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읽기 (2)

이전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읽기에서 보았듯이, 소크라테스(Socrates, BC470?∼399)는 당시 아테네인들로부터 두 차례의 反민주 쿠테타와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았고 이로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그로서는 억울한 혐의였습니다. 만약 그 혐의를 받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면, 오히려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Platon, BC 427?~347)이 더욱 적절할 것입니다.

플라톤은 명문 귀족가문 출신으로 젊어서 정치가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BC 404년 귀족과 反민주주의자들이 쿠테타를 일으켰는데 이들 중 몇몇은 플라톤의 친인척이었고, 젊은 플라톤은 이 쿠테타 정권에 동참하여 자신의 反민주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였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젊은 플라톤, 反민주 쿠테타를 흠모하다

바로 민주정체가 회복되어 정치적 입지를 잃어서건, 쿠테타 동조자로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건, 아니면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처형을 보고 정치 자체에 환멸을 느껴서건 플라톤은 이후 현실정치를 멀리하고, ‘아카데미(Academy)’라는 대학을 설립하여 엘리트 교육사업에 매진합니다.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가운데 등장하는 사람이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다.

대학 교수인 그가 귀족이나 부유층 자제를 모아놓고 여러 학문을 강의하였겠지만, 그 강의 중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주저인 ≪국가≫을 통하여 읽을 수 있는 그 자신의 계급적․위계적 세계관과 反민주적 정치관이 응당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 인간은 소질과 능력 면에서 차이가 있기에 그에 맞게 사회적 차별과 위계를 두어야 하며, 각자 혹은 각 계급은 오직 그 사회적 차별과 위계 속에서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할 때 훌륭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정치는 사회의 여러 분야와 직업 중 최고의 지식과 윤리가 요구되는데, 그런 정치는 그것에 적합한 지적․윤리적 탁월함을 갖고 태어나고, 그것에 필요한 고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전담하여야 한다, 셋째 이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진리(자연적 질서 혹은 궁극적 선)이므로, 이에 반하는 당대의 아테네 민주정체와 민주주의 사상은 폐지되고 금지되어야 한다. 

대단히 심오한 결론 같지만, 사실 이러한 결론은 최고의 지적․윤리적 탁월성을 갖춘 자는 자신과 같은 ‘철학자’이므로 그가 통치자(이러한 자가 다수이면 철인통치계급, 혼자면 철인왕)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빼고는,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진부하기까지 합니다. 무미건조하고 진부하다? 그의 학문적 결론은, 사실 당대 아테네의 귀족과 反민주적 엘리트들의 일반적인 정치언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특권을 주장하는 그런 어리 숙한 바보는 없습니다. 그들도 항상, 자신들은 탁월한 교육을 받고 훌륭한 교제와 경험을 하였기에 중대하고 복잡한 국가의 일을 누구보다 잘 처리할 수 있다, 자신들은 재산으로 많은 세금을 내어 국가를 부양해 왔고 탁월한 지식과 기술로 국가에 기여해 왔으니 주요한 국정을 결정할 응분의 몫이 있다, 스스로 부유하여 정치를 하더라도 부패하거나 매수될 염려가 없고 국가적 사안을 非당파적으로 공정히 처리할 수 있다, 보다 탁월한 정치적 지식과 기술을 가진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것이 공동체 전체를 위하여 보다 유익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본심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그들의 정치언어만큼은 항상 플라톤적입니다.     

▲ 아테네의 은화, 앞면에는 수호신인 아테나를 뒷면에는 아테나의 상징인 올빼미와 올리브 가지, 폴리스의 두문자를 새겨넣었다.

플라톤 교수, 평범하고 진부한 강의를 넘어서다

그러나 수많은 정치고전들 중에서 플라톤의 ≪국가≫만큼 많이 읽힌 책도 없고, 이보다 많은 논쟁을 낳은 책도 없고, 심지어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저서만큼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충격적인’ 정치고전도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평범한 더욱이 진부하기까지 한 결론을 도출하는 ≪국가≫를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이고 충격적인 정치고전으로 만든 것은, 플라톤이 구상하는 위와 같은 평범하고 진부한 계급적․위계적 이상 국가에 있지 않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언급한 부분에 있습니다.(다만 다음의 조치들이 통치계급에 국한되는 건지 사회전반에까지 확장되는 건지 플라톤은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구성된 계급적․위계적 국가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시민들을 계급과 위계질서에 맞게 교육 순화 시키고, 사상 문학 유희 심지어 단어 하나나 음율 하나 까지 검열하여 이러한 질서를 부정하거나 부식시킬 염려가 있는 것들을 엄격히 통제하고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대의 정치사상가 루소가 ≪국가≫는 정치고전이 아니라 위대한 ‘교육’고전이라고 할 정도로, 플라톤은 막대한 분량을 할애하여 꼼꼼한 금지목록, 삭제문구와 권장과목을 이야기 합니다.

어린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에 대한 검열관을 두는 거지, 검열관을 하여금 좋은 이야기는 장려하고 나쁜 이야기는 못하게 하잔 말일세. 그리고 그 모친이나 유모에게도 검열관이 장려하는 이야기만 들려주도록 요청하는 거지……신들이나 영웅들의 싸움, 친족간의 싸움에 대하여도 감추어야 하네……그래서 그들이 성장했을 때는 시인들도 그와 동일한 정신으로 시를 짓도록 강요해야 하네……우리는 시를 시작으로 하여 우리가 꺼리는 많은 구절들을 말살해 버려야겠네……또한 우리는 지옥을 묘사한 무섭고도 놀라운 명사도 피해야 하네……한 걸음 나아가 유명 인사들의 슬픈 노래나 가락도 없애면 어떨까……조각이나 건축 그 밖의 창작적 기술에서도 악덕 무절제 비천함 아름답지 못함을 표현하지 못하게 간섭해야 마땅하지 않나……그리하여 만약 우리의 국가에서 만들어 놓은 이러한 규칙을 위반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 시민들의 취향이 그들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도록 이를 금지 하는 게 옳지 않은가

이러한 사회적 차별과 위계의 기준을 설정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사회의 모든 사상과 문화를 검열하여 통제하고 금지하는 가위와 잣대를 갖는 자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결국 ‘국가(플라톤의 표현대로라면 통치계급)’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고상하게 말하는 정의(正義)는 이렇게 됨으로써 국가가 정의(定義)한 것에 불과하게 되고, 종국에는 그 국가가 정의(定義)하는 이념과 가치만이 유일한 정의(正義)로서 전 사회에 강제로 주입되고 통용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취지에서 20세기 정치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플라톤의 철인왕은 ‘전체주의(全體主義)적’ 정치기획이라며, 플라톤을 헤겔, 마르크스와 더불어 ‘열린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그러한 한 결과로서, 두들겨 맞건 죽임을 당하건 국가의 명령과 지시에 무조건적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크리톤≫의 소크라테스를 보았습니다.

反민주적 교수, 전체주의와 사이비 공산주의를 도모하다

그가 구상하는 조치 중 또 하나의 유명한 충격적인 조치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철인 통치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통치자의 자질을 타고난 아이들은 모아서 수십년에 걸쳐 음악과 체육부터 시작하여 산술학, 기하학을 거쳐 변증술과 현실정치 경험 등의 교육과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이들이 사치와 당파심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오직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충만 되게 하기 위하여)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공동으로 취식하고, 처자마저 공유(일부일처제의 폐지)하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교과서들은 철인 통치계급에 대한 재산소유 금지와 일부일처제 폐지를 가리켜 ‘공산주의적’ 정치기획이라고 일컫습니다.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차용하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적절한 표현은 아닙니다. 나중에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서도 설명하겠지만, 공산주의 특히 그 대표적 사상가로서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사적 소유 일반과 일부일처제의 폐기를 주장한 바가 없습니다. 그가 폐기를 주장한 것은 단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사적 전유(專有) 관계와 부부, 남녀간의 불평등 관계였습니다.  더욱이 플라톤이 사적소유의 폐지를 요구한 것은 통치계급에만 국한된 것이고, 그 취지도 사회경제적 평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원천인 탁월한 통치계급을 얻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의도는 공산주의 기획과는 정반대입니다.

▲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들이 사적소유와 일부일처제 폐지를 주장한다는 부르조아 이데올로그들의 왜곡에 대하여 이렇게 반박합니다. "공산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시민적 소유의 폐지다......사람들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에게 개인적으로 획득한,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여 얻은 모든 개인적 자유, 활동과 자립성의 토대가 되는 소유를 폐지하려 한다고 비난했다......공산주의는 어떤 사람에게서도 사회적 생산물을 취득할 권력을 빼앗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이 취득을 통해 타인의 노동을 자신에게 예속시키려는 권력을 빼앗는 것이다......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유제를 도입하려 한다고 부르조아지 전체가 한목소리로 우리에게 외쳐댄다......(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부인공유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거의 언제나 존재해왔다. 공공매춘은 말할 필요도 없이, 프롤레타리아들의 부인과 딸들을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의 부르조아들은 자기 부인들을 서로 유혹하는 것을 주요 오락거리로 삼는다......현재의 생산관계를 철폐하면 여기서 파생된 부인공유제, 즉 공식적 비공식적 매춘도 사라질 것임은 명백하다"

여하튼 플라톤이 통치계급의 사적소유를 금지시킨 것은, 경제적 부(富)와 그것을 둘러싼 분쟁이 공동체의 분열을 낳고 정치적 파멸을 낳는 제일의 계기라는 것을 그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것은 비단 플라톤만이 아닙니다. 당대의 거의 모든 학자 심지어 일반 시민도 비록 초보적일지라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플라톤은 부(富)를 둘러싼 분쟁이 공동체와 정치에 치명적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통치계급에 한하지만) 근본적으로 소유 자체를 폐지하지 않고는 그 악영향 자체를 없앴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더욱 충격적인 제안도 합니다. 그는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자녀 생산을 위하여 국가가 그들의 성관계 여부나 성관계 상대방까지 통제하고(여기서 플라톤은 여성도 통치계급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는 ‘남녀평등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인 생각이라고 주장하나, 제가 보기에는 단지 탁월한 유전자를 얻기 위한 플라톤만의 고육지책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우수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열등한 영아는 살해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합니다. 우수한 게르만 혈통 유지를 위하여 동성애자, 신체불구자, 정신박약자에 대한 불임수술과 격리를 주장하는 나찌 이데올로그를 보는 듯합니다.

(개와 새의 양육에서 우수한 품종을 얻기 위해서 우수한 종자만 골라 번식시키는 예를 거론한 후) 결국 이러한 원리는 인간에게도 적용되겠지……우수한 남녀끼리, 열등한 남녀끼리 결합 시키는거지. 그리고 국민들을 가장 이상적인 수준에 이르게 하려면 우수한 자들의 자손만 양육하고 열등한 자들의 자손은 양육하지 말아야 하네……우수한 아이들은 담당 관리에의 손을 거쳐 육아원으로 보내져서 유모에게 맡겨지고, 불구자와 열등하게 태어난 아이들은 남몰래 비밀스럽게 처치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네

플라톤의 이러한 주장은 영화 ≪300≫에서 불구로 태어난 아이를 살해하여 쓰레기처럼 버리는 스파르타인들이 연상됩니다. 그러고 보니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스파르타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실제 플라톤은 모든 생산적 활동은 노예로 하여금 담당케 하고, 시민계급은 공동으로 취식하며 오직 군사훈련에만 집중하는 스파르타 체제를 흠모하였습니다. 다만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자가 되고, 그가 시민들에게 군사훈련과 더불어 철학교육을 해준다면 플라톤에게는 완벽한 이상의 실현이었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철인정치가의 표본”

플라톤은 자신이 구상한 이런 정체를 ‘아리스토크라티아’(Aristokratia, 가장 탁월한 사람이 지배하는 정체)라고 명명하고, 이는 자신의 철학에 동조하는 엘리트와 학생들에게는 추구할만한 이상적인 모범국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말대로, 모든 시민은 주어진 자신의 일에만 전념할 뿐 다른 일이나 정치에 관해서는 일체 간섭할 수 없고, 철인왕(통치자)은 법의 지배나 시민의 통제도 전혀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지식과 윤리에만 따라 정치를 행하고, 그가 정하는 이념과 문화만이 유일한 진리로 사회에 통용되고 그에 반하는 일체의 것은 금지되는 이러한 국가가 과연 가장 이상적인 국가일까요?

박정희 대통령은 이 민족이 절망에 가까운 빈사상태에서 헤매던 1960년대 초에 혜성과도 같이 나타나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던 겨레에게 나아갈 길을 올바르게 제시해 준 위대한 영도자이다. 그의 신분은 비록 군인이었으나 그의 인격과 통찰은 일찍이 역사상에서 보기 드문 철학자요 사상가요 예언가임을 우리는 그의 탁월한 리더십에서 역력히 찾아볼 수 있다. 세기의 현자 플라톤은 그 옛날 이른 바 철인정치를 제창하였거니와 우리의 영도자 박대통령이야말로 철인정치가의 표본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지난 10년간의 업적이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글은 1971년 유신정권시절 당대의 저명한 대학 교수들에 의해 집필되어 대량으로 살포된 ≪민족의 등불≫이라는 책에 들어있는 구절입니다. 어용 교수들이 정권에 대한 아부의 차원에서 박정희의 유신독재정치를 철인정치로, 박정희를 철인왕으로 비유하였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역설적이게도 플라톤의 이상적인 정치기획의 처참한 현실을 적절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독재자의 장기집권과 전횡, 시민의 자유와 인권 탄압, 독재에 이의를 제기하는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에 대한 구속과 사형, 국민교육헌장과 각종 어용 캠페인을 통한 국민 훈육, 사회정화의 명목으로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등…… 진정으로 유신정치는 아리스토크라티아의, 박정희는 철인왕의 적나라한 현신(現身)일 것입니다.

▲ 1970년대의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사진.

늙은 플라톤, ≪국가≫를 갖고 지상에 내려오다

그러나 플라톤은 정치철학자이지 종교적 예언가는 아닙니다. 그는 현실을 외면한 채 오직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국가인 ‘철인왕국’의 도래를 기원하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기에 이르러 ≪정치가≫, ≪법률≫을 통하여 ‘철인왕국’의 현실적 실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무력으로서 反민주 쿠테타를 도모하였다면, 늙어서는 지식으로서 그것을 도모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철인왕 같은 정치가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상적인 법에 의한 지배가 차선책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하고, (정체를 통치자의 수와 준법 여부에 따라 6개의 정체로 나눈 후) 현실적인 최선의 정부로 군주적 혹은 귀족적(=과두적 寡頭的) 요소와 민주적 요소를 결합한 혼합정체를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그 혼합정체를 실현하는 현실적인 제도와 그것의 운용 방법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법의 지배, 신민의 동의나 참여 등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국가≫의 철인왕에 비하여는 획기적인 발전입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하여 “법에 의하여 통치하든 그렇지 않든, 신민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진정한 철인왕이 지배하는 정부만이 유일하게 정당하고 참된 정부”라며, 자신의 ≪국가≫에서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치가≫와 ≪법률≫에서의 플라톤의 현실적 모색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정치가≫와 ≪법률≫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법의 지배, 6개 정체 분류, 혼합정체, 산술적/비례적 평등관 등은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철학에서 핵심적인 키워드가 됩니다.

플라톤의 각주(脚註)로부터 시작하는 아리스토텔레스

화이트헤드 교수의 표현을 빌려 비유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은 (플라톤의 ≪국가≫의 현실적 버전인) ≪정치가≫와 ≪법률≫의 각주(脚註)로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플라톤이 이상에서 현실로 내려왔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서 이상으로 올라간다는 점입니다.

이제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에서, 늙은 이상주의자 플라톤으로부터 反민주주의 강의를 듣고 있는 젊은 현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러 가봅시다. 현실주의자인 그가 말하는 최선의 사회체제와 정치질서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요? 그것은 스승 플라톤의 것과 어떻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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