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연례행사처럼 겪는 장마,
물의 힘은 불가항력적인 것
철저한 대비로 수해 최소화.
자유한국당 국회 등원…
모처럼 ‘정치’보여준 사건―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여름철에 연례행사처럼 예외 없이 겪는 장마는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동남아와 동아시아지방에서만 있는 특수한 기상 현상중의 하나입니다.

장마라는 단어는 한자어가 아닌 우리 고유의 말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길 장(長)에 수해를 떠올려 마귀 마(魔)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장마의 어원을 검색해 보면 ‘댱(長)+맣’으로 나옵니다. ‘맣’은 물을 뜻하는 옛말이니 장마는 ‘오랫동안 내리는 비’란 뜻이 됩니다.

장마는 다른 말로 구우(久雨), 임우(霖雨), 적림(積霖)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장마를 메이유(梅雨), 일본에서는 바이우(梅雨)라고 합니다. 이들이 장마를 梅雨(매우)라고 같은 글자를 쓰는 것은 매실이 익을 때 장맛비가 시작된다고 하여 똑같은 글자로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마는 주로 북태평양의 덥고 습한 고기압과 오호츠크 해의 차고 습한 고기압이 만나거나 북태평양 고기압과 대륙 고기압이 만날 때 긴 장마전선을 형성하여 비로 내립니다.

이 장마전선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약한 6월 중순까지는 일본 남쪽 해상인 오키나와 섬 아래쪽에 머물다가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강화되면서 점차 북으로 올라와 6월 중순에는 일본 열도, 7월에는 오호츠크 해 고기압(또는 대륙 고기압)의 세력이 약해져 한반도의 중부 지방에 자리 잡고 남북을 오르내리면서 계속 비를 뿌립니다.

우리나라의 장마는 6월 20일경 시작해 한 달 여간 비를 내리고 7월 말이면 끝이 납니다. 이 기간에 내리는 비의 량은 연 평균 강수량 1300㎜의 1/3인 400㎜내외입니다.

비는 많이 와도 걱정, 적게 와도 걱정입니다. 과거 논과 밭에 의존해 살던 시절, 농민들은 “제발 알맞게 비를 내려 달라”고 하늘을 향해 빌곤 했습니다. 비가 좀 왔다하면 이내 홍수가 나고 좀 적게 오면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내곤 한 게 우리 선조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습니다.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지면 산사태가 나 마을이 흙더미에 덮여 생명과 재산을 잃게 됩니다. 하천이 범람하면 논과 밭이 물에 잠겨 쑥대밭이 되어 애써 지은 농작물을 몽땅 망칩니다. 거센 빗물에 교량이 붕괴되거나 떠내려가면 교통이 끊기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도시에 비가 많이 오면 우선 낮은 지역의 주택들이 물에 잠겨 수많은 이재민을 낳습니다. 일반 도로는 물론 지하철까지 침수가 되면 버스고, 지하철이고 제 기능을 잃어 시민들의 발을 묶어 버립니다. 집중폭우로 거리에 물이 고이면 자동차들이 제 구실을 못해 배를 띄우는 일도 있으니 도시가 마비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비는 평소 낭만적인 사람들에게 감상을 안겨주는 반가운 손님 같은 것이지만 무서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속담에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 불이 나면 타다 남은 물건이라도 있으나 폭우가 쏟아져 물이 불어나면 불가항력으로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물의 무서운 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비유입니다.

큰 비가 오기 전에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자치단체는 물론이려니와 시민 개개인도 미리 대비가 있어야 됩니다. 미리미리 주변을 살펴 피해를 최소화하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전에 준비하면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입니다.

장마철을 맞아 비가 내리자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29일 광주 도심에서. /NEWSIS

기상청은 올해 장마가 평년과 비슷한 지속 일수(32일)와 강수량(348~366㎜)을 보일 것으로 예보했습니다. 기상청의 예보는 맞을 때 보다 맞지 않을 때가 더 많다고들 합니다. 일기 예보는 맞으면 본전이요, 맞지 않으면 동네북이 되어 비난을 받습니다. 소나기 예보를 내린 날에 종일 해가 뜨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오히려 소나기가 내려 ‘양치기 기상청’이라는 비판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기상청의 일기 예보는 슈퍼컴퓨터를 통한 자료를 담당관들이 분석해 알려주는 것인데 오보가 나올 때 마다 예보관을 교체해서 해당 분야에 유능한 인재가 머물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1960년대 기상대의 전신인 관상대 시절, 예보관들은 날마다 퇴근길에 술을 마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예보가 맞으면 기분이 좋아 대폿집으로 몰려가고, 틀리는 날은 틀려서 또 속이 상해 한잔을 했다는 얘기는 예보관들의 애환을 그대로 보여준 에피소드입니다.

기상대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슈퍼컴퓨터입니다. 기상 예보가 틀릴 때면 어김없이 “첨단장비가 없어서…”라는 게 변명입니다. 그러기에 그때마다 슈퍼컴퓨터가 들어와 적중률이 높아질 거라는 장담이 있었지만 결과는 언제고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연의 섭리는 오묘합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머리를 짜내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를 만든다 한들 천변만화하는 대자연의 오묘한 원리를 100% 적중시키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때로는 오보로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담당자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여유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마가 끝나면 더위가 장마 전보다 한층 더해져 폭염이 계속되고, 여기에 열대성 북태평양 고기압이 더해져 사람들을 오만가지 짜증의 세계로 인도하는 열대야가 시작됩니다.

장마철에는 햇볕을 쬐는 시간이 줄어들어 우울한 기분이 들게 됩니다. 거기에다 비로 인해서 야외활동이 제한되니 더 우울해기도 합니다. 또한, 대기가 습해서 몸의 땀도 잘 마르지 않고 끈적끈적하게 됩니다. 집 안의 침구류들도 뽀송뽀송하지 않고 눅눅하게 되어서 이래저래 기분이 언짢아 지게 마련입니다.

특기 할 것은 장마철이면 우울증 환자가 급증한다고 합니다. 기온이 높은데다 습도가 많아 불쾌지수가 높아 주변 사람들과의 충돌이 생기는 게 다반사(茶飯事)입니다. 소방서의 자살관련 출동은 장마철인 7월이 제일 높다고 합니다. 장마철이 예비자살자들에게는 위험한 계절이라는 방증입니다.

몇 개월이나 장외투쟁으로 일관하던 자유한국당이 드디어 국회로 들어가 정상화 되었습니다. 잘 한 일입니다. 황교안 대표 취임 후 처음 ‘정치’를 봅니다. 그러잖아도 장마철 무더위에 짜증나는 국민들로 부터 박수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황 대표님, 그게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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