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수 교수의 청주인물 이야기

미원장터 만세시위지 모습(독립기념관 홈페이지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 발췌)

김진환(金振煥, 1879. 2. 14.∼1934. 3. 2.)은 충청북도 청주군(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 출신으로 미원 만세 운동에 참여한 인물로 다른 이름은 김진환(金進煥)이다.

1919년 3월 30일에 충북 청주군(淸州郡) 미원면(米院面) 미원리(米院里) 시장에서 신경구(申敬求), 이용실(李容實)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그날 오후 2시경 신경구는 시장 네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 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외쳤다.

이에 호응하여 시장 부근에 있던 군중들도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에 들어갔다.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은 군중의 해산을 시도하였으나, 오히려 시위 군중의 수는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점점 형세가 불리해지자 일본 헌병은 신경구를 체포하여 주재소에 감금하였다. 그러자 격분한 시위군중은 주재소로 몰려가 목이 터져라 조선 독립만세를 부르며 그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때 김진환은 시위 대열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군중들과 함께 주재소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항의하였다.

이를 본 주재소장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몽둥이로 대항하였다. 이렇게 시위 군중이 극렬히 저항하자 다급해진 일제는 청주경찰서의 응원대를 파견하여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김진환은 흩어지는 시위 군중에게 계속 저항할 것을 독려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미원헌병주재소 터 만세시위지(독립기념관 홈페이지 국내독립운동 사적지 발췌)

김진환은 1919년 5월 5일에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청주대 교수 겸 지역가치창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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