 승부수였습니다.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은 한 개인이 장관이 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강력한 야당, 소위 개혁의 대상인 검찰, 거대 보수언론이 모두 한 덩어리가 된 매머드 적과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이었던 것이 사건의 본질이었습니다.

임기가 절반 이상 남은 문대통령으로서는 이번 싸움에서 밀리면 레임덕과 함께 임기 후반의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반대 여론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임명이라는 강수를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피가 마르는 고뇌의 결단을 내린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번 조국파동은 국민마저 두 패로 갈린 숨 막히는 드라마였습니다.

시국이 어쨌거나 시절은 바야흐로 중추가절(仲秋佳節), 한가위입니다. 태풍이 왔다 가든, 정치가 소란하든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휘영청 밝은 달,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은 우리 국민에게 있어 음력 정월 초하루 설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축제 중의 축제입니다.

무더운 여름 내내 땀 흘려 가꾼 농작물들을 수확하는 기쁨이야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보람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구호처럼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알맞은 기온에 온 가족이 조상을 기리고 맘껏 먹고 즐기니 보통 국민들의 행복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석은 멀리 신라시대부터 2000여년을 변함없이 전해오는 민족 고유의 명절로 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 가배일(嘉俳日)로 부르기도 합니다. 한가위의 ‘한’이란 ‘크다’는 뜻이고 ‘가위’란 가운데를 나타내는데 길쌈을 가배라 부르다가 가위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가위는 8월의 한 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3대 유리왕(琉璃王 ?~57) 때 추석 한 달 전 경주의 여자들을 궁중에 모아 두 편으로 나누고 공주 두 사람이 각각 한쪽씩을 맡아 베짜기 시합을 벌이고 보름 날 승패를 가려 진편이 이긴 편에 음식과 춤으로 사례를 했다고 합니다.

이때 진편의 여자가 나서서 춤을 추며 “회소! 회소!”하고 탄식을 하였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 구슬프고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석에 오늘 날과 같이 제사를 지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조상에 대한 제사 풍습은 고려 말 중국에서 들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양군은 추석 연휴 기간 관광객들을 위해 12인승 황포돛배를 도담삼봉 일원에서 운영한다. / 단양군청 제공

농경시대 해마다 이 무렵이면 더위도 물러가고 들판에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풍성해 집니다. 추석 때 면 집집마다 술도 빚고 둥근 달 아래 가족들이 둘러앉아 송편을 만드는 정겨운 모습은 우리민족 고유의 아름다운 풍속도였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올 해도 어김없이 ‘민족의 대 이동’을 연출합니다. 전 국민의 70%인 3500만 명이 고향을 찾아 귀성을 하고 있으니 또 한 번 전국의 도로가 홍역을 치를 수 밖에 없습니다. 듣자니 명절 전후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보는 한반도의 실제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라고 합니다. 그 또한 자랑이라면 자랑이라고 하겠습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는 게 있습니다. 온 종일 산과 들을 헤매던 짐승들이 해가 지면 제 굴을 찾아 들고 하늘을 날던 새들이 둥지로 돌아가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우 또한 죽음이 다가오면 제가 태어 난 고향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눈을 감는다고 합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때가 되면 저를 낳아 준 고향을 찾아가는 것 또한 귀소본능의 발로이니 동물과 하등 다르지 않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인간 역시 동물은 동물입니다.

한시(漢詩)에 호마의북풍(胡馬依北風)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북방에서 온 말은 엄동설한에도 북쪽을 향해 서서 찬바람을 맞고 따듯한 남쪽 월나라에서 온 새는 남쪽 가지를 골라 둥지를 튼다는 뜻입니다. 말이든, 새이든 제가 태어난 고향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니 인간이나 짐승이나 원초적인 회귀, 즉 귀소본능은 똑같은 것이 아닐 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이 좋은 명절이 오히려 더 쓸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산가족처럼 고향은 있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있고, 고향은 있으나 형편이 어려워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라는 잘 살게 됐는데도 벌이가 없어 곤궁한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남들이 다 즐거운데 나만 즐겁지 않다면 명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한 즐거운 연휴에 국가, 사회를 지키는 이들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전후방의 국군 장병들, 치안을 맡고 있는 경찰관들, 또 공무 수행 중인 공직자들, 그들이 있기에 국민들이 안심하고 명절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추석 대 보름 휘영청 둥근 달처럼 모든 이들의 마음도 그렇게 밝았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해외 토픽 하나: 인도에서 73세 된 할머니가 쌍둥이 여아를 낳았다고 합니다. 평소 아기 갖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머니는 체외수정을 통해 수태를 했고 제왕절개로 쌍둥이 자매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아기 아빠는 82세의 할아버지인데 할머니는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기뻐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희한한 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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