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친일파를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똑같은 비극을
되풀이 합니다.”
오늘 과거의 진실을 보는
그 지혜를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프랑스 파리에 입성한 것은 1940년 6월 22일이었습니다. 프랑스, 미국 등 연합군이 다시 파리를 탈환한 것은 1944년 8월 25일입니다. 그러니까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군홧발에 짓밟힌 것은 정확히 4년 2개월 이었습니다.

치욕 끝에 다시 제 땅을 찾은 프랑스정부가 폐허 위에서 첫 번째로 착수한 일은 점령 기간 동안 독일군의 앞잡이 노릇을 한 반역자를 색출해 내는 일이었습니다. 민족을 팔아 적군을 돕고 이득을 취한 배신자들이 전국에서 10만 명이나 검거됐습니다. 이들은 독일군에 붙어 동족을 괴롭힌 자 들이었고 그 가운데는 지식인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검거된 자들 가운데 6700여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3만 7000여명이 투옥됐으며 죄질이 가벼운 4만 여명이 공민권을 박탈당해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금지됐습니다. 독일군에게 몸을 허락했던 여자들은 삭발을 당하고 옷을 찢긴 채 “독일 놈에게 몸을 팔았다”는 표지를 달고 거리를 끌려 다녔습니다.

모든 부역자들은 그처럼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책임을 추궁 당했고 또 응징을 감수해야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프랑스인의 자존심을 건 거국적인 ‘대청소’였던 것입니다. 오늘 날 ‘1등 국민’이라는 프랑스인의 우월감은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과 ‘예술의 나라’라는 자부심, 거기에 더해 전후정리라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국민운동으로 자존감을 높였던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같은 전후 청산은 프랑스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벨기에는 5만 명, 네덜란드는 4만 명, 노르웨이는 2만 명을 나치 협력자로 가려내 사회로부터 추방했습니다. 전후 ‘위대한 프랑스’, ‘위대한 유럽’은 거기서부터 출발했다고 역사가들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정확히 식민지35년(1910~1945), 프랑스의 9배나 되는 긴 세월 속에 온갖 수탈과 질곡으로 신음한 이 나라는 과연 몇 사람의 친일파를 색출해냈고 또 단죄했는가? 일제의 주구(走狗)가 되어 나라를 넘겨주고 동족의 피를 빨던 매국노들은 그 얼마이고, 제 민족을 고문하던 그 ‘인간짐승’들은 또 얼마였는가?

정부수립직후인 1949년 국회의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한 기간은 고작 8개월이었습니다. 당초 조사대상 7000명 중 영장발부는 682건. 그나마 실형선고 7명, 집행유예 5명, 공민권정지 18명 등 30명만이 제재를 받았고 실형을 받은 7명도 1년 여 만에 모두 풀려났습니다. 친일파 청산이라는 민족적 과업은 그렇게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승만정부의 의도적인 방해 때문이었음은 명명백백합니다.

경북 의령군 한 농촌에서 마을 농민들이 따사로운 봄볕아래 부지런히 마늘을 심고 있다. /의령=NEWSIS

어디 그것뿐인가. 해방 뒤 일제관리 7만 명이 독립된 정부에 충원됐고 특히 경찰간부의 70%는 친일경력자였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독립지사를 잡아다 고문하던 그 경찰이 이번에는 해방된 새 나라의 경찰로 둔갑해 친일분자를 조사하는 진풍경을 연출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송건호·‘解放前後史의 認識’)

1948년 정부수립초기 고급공무원 가운데 55.2%가 조선총독부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이때부터 친일파청산의 첫 단추는 잘못 끼워졌고 소위 민족정기회복은 물 건너갔던 것입니다.

친일파 청산문제는 비단 이승만 정부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박정희정부도 그랬고 전두환, 노태우정부도 그랬고 김영삼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엊그제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가 “1949년 반민특위가 국민을 둘로 갈라놓았다”는 발언을 해 또 한 번 파문을 일으키면서 ‘친일파 청산’이란 문제가 다시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한국역사연구회 등 29개 역사학회·단체들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국민이 분열됐다는 왜곡발언을 한 나경원을 징계하라”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나선 것입니다. 또 한 차례 친일파 논쟁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입니다. 그러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친일세력을 청산하고 독립운동 세력을 한국 사회의 축으로 삼아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겠다”는 결연한 뜻을 밝혔던 것입니다.

사실 친일파 청산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해방 직후에도 그랬고 현재야 더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1948년 정부 수립당시 한국적인 사회 구조와 시대 상황은 프랑스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정부 수립 당시 갑자기 찾아 온 해방에 준비된 인재가 없었기에 일제 관리를 다시 등용해 쓸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큰 이유였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처절한 ‘넉두리’가 우리 현대사의 축을 이루고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시비비를 가리되 마음을 비우고 진실을 밝혀내는 전 국민적 성찰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얼마나 지지리 못난 민족이었으면 해방이 되고도 70여년이 넘도록 민족에 해악을 끼친 친일파들을 제대로 가려 낼 수 없었을까, 참으로 낯 뜨겁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솔직히 울컥 수치심이 솟구쳐 옴을 금치 못합니다. 이제나마 정치권은 이성을 되찾아 철없는 말장난으로 국민들을 화나게 할 것이 아니라 있었던 일은 있었던 대로 바르게 말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똑같은 비극을 되풀이 한다”는 경구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봄이 한창입니다. 계절은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새들은 공중을 날며 노래합니다. 미세먼지라는 재해에도 짜증이 나는 나날, 거기 더해 마약이니, 성관계 동영상이니 금기어(禁忌語)들이 난무하고 김학의 성폭력 사건이니, 장자연리스트니 하는 고약한 추문들이 국민들을 더욱 피곤하게 합니다. 3월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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