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보은, 영동으로 갈라지는 미원 삼거리. 갈 길을 재촉하는 행인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보게 되는 전통 건축물이 있다.

기와를 얹고 당당하게 서 있는 이 건축물은 남양 홍문(南陽洪門) 충효각(忠孝閣)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 426-2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이 충효각은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다.

1801년(순조1)에 충효로 지평(持平)의 벼슬을 받은 만은(晩隱) 홍주화(洪胄華, 1660∼1718), 1806년(순조6)에 충효로 참판(參判)의 품계를 받은 할아버지 만계(晩溪) 홍석무(洪錫武, 1601∼1667), 1819년(순조17)에 효부로 정명(旌銘)된 그의 처 전주 이씨(全州李氏) 등 3인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남양 홍씨(南陽洪氏) 정려이다.

밖은 ‘충효정려(忠孝旌閭)’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는 이 충효각은 1986년에 다시 세운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큰 돌로 바닥을 정리하고 철제로 사면을 둘러 내부에 널찍한 마당을 만들어 여러 개의 비석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정려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1986년에 세운 사적비(事蹟碑)와 중수비(重修碑)가 있고, 오른쪽에는 1967년에 판각한 ‘남양홍씨충효중수기(南陽洪氏忠孝重修記)’가 있는데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정려는 낮은 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올렸으며 사면은 홍살로 막고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안에는 ‘증참판행목사홍석무충효지려(贈參判行牧使洪錫武忠孝之閭)’, ‘증통덕랑사헌부지평홍주화충효지려(贈通德郞司憲府持平洪冑華忠孝之閭)’, ‘효부증지평홍주화처전주이씨지려(孝婦贈持平洪冑華妻全州李氏之閭)’라고 쓴 3인의 충효문 편액을 걸려 있다.

*홍주화(洪胄華, 1660∼1718)는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실(君實), 호는 만은(晩隱)이다. 아버지는 홍일운(洪一運)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숙종 초 송시열이 유배(流配)가게 되자 스승의 명으로 그의 서적을 보관했고, 1689년(숙종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그 부당함을 상소하였으며, 이어 송시열이 사사(賜死)되자 박세휘(朴世輝), 한성우(韓聖佑) 등과 백인소(百人疏)를 올려 스승의 신원(伸寃)을 상소했다.

그 후 벼슬할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전념하다가 권상하(權尙夏)가 송시열의 명령으로 만동묘(萬東廟)를 세울 때 이를 보좌하여 세움에 힘썼다. 저서로는 ≪만은유고(晩隱遺稿)≫가 있다.

*≪만은유고(晩隱遺稿)≫는 조선 후기의 학자 홍주화(洪胄華)의 시문집이며, 1책, 목활자본이다. 1802년(순조2) 증손 종선(宗善)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환기(宋煥箕)의 서문이 있다. 시(詩) 44수, 소(疏) 3편, 제문(祭文) 7편, 잡저(雜著) 4편, 부록으로 우암간독(尤庵簡牘)·가장(家狀)·묘갈명(墓碣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청주대 교수 겸 지역가치창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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