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봄이 아닌 봄

―올 봄도 예외 없이 사건,
사고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자꾸, 자꾸 일어납니다.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봄이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아니하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지난 세월 시인묵객들이 그때마다 금과 옥처럼 아끼며 써온 이 불후(不朽)의 다섯 글자는 기나긴 역사 속에 애달픈 사연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왕소군(王昭君). 그녀는 중국 전한(前漢) 11대 황제인 원제(元帝)의 궁녀였습니다. 얼굴이 얼마나 예뻤던지 날아가던 기러기가 아름다운 용모에 넋이 빠져 날갯짓을 잊고 땅으로 떨어져 낙안(落雁)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절세가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공녀(貢女)로 뽑혀 북녘 오랑캐 땅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당시 한나라는 북쪽의 흉노(匈奴)로부터 자주 침공을 당해 수난을 겪었습니다.

부모 형제가 있는 고국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간 왕소군은 흉노의 왕인 호한야선우(好韓邪單于)의 후궁이 되어 그런대로 아들을 낳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몇 해 뒤 호한야가 세상을 떠나자 문제가 생깁니다. 당시 흉노는 아버지가 죽으면 처첩을 자식이 차지한다는 관습에 따라 이번에는 젊은 새 왕의 후궁이 되어야 했습니다.

풍습이 다른 한족(漢族)인 왕소군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딸을 둘이나 낳고 72세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파란의 일생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후세의 문장가들은 왕소군의 삶을 소재로 작품을 세상에 내 놓았고 그중 하나가 당나라 동백규의 ‘소군원(昭君怨)’으로 그 내용 중에 들어있는 글이 바로 ‘춘래불사춘’입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아니 하네- 이 명구는 2천여 년을 지나 오늘에까지 전해오면서 해마다 봄이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한서(漢書) 서경잡기(西京雜記)에 나오는 글입니다.

중국인들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문화를 자랑하기를 좋아 합니다. 그들은 중국은 세상의 중심이요, 당연히 ‘중화사상’이 모든 것의 가운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장이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에는 왕소군을 포함해 4대 미녀가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와 월(越)나라가 자웅을 다툴 때 서시(西施)라는 미인이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를 홀려 망하게 했습니다. 4대 미녀의 맨 처음인 서시는 강가에서 빨래하는 모습을 본 물고기가 정신을 잃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하여 침어(沈魚)라고 부릅니다. 그로부터 침어낙안하면 서시와 왕소군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초선(貂蟬)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미인입니다. 조조가 등장하기 전 천하의 역신(逆臣)이었던 동탁(董卓)과 여포(呂布)사이에 끼어들어 동탁을 제거하는데 공을 세운 여인입니다. 초선의 미모는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하여 폐월(閉月)이라는 애칭을 얻었습니다.

또 그 유명한 양귀비가 있습니다. 귀비가 되기 전 그녀의 본명은 옥환(玉環)입니다. 본래 옥환은 현종(玄宗)황제의 18번째 아들의 비(妃)입니다. 그러니까, 며느리였습니다. 그러나 현종은 첫눈에 반해 갖은 꾀를 다 써 아들과 며느리 사이를 갈라놓고는 결국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현종의 나이 57세, 옥환의 나이 22세였습니다.

세상은 어수선해도 봄을 즐기는 사람들은 즐겁다. 서울 잠실 롯데 월드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이 날마다 성황을 이루고 있다. /NEWSIS

옥환은 재주가 뛰어나 시를 짓고 비파를 잘 탈뿐더러 춤에도 능해 현종의 총애를 온몸으로 받았습니다. 그녀의 애칭은 수화(羞花). 양귀비의 어여쁜 얼굴을 보고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 올렸다는데서 나온 말입니다. 그로부터 폐월수화라 하면 초선과 양귀비를 가리키는 별칭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양귀비를 천하일색이라고 미인의 으뜸으로 말하지만 전해 오는 야사(野史)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어떤 글에는 키가 164cm에 체중 69kg, 또는 160cm에 60kg이라고도 하고 어떤 기록에는 155cm의 작은 키에 65kg의 체중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는 종잡기 어렵지만 공통적인 것은 장신이었든, 단신이었든 당시 당나라 사람들은 풍비농염(豊肥濃艶) 열렬방자(熱烈放姿)를 으뜸으로 여겨 살찐 여자를 첫 번째 미인으로 꼽은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전해오는 그림 중 목욕탕에서 금방 나오는 ‘귀비출욕도(貴妃出浴圖)를 보면 양귀비의 몸매가 탐스럽고 농염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현종은 즉위 초기만 해도 정사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옥환을 들이고 부터는 정신을 잃고 정사를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옥환의 오빠와 언니들을 모두 높은 자리에 앉히고 결국 그들의 전횡으로 당나라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합니다. 끝내는 ‘안사의 난’이 일어나 현종의 눈앞에서 양귀비는 병사들의 강요로 목을 매야 하는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의 나이 37세였으니 이름값에 비하면 짧은 일생이었습니다.

왕소군을 뺀 서시, 초선, 양귀비 세 여인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뛰어난 용모로 권력자들을 한눈에 사로잡아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말로 팜 파탈(Femme Fstale)이었습니다. 팜 파탈은 파멸로 이끄는 ‘숙명적, 치명적인’을 의미하는 파탈과 여성을 의미하는 팜의 합성어입니다. 19세기 유럽의 문학에서 사용을 시작하였고 주로 남성을 파멸적인 상황으로 이끄는 매혹적인 여자의 뜻으로 쓰입니다. 옴 파탈(Homme Fatale) 은 그 반대의 경우, 즉 여성을 파멸로 이끄는 남성을 말합니다.

4월, 봄이 한창입니다. 엊그제가 곡우(穀雨)요, 5월 6일이면 입하(立夏)입니다. 절기로는 이제 여름이 시작되니 농촌은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대자연의 운행이 신비롭기 그지없지만 우리는 올 봄도 예외 없이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춘래불사춘은 어느 곳에나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강원도에 큰 불이 나 많은 피해를 입히더니 경남 진주에서는 조현병환자의 방화와 칼부림으로 애꿎은 주민들이 목숨을 잃고 다쳤습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큰 사건들이 꼬리를 잇고 있습니다. 날마다 커지는 연예인들, 재벌 3세들의 성관계뉴스에 마약사건, 전직 차관의 성상납사건 등등 우리 사회 는 왜 이리 조용한 날이 없이 어수선 하기만 한 지 모르겠습니다.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잠재워야 할 정치권은 정쟁을 넘어 아예 광장으로 나가 함성을 지르며 시민들을 불러 모읍니다. 불을 끌 생각보다 기름 붓는 것을 더 좋아하니 국민들은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봄은 희망의 상징입니다. 희망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내일에 대한 밝은 기대입니다. 삶에 지친 국민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꿈을 가질 때 봄의 의미가 있습니다. “봄이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아니하다”는 춘래불사춘이 돼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희망의 사회라고 하기 에는 낯이 부끄럽습니다. 그것이 안타깝다는 말입니다.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