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수 교수의 청주 인물 이야기

김제환(金濟煥, 1867. 10. 20.∼1916. 10. 5.)은 충청북도 청주군 산내이상면(山內二上面) 이목정리(梨木亭里) 출신으로 일제 침략에 항거하고 단식 순절한 인물이다.

자는 문도(文道), 호는 소당(素堂)이며, 본관은 김해(金海)로 일제강점기 청주의 ‘백이숙제(伯夷叔齊)’로 칭송받았다.

김제환과 동생 성환(成煥)은 청주 지역의 유생으로써 당시 청주군 산외일면 비상리와 산내이상면 문박리에서 각각 서당을 설치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일합방의 부당성 등 교육운동과 배일사상(排日思想)을 펼쳤다.

1910년 일본에 의해 국권(國權)이 상실되자 고향에서 호적 등록을 거부하고 이른바 ‘경절(慶節)’에 일장기를 달지 않으며 납세 및 부역 등을 거절하는 등 항일투쟁을 하였다.

1913년 2월 배일항거운동(排日抗拒運動)으로 일본헌병에 체포되었으나 단식투쟁으로 동년 3월에 풀려났다. 5월 청원군(淸原郡) 오창면(梧倉面) 이산리(里山里)에서 함께 공부했던 변영인(卞榮仁), 신영태(申榮泰), 신학석(申學錫), 이종만(李鍾萬) 등과 ‘성산대강회(星山大講會)’를 개최하여 일제에 항거할 것을 주장하다가 일본 경찰에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선총독 장곡천호도(長谷川好道)에게 ‘내가 죽으면 큰 벼락불이 되어 너희 종류를 씨도 남기지 않겠다.’는 항일 유서를 송부한 후 인근 산속에서 단식·순절하였다.

남긴 유고로는 선생의 문하생인 변영인, 신태구, 신천석, 이종만 등이 편집해 1950년 대전에서 목활자로 간행한 시문집인 ‘소당선생문집’이 있다.

문집의 부록에는 선생을 청주의 ‘백이숙제(伯夷叔齊)’로 소개한 일제 강점기 신문기사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현재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사 사당 모습.

선생의 제자들이 1954년 이정사(梨亭祠/일명 낭성사(琅城祠),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이목리)라는 사당을 세웠는데 이후 1979년 다시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는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 1682~1751)과 성암 박유형(醒巖 朴逌馨, 1858~1929)의 위패를 같이 봉안되었다. 1969년 정당 김성환(正堂 金成煥, 1876~1958)과 각재 신태구(覺齋 申泰求, 1886~1929)도 함께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8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묘소는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인경리 산50-2번지에 있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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