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 신도비(崔鳴吉 神道碑)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9호(1980. 1. 9.)로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왕이나 관직이 높은 신하의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놓음으로써 죽은 이의 사적(事蹟)을 기리는 비석을 말한다.

고불고불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위엄을 자랑하듯 비각이 보인다. 그 안에 홍살을 막고 비신이 서 있다. 그 옆에는 안내판이 있다.

최명길 신도비는 1702년(숙종28)에 건립하였으며, 비신(碑身)의 높이 270㎝, 폭 37㎝, 전체 높이 410㎝의 대형 비석으로, 1979년에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사면을 홍살로 둘러 신도비를 보호하는 비각(碑閣)을 세웠다.

그의 묘소 앞쪽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는 비석 몸체 위에 팔작지붕 모양의 덮개돌을 얹은 일반적인 형식의 비이다. 비문은 박세당(朴世堂)이 짓고 글씨는 최창대(崔昌大)가 썼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비문을 파악하기는 힘들어진 상황이다.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ㆍ창랑(滄浪)이다. 병자호란 때에 화평(和平)을 주장하고 항서(降書)를 써서 청나라에 항복하였다. 성리학과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저서에 ≪지천집(遲川集)≫, ≪경서  기의(經書記疑)≫ 따위가 있다.

*영의정(領議政)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공(崔公) 신도비명(神道碑銘)
1. 반정(反正)하여 위태로운 나라를 바로잡는 일이다.
2. 예(禮)를 논의하여 부자의 윤리를 밝힌 일이다.
3. 단기(單騎)로 적에게 달려가 위기를 넘기는 일이다.
4. 비방을 무릅쓰고 강화를 주장하여 종묘사직을 보존하는 일이다.
5. 힘을 모아 징병을 거절하고 죽는 것을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는 일이다.
6. 천조(天朝)에 사신을 보낸 사건에 대해 혼자 책임을 떠맡아 감당하는 일이다.
7. 인골(人骨)와 시신(屍身)을 잘 수습하는 일이다.
8. 붕당(朋黨)을 지어 자기편을 두둔하는 일을 하지 않는 일이다.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ㆍ학자이다. 자는 계긍(季肯), 호는 서계(西溪)ㆍ잠수(潛叟)ㆍ서계초수(西溪樵叟)이다. 1660년 문과에 장원, 수찬(修撰) 등을 거쳐 이조ㆍ형조의 판서를 지냈다. 실학자로서 박물학의 학풍을 이룩하였으며, ≪사변록(思辨錄)≫을 지어 종래의 경설(經說)을 개작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숙종 29년(1703)에는 ≪사서집주(四書集註)≫가 주자의 학설을 비방하였다 하여 관직에서 추방되었다.

*사변록(思辨錄)은 조선 시대에, 박세당이 쓴 책이다. ≪대학사변록≫, ≪중용사변록≫, ≪논어사변록≫, ≪상서사변록≫, ≪시경사변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리학적ㆍ형이상학적ㆍ관념론적 학문을 배격하고 오로지 경전을 실증적으로 연구하여 공맹(孔孟)의 본지를 밝혔다. 1703년에 간행되었으며, 14책이다.
≪청주대학교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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