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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최초의 근대 학교를 세운 김태희황경수 교수의 청주 인물 이야기
황경수 | 승인 2019.06.24 08:57
김태희 초상(청남초등학교 제61회 동창회 다음 까페에서 발췌)

김태희(金泰熙, 1877. 10. 18.∼1936. 6. 29.)는 청주시 상당구 탑동 출신으로 청주 지역의 항일 투쟁을 주도한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이다. 호는 일석(一石), 김세기(李世基)라는 다른 이름을 사용하였다.

어려서는 한학(漢學)을 배웠으나, 신학문에도 일찍이 눈을 떠 예수교 장로회 장로로써 활동하였다.

한말 일제에 의해 나라가 기울어가자 1904년 11월 1일에 충청북도 청주군 남주내면 옹성리(현 상당구 남문로 2가) 방흥근(方興根)의 집에서 김원배(金元培)와 함께 광남학교(廣南學校)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으로 역임하면서 교육구국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학교 경영이 어렵게 되자, 청주 남석교 인근 청주읍교회로 이전하여 미국인 선교사 민노아(閔老雅)와 함께 운영하며 종교 계통의 학교로 개편하고 1907년 청신여학교(淸信女學校)를 설립하였으며, 1923년에는 학제 변경으로 청남학교에 남녀공학제를 시행하였다.

1909년에 서울 보성학교 교장 박중화(朴重華)가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자 이에 가입하여 충북 출신 독립운동가 곽재기(郭在驥), 남백우(南百祐), 민강(閔橿), 신백우(申伯雨), 신팔균(申八均) 등과 함께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1일에 중국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1919년 7월 10일에 국내외의 독립운동을 지휘하고 감독하기 위하여 설치한 지하 비밀조직인 연통제(聯通制)가 설치되었다.

그는 1920년 9월 10일에 연통제(聯通制)의 충청북도 독판부(督辦府) 참사(參事)로 임명되어 군자금 모집과 독립운동 문서들의 배포 등 국내 독립운동에 힘썼다. 또한 국민회(國民會) 충청북도 지회를 조직하여 그 책임자가 되었으며, 청주청년회(淸州靑年會)를 조직하여 청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21년에는 전국의 청년회들을 연합하려는 운동에 참가하여 동지 정규택(鄭圭澤)과 함께 조선청년회연합회(朝鮮靑年會聯合會) 창립총회에 청주청년회 대표로 참석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이해 청주의 가장 오래된 건물인 망선루(望仙樓)가 일제에 의해 헐리게 되자 건물의 부재를 낙찰 받아 1923년에 남석교 인근의 제일교회로 이전 복원하여 청남학교 교사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미국인 선교사 민노아와 불화(不和)가 생겨 교회와 인연을 끊고 충남 대덕군 신탄진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야간학교를 개설하여 청소년들에게 독립정신을 기르도록 노력하다가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처음에는 신탄진 공동묘지 안장되어 있었으나 광복 후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김태희 부부묘와 비석

정부에서는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국가보훈처 공훈록에는 그의 사망일이 1936년 6월 29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비석에는 1936년 5월 26일로 적혀있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황경수  hksu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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