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수 교수의 청주 인물 이야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 344-1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쌍천서원(雙泉書院)은 1695년(숙종21) 용졸재(用拙齋) 신식(申湜, 1551∼1623)을 모시려고 세운 서원이다.

쌍천서원(雙泉書院)은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6호로 지정되었으며, 1871년(고종8)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없어졌다가 고령 신씨(高靈申氏) 문중에서 다시 세운 뒤 영정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 중정일(重丁日)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용졸재(用拙齋) 신식(申湜)의 영정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倚坐像)으로 가로 110cm, 세로 171cm의 크기이고, 먹으로 바탕을 그린 견본(絹本)인데 그림을 그린 제작 연대와 화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서원은 자연석을 쌓은 다음 대리석으로 층계를 만들었으며 삼문에 시멘트와 자연석으로 담장을 두르고 기와를 올린 후 ‘쌍천서원(雙泉書院)’이라고 쓴 편액을 걸었다.

지금의 서원은 1989년에 다시 지은 건축물로 정면에서 보면 3칸, 측면에서 보면 2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그 내부는 통간 콘크리트 방에 3개의 쌍문을 달았고 정면 뒤에는 다음과 같은 편액이 걸려 있다.

편액에는 ‘효자증자헌대부이조판서겸지경연의금부춘추관성균관사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오위도총부도총관행가의대부사헌부대사헌겸동지충추관사신식지문(孝子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五衛都摠府都摠管行嘉義大夫司憲府大司憲兼同知春秋館事申湜之門)’이라고 쓰여 있다.

*신식(申湜, 1551∼1623)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숙지(叔止), 호는 용졸재(用拙齋)이다. 신숙주(申叔舟)의 5대손, 신광윤(申光潤)의 증손, 할아버지는 신서(申漵), 아버지는 현령(縣令) 신중엄(申仲淹), 어머니는 유엄(柳渰)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76년(선조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로 있을 때 정여립(鄭汝立)의 일파로 탄핵되어 유배당하였다가 1592년 다시 집의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경상도안무어사(慶尙道按撫御史)로 활약하였다.

그 뒤 동부승지·좌부승지·좌승지 등을 역임하고 대사간과 부제학을 거쳐 도승지·동지중추부사·공조참판 등을 지냈다.

1599년에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호조참판·대사헌이 되었다. 광해군 즉위 후, 충청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다가 또 다시 사은사로 명에 가서 왜의 실정을 알렸다.

말년에는 지중추부사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청주의 쌍천서원(雙泉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의례고증(疑禮攷證)≫·≪가례언해(家禮諺解)≫ 등이 있다.

≪청주대 교수 겸 지역가치창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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