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수 교수의 청주 인물 이야기

목은영당(牧隱影堂)은 충북 청주시 청원구 주성동 50번지[충청대로 272번길 230-1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목은영당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과 부속 강당이다.

목은영당은 이색의 학덕과 청주에서의 유서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인 한산이씨 이붕해(李鵬海)와 그의 종형 이조해(李朝海)가 주도하여 1714년(숙종40)에 주성리에 건립하였다.

청주에서 내수 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목은영당이라고 쓰여 있는 큰 돌비석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고불고불한 길을 가다보니 넓은 잔디밭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는 제법 큰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영당은 1987년에 보수한 것으로 건물은 홍살문, 영당, 강당, 내삼문, 외삼문으로 배치되어 있다. 영당 건물은 내진과 툇마루로 구성된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로 온돌방을 각각 설치했다. 권상하(權尙夏)가 쓴 ‘목은영당(牧隱影堂)’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마당 앞으로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솟게 지은 대문[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그리고 마당에는 이성원이 짓고 이항복(李恒福)이 쓴 목은 선생 사적비를 1987년에 세웠다. 내삼문 앞에는 강당인 주성강당(酒城講堂)을 배치하였다.

 

*목은(牧隱) 영정(影幀)은 충남 서천 문헌서원(文獻書院) 영정을 1710년에 본떠서 그린 것이다. 3차 영정 봉안은 1844년(헌종10)에 다시 하였다. 현재의 영정은 1938년에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이 서화를 본떠서 그린 관복(官服)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이다. 가로 86㎝, 세로 160㎝의 먹으로 바탕을 그린 다음 색을 칠한 견본(絹本)이며, 이색의 제자인 권근(權近)의 화상찬(畵像讚)이 있다.

 

                     *목은 선생 화상찬(牧隱 先生 畫像讚)
                                                                  권근(權近)
    
빼어난 천품의 수미함으로(정천자지수미/挺天資之粹美)
성학의 정미함을 궁구하니(궁성학지정미/窮聖學之精微)
가슴속이 깨끗하여(흉금쇄락/胸襟洒落)
밝은 광채를 발하도다(영철광휘/瑩徹光輝)
실천은 독실함에 극을 이루고(천리극어독실/踐履極於篤實)
문장은 발휘함에 절묘하였네(문장묘어발휘/文章妙於發揮)
증점(曾點)의 광은 아니로되 영귀의 흥취가 있었고(비점지광이유영귀지흥/匪點之狂而有詠歸之興)
유하혜(柳下惠)의 화 같으나 불공의 비난은 없었기에(유혜지화이무불공지기/猶惠之和而無不恭之譏)
학자들은 태산과 북두처럼 우러러 사모하고(학자앙지여산두/學者仰之如山斗)
국가에서는 시초와 거북처럼 의지하였네(국가의지여시구/國家倚之如蓍龜)
재상이 되어서도 평소의 지조를 변치 않았고(응대배이불변기색/膺大拜而不變其塞)
험난함을 당하여도 위엄에 굴하지 않았도다(리대난이불출어위/履大難而不怵於威)
충심이 더욱 신실하여(적심미량/赤心彌諒)
평소의 지조 안 바꾼 건(소절불이/素節不移)
참으로 공이 스스로 한 말이거니와(진공소이자도지사야/眞公所以自道之辭也)
강한이 도도히 흘러가 듯(약부강한도도/若夫江漢滔滔)
운연이 뭉게뭉게 일어나듯(운연비비/雲煙霏霏)
구양수(歐陽脩)와 한유(韓愈)를 따라잡아(추축구한/追逐歐韓)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병가제치/並駕齊馳)
후세에 공의 문장을 보는 이가(후지관자/後之觀者)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리로다(지오언지불기야/知吾言之不欺也)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 말기의 문신ㆍ학자이다.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이다. 중국 원나라에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귀국하여 우대언(右代言)과 대사성(大司成) 따위를 지냈다. 삼은의 한 사람으로, 문하에 권근과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학문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조선 개국 후 태조가 여러 번 불렀으나 절개를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저서에 ≪목은시고(牧隱詩藁)≫, ≪목은문고(牧隱文藁)≫ 따위가 있다.

 

*권근(權近, 1352~1409)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ㆍ학자이다.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다. 성리학자이면서 문장에도 뛰어났으며, 왕명으로 하륜 등과 함께 ≪동국사략≫을 편찬하였다. 저서에 ≪양촌집≫,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 따위가 있고, 작품에 <상대별곡(霜臺別曲)>이 있다. ≪청주대 교수 겸 청주학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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