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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대수
김영회 | 승인 2019.07.30 10:34

일의대수

―얼굴을 붉히며 살 것인가,
평화롭게 웃으며 살 것인가,
냉철히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은 일본의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 갈 이웃입니다―

 

일본은 정녕, 한국을 등지려고 하는 것인가? 작금 아베 정부의 몰상식하고 치졸한 처사를 보면서 느끼는 의문입니다. 1592년 침략해 6년 동안 조선 팔도를 휘젓고 더럽힌 임진왜란, 그리고 1910년부터 35년간의 식민통치로 한국을 짓밟은 더러운 역사가 있긴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우리 한국을 깔보고 마구 한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독도 영유권을 놓고 그때마다 억지를 쓰며 신경전은 벌였지만 1965년 한일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지금처럼 이렇게 살벌하게, 노골적으로 못되게 군적은 없었습니다.

아베 일본총리는 지난 번 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눈에 띄는 냉대로 결례를 서슴지 않더니 이내 반도체 부품 수출규제라는 무역보복을 감행함으로써 무방비 중이던 한국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습 공격이었습니다. 일본은 그에 그치지 않고 다시 수출 우대제도인 백색국가, 즉 화이트 리스트에서도 한국을 제외 할 태세이니 파장은 더욱 더 커질 것이 예상됩니다.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한국은 일본과 관계를 맺고 있는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크게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옛글에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뜻인즉슨 ‘한 줄기 띠와 같은 좁은 냇물이나 강’이라는 말입니다. 멀리서 보면 그 물이 마치 허리에 두른 좁은 띠처럼 육지 사이를 가로 질러 흐르고 있어 매우 가까운 두 나라를 지칭할 때 흔히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출전은 1400년 전, 중국 수(隋)나라 문제(文帝)가 임금이 주색(酒色)에 빠져 나라를 돌보지 않는 진(陣)나라를 치기위해 양쯔강(揚子江)을 건너면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데 일의대수가 있다고 해서 어찌 이를 마다하겠는가”라고 한데서 유래합니다. 지난 시절 한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은 사이가 좋을 때면 “우리 두 나라는 일의대수와 같다”고 약방에 감초 쓰듯 덕담삼아 써 오곤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은 이웃집이라고 할 만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습니다. 부산에서 쓰시마(對馬島)까지의 거리는 49.5km로 여객선을 타면 1시간 10분, 인천~도쿄(東京) 역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이니 일의대수, 이웃사촌이란 말이 그럴 듯하게 잘 어울립니다.

요 며칠, 우리나라에는 놀랄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의 무역 보복으로 혼란한 상황에 러시아, 중국 군용기의 영공침범, 그에 대한 일본의 독도영유권 억지주장,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도발, 김정은의 신형 잠수함 건조과시, 북한 목선 월경 등 한꺼번에 사건이 잇달으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우리 정부의 대처 또한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부 대표를 두 번이나 미국에 보내고 국회 대표단이 몰려가고, 믿는 곳이 미국뿐이라고 할 만큼 의존 하고 있지만 성과가 어떠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무역기구(WTO)에도 대표를 급파했지만 어딜 가나 하소연을 할뿐이지, 그 역시 성과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존볼턴 이 올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언론들은 한국을 편들어줄 해결사라도 오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주한미군 주둔비 증액과 미국-이란 간 전쟁 일보 전의 호르무즈 해협에 군대를 파병해 미국을 도와달라는 요구만 하고 돌아갔다는 후문이고 보면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듣자하니 볼턴은 능청스럽게도 일본에 가서는 “한국을 편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고약한 인물입니다. 눈치 빠른 사람은 그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날마다 정부 공격을 일삼는 야당 원내 대표를 은밀히 먼저 만났다는데서 알아 봤습니다.

1945년 해방 뒤 좌・우와 미국 파, 상해 파 등 독립운동 계파들이 대립할 때 “소련 놈에 속지 말고, 미국 놈 믿지 말라, 일본 놈 일어선다”라는 유행어가 한동안 국민들 간에 회자(膾炙)됐습니다. 하도 여러 번 강대국들의 먹잇감이되어 속아 왔기에 국민들의 각성을 일깨운 구호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내용들이니 새삼 무릎을 치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한국을 골탕 먹일 준비를 해 온 것이 분명합니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기회를 엿보다가 적기를 맞아 한방에 급소를 쳐 충격을 준 것입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촛불에 취한 것이 아직 덜 깬 인지, 김정은에 취한 것인지, 희희낙락해 온 결과가 오늘 이 상황을 불러 온 것입니다. 그걸 몰랐던 정부는 무능한 것입니다.

장마가 끝나자 찜통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농협 증평지부 회원들이 정안마을에서 환경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NEWSIS

이 난국은 문재인 정부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무지에 원인이 있습니다. 집권당으로써 미리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책임입니다. 물론 전임 정부로부터 이어져 온 적폐도 상당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일본이 심통을 부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은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한일협정에서 “한국민의 과거사에 대한 모든 청구권은 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도합 8억 달러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돼 포괄적으로 모든 배상은 끝났다”고 주장을 합니다.

또 위안부문제 역시 박근혜정부 때인 2015년 12월 28일 10억 엔을 주었으니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합의해 끝난 것인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무효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피해자 배상판결역시 한일회담 때 끝난 것을 다시 들고 나온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본만의 논리입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시국은 강대국들이 먹이를 놓고 각축을 벌이던 구한말 형국과 흡사합니다. 친일파에 신친일파 논쟁까지 재현되면서 기 싸움은 더욱 가열됩니다. 100년 전에도, 그 전에도 일본의 앞잡이들이 알게 모르게 친일 행적을 일삼으며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에 기여했습니다.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할 때도 일본의 낭인들을 앞장서 안내하고 도운 것은 한국인들이었습니다.

해방 뒤 자유당 정권이 집권하고 온갖 부패와 패악을 저지르자 일반 국민들 간에는 “일본 놈 보다 일본 놈에 붙어 조선사람 피 빨아 먹던 조선 놈 앞잡이가 더 악질이었다”고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국민적 단합이 필요합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국론이 통일되고 국민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야당도 위기에 몰린 정부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일단 난국을 극복하는데 힘을 보태야 합니다. 지금처럼 공격일변도로 사사건건 돌을 던지는 행위는 도리가 아닙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격앙돼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며 국민들이 일어나고 ‘죽창가’를 이야기 할 정도입니다.

다행히 일본의 학자,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등 지식인들이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섰다고 합니다. 역시 그곳에도 대의명분을 존중하는 양심적인 시민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초로 동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구축하고 있는 중요한 이웃”이라며 “무역 보복을 당장 중지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옳은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저력입니다. 아베 총리는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당장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을 멈춰야 합니다. 지금 대로 간다면 역사의 죄인이 됩니다.

일본에게 있어 한국은 영원히 같이 해야 할 이웃입니다.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얼굴을 붉히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먼 미래를 위해 선린 이웃이 되어 웃는 낯으로 평화롭게 살아 갈 것인가, 냉철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은 일의대수의 이웃입니다. 아베정부와 일본 국민은 먼 친척보다 이웃이 더 좋다(遠親不如近隣)는 명언을 다시 한 번 새겨보기 바랍니다.

김영회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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