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읽기 (1)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429)가 전몰자 추모연설에서 자랑스레 웅변하고 있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 원리에 기초합니다. 아테테인들은 이 원칙에 기초하여, 모든 성인 남성시민들이 그가 귀족이건 부자건 시장의 날품팔이건 항구의 막노동꾼이건 상관없이, 공적인 일을 결정하는 민회에서 참석해 동등하게 발언 투표하고, 오직 운에 따른 추첨으로 대표가 되고 공직에 취임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갖는 정치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사회경제적 지배계급이나 지적 엘리트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불만스럽고 불안한 것이었습니다. 초라한 행색으로 케케묵은 냄새마저 풍기는 하층민과 빈민들이 신분이 높고 교양 있는 자신들과 동등한 정치적 지위와 권한을 갖고 심지어 자신들의 대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불쾌하였고, 그들의 평등에의 요구가 정치에 머무르지 않고 언제라도 사회경제적 요구로 확대되어 자신들의 지위와 부, 명예를 위협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체를 정당화 하거나 그 정체의 세부적 운영 방식을 전해주는 정치고전이 전혀 없다는 것은, 그 당시 유일하게 읽고 쓸 수 있었던 지배계급과 엘리트들의 이러한 불쾌감과 두려움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불쾌감과 두려움을 대표하여 이를 철학적으로 승화시킨 대표적 정치사상가는, 바로 플라톤(Platon, BC 427?~347)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라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삶’이니 ‘정의’니 하는 심오하고 난해한 질문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치철학을 시작하고 있으나, 그 본래의 시작점은 바로 현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불쾌감과 두려움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들 정치철학의 고매한 의도를 너무 폄하하는 것이 아니냐구요? 나중에 보는 것처럼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림의 일부, 왼쪽이 플라톤 오른쪽이 아리스토텔레스다. 플라톤이 하늘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땅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들의 정치철학은 현실 민주주의에 대한 불쾌감과 두려움에서

플라톤의 ≪국가≫와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비교하여 읽은 사람들은 모두들, ≪국가≫는 단순 명쾌하여 쉽게 읽히는데, ≪정치학≫은 너무 복잡하고 많은 내용이 뒤섞여 있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것은 ≪국가≫는 플라톤 자신이 구상하는 이상사회를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음에 반해, ≪정치학≫은 다양한 현실을 비교하며 현실적 실천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화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플라톤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게 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국가≫와 ≪정치학≫이 정치에서의 갈등의 근원중 하나인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각각 담고 있더라도, 양자는 기본적으로 공통된 세계관과 정치철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세계관과 정치철학은,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화이트헤드), “모든 중요한 지식의 토대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버트란트 러셀)라는 말처럼, 근대가 되기 전까지 2천여 년간 서양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고․중세 2천여 년 동안 서양의 사회통념과 정치이념의 근간이 된 그들의 세계관과 정치철학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인류 2천여 년의 정신사는 그들의 각주(脚註)에 불과”

아테네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지역의 고대인들(아테네와 달리,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전제국가에 속해 있던 지배계급과 지적 엘리트들을 의미)은 인간은 태생적으로 혈통과 세습에 의해 서로 다른 신분과 계급을 갖고 태어나는 불평등한 존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불평등에 따라 왕/귀족/신민(臣民)/노예로 위계(位階)적으로 사회를 조직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권한을 왕과 귀족에게만 부여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민과 노예를 규율케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를 ‘자연적’ 혹은 ‘신에 의하여 부여된’ 질서라며 신비적 휘장을 둘렀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신민이나 노예, 여자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관념이나 이들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는 관습법과 성문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배계급의 과도한 탐욕으로 인한 기존 위계질서의 붕괴라는 최악의 상태를 예방하거나, 동일한 신분과 계급내의 질서를 규정하거나, 그 위계질서 내에서 이들 약자들에게 부여된 최소한의 지위와 재산마저 부당하게 박탈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혈통과 세습이라는 신분에 기초한 계급적․위계적 세계관은 근대 이전 수천년간 인간 정신세계를 지배하였고, 고․중세의 역사에서 보듯 그러한 세계관에 따라 사회체제와 정치질서를 구축하여 왔습니다. 그러한 세계관에서 벗어난 유일한 예외의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과 ‘아테네 민주정체’일 것입니다.

소피스트와 아테네인들, 신분과 위계에서 벗어난 유일한 역사

우리 교과서들에서는 ‘소피스트(Sophist)’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됩니다. 우리 교과서들에서 그것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한 교사들이 나타나기 전에그리스에 등장한 일군의 철학자들로, 현학적이고 속물적인 궤변론자들이나 절대적 진리 정의를 부정하는 상대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철학자들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과 철학이 위대한 교사들에 비하여는 비록 비루하고 미천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고대 아테네에서의 민주주의의 태동과 발전에 미친 그들 정치사상의 선진성은 재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래 그리스 지역은 많은 산맥들로 평지들이 분할되어 있어 소규모 도시국가(polis, 그리스 지역에 약 150여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체제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각각의 도시국가들은 여타 주변국가와 마찬가지로 모두 전제군주 혹은 귀족과두 정체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BC 7세기경부터 중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상업과 무역업이 발달하면서 신민들의 부(富)와 권리의식이 증대하고, 전투양식이 귀족과 부유층 중심의 기병․중무장보병에서 경무장보병․해군(노 젓는 군인) 중심으로 변하면서 신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게 됩니다. 신민들은 이러한 부와 군사적 기여를 바탕으로 정치적 발언권을 주장하게 되고, 이들의 주장은 솔론(Solon, BC 640~560?)과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 BC 570?~508?)의 개혁을 통하여 일부씩 받아들여져, 이제 그들은 단순한 지배의 대상인 신민(臣民)에서 통치 행위자 내지 협조자인 시민(市民)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종국에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이르러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 솔론(Solon), 아테네의 정치개혁가로 그의 개혁은 비록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테네 민주정체가 수립되는 시작점이 되었다.

스스로는 민주주의자는 아니지만 민주주의의 시작점이 된 솔론의 개혁은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와 같이 전통 귀족과 경제․군사적으로 성장하는 신민사이의 갈등이 점증하자, 귀족 출신의 정치가였던 솔론은 양자의 입장을 절충하는 헌법을 제정하여 위기를 모면하고자 합니다. 그는 고래와 같은 혈통과 세습에 의한 ‘신분’이 아니라 ‘재산’을 주요 기준으로 시민들을 4계급으로 나누어, 제1․2계급인 귀족과 부유층에게는 고위공직자와 기병, 제3계급인 중간 농민층에게는 하위공직자와 무장보병, 제4계급인 육체노동자에게는 단순히 민회와 재판에 참여하고 해군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차별적으로 부여하는 헌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재산 규모와 군사적 역할․정치적 권리를 연계시켜, 일반 시민에게도 시민권과 기초적인 참정권을 부여하되, 중요한 정치적 권리는 귀족과 부유층에게만 부여하는 방식으로 계급갈등을 봉합한 것입니다. 솔론의 개혁의 이러한 측면 때문에 그의 개혁은 현재까지도 때론 ‘현명한 입법’으로, 때론 나쁜 의미로 ‘금권정치(金權政治. plutocracy)’의 대표적 사례로 자주 비유되곤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솔론의 개혁은 귀족과 같은 기득권 세력과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민계급 모두에게 불만의 대상이었고, 양자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어 일시적인 참주정치(독재정치)를 거쳐, 모든 시민들에게 정치적 평등이 보장되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성립되게 됩니다.

소피스트 철학은 이러한 시민과 민주주의의 등장, 발전과 궤를 같이 합니다.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소피스트들은 앞서 본 그들 주변의 전제국가의 고대인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과 정치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귀족/시민(자유민)/노예의 신분상 구분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그들 중 일부는 노예제도를 부정하기도 하고, 공산주의 유사형태의 사회를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신분적․계급적․사회경제적 불평등 질서는 자연 혹은 신에 의하여 부여된 절대적 질서가 아니라 단지 인위적인 산물에 불과(이러한 불평등 질서는 정치질서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이러한 불평등 질서와 다르게 일반 시민들 모두가 평등하게 정치적 지위와 권리를 갖도록 정치사회를 디자인하는 것도 가능하고, 나아가 그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고, 실제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를 통하여 이것을 실현하였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한 교사들은 소피스트들과 아테네 민주정체의 이러한 인식에 근본적으로 반대하고, 새로운 세계관과 정치철학을 내세웠습니다. 그들이 새롭게 내세운 세계와 정치는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소크라테스, 정의란 무엇인가 묻다

플라톤의 ≪국가≫에 화자(話者)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470?∼399)는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심오한 주제를 대화 상대방들에게 묻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하여 폴레마르코스는 “정의는……모든 사람들에게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주는 것”이며 이는 “친구들에게는 유익을 주고, 적들에게는 해를 주는 것”이라고 하고, 트라쉬마코스는 “정의는 강자들의 이익에 불과하다”며 사회적 강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을 만들어 놓고 이를 정의로 강제할 뿐이라고 하고, 글라우콘은 “남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남으로부터 나쁜 짓을 당하지 않는 협약을 맺는 것이 입법의 시작이고, 이후 사람들은 그 입법이 정의롭다고 배우게 되고 결국은 그러한 것이 정의의 기원이 되고 본질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폴레마르코스의 정의관은 과거부터 전래되는 아테네인들의 상무(尙武)정신을, 트라쉬마코스와 글라우콘의 정의관은 당대에 유행하던 계급론적 시각과 사회계약론적 시각을 각각 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이들의 다양하고 서로를 용인하는 그러면서도 다분히 현실주의적인 정의관은 바로 소피스트들의 세계관과 정치철학의 일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하 동일)는 이들의 정의관과 근본적으로 결별합니다. 그는 정의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속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정의는 개인이나 대중의 선호․이익․평가․관행 여부와는 무관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소피스트적 시각에서 보면, 그가 말하는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정의란 사실상 ‘그 자신에게만’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말하는 정의는 어느 시대나 나라에도 통용되어야 할 객관적으로 참인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 폼페이에서 발굴된 모자이크, 소크라테스(아래에 상반신을 드러낸 채 앉아 있는 사람)와 플라톤(바로 위 중앙의 나무 밑에 앉아 있는 사람)이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의는 궁극적이고 절대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어느 시대나 나라에도 통용되어야 할  정의는 어떠한 것일까요?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설명은 이미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개인의 정의에 앞서 국가의 정의를 설명하겠다며, 국가를 인간의 영혼에 비유하여 설명을 시작합니다.

그는 국가에는 통치(정치)계급, 수호자(보조자, 군인)계급, 생산자계급 이라는 세집단이 존재하고(다만 소크라테스는 통치계급과 수호자계급을 아울러 광범위하게 수호자계급이라고 통칭하기도 하여,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키게 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각각 인간의 이성, 용기(기개), 욕망의 정신을 대변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본질적으로 위 3가지중 하나의 본성(소질과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러한 본성은 거의 변하지 않고 보다 고차원적인 것으로 쉽게 진화하지 못한다며, 이렇게 구별된 본성에 따라 사회적 차별과 위계를 만들어, 각자 혹은 각 계급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열중케 하고 다른 사람이나 계급의 일에는 일체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각자와 국가 모두에 행복을 가져온다며 그것이 정의라고 주장합니다.   

(소크라테스) 그대가 인간들은 모든 면에서 동료들과 비슷하게 태어나지 않고 저마다 다른 자질을 타고난다고 하니, 사람마다 어울리는 일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 사람은 이일에 적성이 맞고, 저 사람은 저 일에 맞다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 (상대방) 물론입니다 / 그렇다면 인간은 여러 가지 일이 아니라 한 가지 일만 할 때 더 성공하지 않겠는가? - 그렇습니다 / 그렇다면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겠군, 모든 사람들이 다른 일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적성에 따라 한 가지 일만 제대로 처리한다면, 더 많이, 더 쉽게, 더 멋지게 생산하게 될 것이네 - 당연합니다

우리는 앞서 구두 만드는 사람이 동시에 농부도 되고 직물공이 되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지. 구두 짓는 자가 우리에게 훌륭한 구두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그는 그 일에만 열중해야 하기 때문이지……더구나 전쟁의 경우, 이를 훌륭히 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이겠나? 아니면 너무나 하찮은 일이라 농부건 구두 만드는 사람이건 누구건 동시에 군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장기나 주사위놀이에서도 어릴 적부터 오직 그것에만 전념하고 노력해야 명인이 될 수 있는데, 하물며 군인은……

시민들에게는 한 가지 두드러진 재주를 갖도록 권장해서 각자가 자기 위치를 지켜야만 나라 전체가 번영하고 올바른 정치가 베풀어질 수 있고, 각자 나름의 행복도 가질 수 있다네……개개인은 국가 사회를 위한 일 중에서 선천적으로 자기 소질에 가장 잘 맞는 일 한 가지를 골라 평소 자기의 임무로 삼야야 하네……개개인이 ‘자기 일만 하고 다른 일이나 쓸데없는 일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법칙이 어린이 여자 노예 자유민 기술자 통치자 피통치자 등 각계각층 까지 침투되어 있을 때야 말로 나라를 더욱 훌륭하게 인도할 것이네……소질이 있어 기술자가 된 사람이나 다른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돈을 벌었다거나 세력이 강해졌다고 의기양양하게 군인의 무리에 끼려고 한다든지, 또는 군인 중 누군가가 자격도 없으면서 정치를 심의하는 지도자층에 가담하려고 한다든지 하여 서로의 도구와 역할을 바꾸거나 양쪽 일을 겸한다면, 이것이 나라를 파멸시키는 원인이 되네

▲ 플라톤, 그의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Aristocles)였는데 나중에 건장한 체격 때문에 플라톤('넓은'이라는 의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명문 귀족 출신으로 BC 404년 아테네에서 반민주 쿠테타가 일어나자, 이에 참여하려고 하였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정의란 주어진 자기 일만 하고 다른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

이러한 그의 세계관은 정치 혹은 통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는 사회의 여러 분야와 직업 중 정치는 최고의 지식 기술과 윤리가 요구되는데, 그런 정치는 그것에 적합한 지적․윤리적 탁월함을 갖고 태어나고 그것에 필요한 고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는 엘리트들이 전적으로 담당해야 하고, (인간의 정신에서 이성이 용기의 도움을 받아 욕망을 지배하듯) 시민들은 아무런 정치적 지위나 권리를 갖지 않은 채 그런 정치엘리트들의 지시와 감독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적 결론(철인통치)은 특이하고 기이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세계관(인간과 사회의 기본적 구성․운용 원리)의 연장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이 건설한 국가에는 시민 중 일부의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긴 하겠지만, 나라 전체를 위해서 국내 정치와 외교를 망라하고 최선의 결과를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짜내는 지식이 있을까? - 틀림없이 있습니다 / 그런 지식은 누구에게 있을까? - 그것은 수호자(여기서는 통치자를 의미)에게 어울리는 지식인바, 지금 우리들이 완전한 수호자라고 부르는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 따라서 국가가 소질과 능력에 따라 건설되었을 경우, 가장 적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는 이러한 계급이 가지고 있는 지식 때문에 전체적으로 지혜가 있다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나는 이렇게 선언하고 싶네, 시민들이여 당신들은 형제지만 신이 당신들을 서로 다르게 만들었다고. 당신들 중 누군가는 명령하는 힘을 지니게 만들었으며, 신은 이러한 사람을 만들 때 금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그래서 그들은 최상의 영예를 갖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 보조자가 되게 은으로 만들어졌고, 그 밖의 사람들은 놋쇠나 철로 만들어져 농부나 직공이 된 것이라고. 다만 이와 같은 것은 대체로 어릴 때 마련되지만, 때때로 금의 양친도 은의 아들을, 은의 양친도 금의 아들을 가질 수도 있다고. 신은 제1의 법칙으로 통치자에게 포고하는데, 우선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도록 유의하고, 어떤 이질적 분자가 자손들 속에 섞여 들어가는지 감시하고, 만약 자손에게서 혼합이 된다면 자연은 자리바꿈을 명할 것이며, 통치자는 그 자리를 바꾸는 자식을 동정해서도 안된다고……만약 놋쇠나 철로 된 사람이 국가를 지킬 때는 국가가 멸망한다고.

“놋쇠나 철로 된 사람이 국가를 지킬 때는 국가가 멸망한다”

소크라테스가 ‘놋쇠로 만든 사람들’과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나 정치를 논하고 국가를 지키는 세상’으로 무엇을 풍자하고 비난하고자 하였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플라톤의 ≪국가≫는 당대의 아테네 민주정체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자유적․평등적 정치이념인 소피스트철학에 대한 부정이며, 역사를 민주주의 이전의 과두체제나 그 이전의 전제군주체제로 되돌리려는 명백한 반동적(反動的) 정치기획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플라톤이 생각하는 올바른 세계와 정치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플라톤은 여기서 나아가 말 그대로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주장을 더 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충청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