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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왕 재실과 태실을 관리하던 성모재(誠慕齋)황경수 교수의 청주인물 이야기
황경수 | 승인 2019.08.12 11:10

마을의 좁은 골목을 따라 영조대왕 태실로 가는 길 어귀에 전통 고가 성모재(誠慕齋)가 있다. 가파른 경사로 위에 산자락 첫 번째 자리에 있는 성모재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 26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조대왕 재실과 태실을 관리하던 사람들이 살던 건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된 성모재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마당에 별채가 따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별채를 현대식으로 증축하여 관리인이 살고 있어 성모재 마당이 좁아진 상태다.

기록에 의하면 성모재의 용마루에 멧돼지 모양의 잡상을 올려놓았다고 하나 멧돼지 잡상의 흔적은 보이질 않았고, 측면에 있는 바람을 막는 풍벽의 흰색바탕 위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로 포도 무늬를 새겨 놓았다는데, 이 또한 찾을 수가 없었다.

성모재 내부로 들어가면 조상들이 방을 들여놓는 구성 방식 중 하나인 섭방을 직접 볼 수 있다. 섭방은 이불이나 옷을 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으로 지금의 장롱의 역할을 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방과 방 사이에는 분합문을 설치하여 공간의 활용을 높였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대왕(英祖大王) 태실(胎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 26번지에 가면 멀리서 보아도 산 위에 영조대왕의 태실임을 알리는 비석과 그 아래에 자리한 성모재가 보인다.

가파른 경사로 위에 세워진 성모재의 뒤편으로 만들어져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영조대왕의 태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 태실은 원래 1695년(숙종21)에 조성되었으나, 영조가 즉위한 5년째 되던 해에 다시 왕의 태실 규모와 구조에 맞추어 만든 것이다. 한말까지 나라에서 8명의 수호군을 두고 관리해오다가 서울 창경궁으로 옮기면서 크게 파손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태실 자리에 민간 묘가 들어서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1982년 현재의 산 중턱에 복원했다.

태실 앞에 자리한 비석을 살펴보면 ‘주상전하 태실 비’와 ‘왕자아지씨 태실 비’라고 새긴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주상전하 태실 비’는 귀부 위에 비신을 세우고 비석의 상단 이수에 용을 조각하였는데 비신의 앞면에는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 뒷면에는 ‘옹정칠년시월십사일(雍正七年十月十四日建)’이라고 쓰여 있다.

또한 ‘왕자아지씨 태실 비’에는 비석의 정면에 ‘왕자아지씨태실(王子阿只氏胎室)’, 뒷면에는 ‘강희삼사년정월이십팔일(康熙三四年正月二十八日)’이라고 쓰여 있다.

≪청주대 교수 겸 지역가치창출센터장≫

황경수  hksu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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