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수 교수의 청주 인물 이야기

잡풀이 무성하고 인적이 끊긴 듯이 길을 알아볼 수 없는 곳에 전통 건축물 한 채가 시야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추봉영당(楸峰影堂)’.

추봉(楸峰) 오저(吳著, 1713∼1794)의 영정을 모신 추봉영당(楸峰影堂)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갈산리 305-1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

1872년(고종9)에 추봉(楸峰)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매년 음력 9월 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영당은 원래는 갈산리 소암 마을에 있었는데 1985년에 이 곳으로 옮겨왔다. 자연석과 시멘트로 영당을 감싸는 담장을 두르고 가운데에 출입문을 두는 형태로 다시 지은 이 건축물은 내부에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사당은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내면은 통간 콘크리트 방에 쌍문과 풍판을 달았으며 ‘추봉영당(楸峰影堂)’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영정(影幀)은 관복을 입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가로 45cm, 세로 68cm이며, 먹을 바탕으로 그리고 색을 칠한 견본(絹本)이고 그린 사람과 제작 연대는 알 수가 없다.

*오저(吳著, 1713∼1794)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근보(謹甫), 호는 추봉(楸峰)이다. 서윤(庶尹) 오숙(吳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필창(吳必昌)이고, 아버지는 호조판서(戶曹判書) 오도명(吳道明)이다. 어머니는 채훈서(蔡勳瑞)의 딸이다.

1756년(영조3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고, 1762년 숭릉별검(崇陵別檢), 1764년 전적(典籍)을 거쳐, 이듬해 예조좌랑에 올랐다. 1774년 병조정랑을 거쳐 장령(掌令)이 되어 돈녕부의 기강을 바로잡는 소를 올렸다. 이듬해 지평(持平), 통례원(通禮院)의 우통례, 장령을 두루 역임하였다.

1780년에 군자감정을 지내다가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갈산리에 귀향하였다. 1789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공조참의(工曹參議)·돈녕도정(敦寧都正)을 역임하였다. 1790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거쳐 1794년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청주대학교 교수 겸 지역가치창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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