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없다”

 

ㅡ5000년을 같이 살아 온 민족이
70년을 헤어져 살아왔습니다.
이제 함께 살아야 합니다.
왜? 같은 민족이기에―

 

파격이었습니다. 파격, 파격,…전혀 예상하지 못한 파격이 거듭됐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처음부터 끝까지 파격의 연속이었습니다. 문재인, 김정은 두 정상은 남과 북의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의 시선을 요동치는 한반도로 끌어 당겼습니다.

서울 공항을 떠난 대통령 전용 공군1호기가 불과 1시간 만에 평양국제공항에 모습을 나타내면서부터 파격은 시작됐습니다. 꽃술을 든 오색한복의 수많은 평양 시민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여사의 공항 영접, 인민군 의장대의 절도 있는 행진, 흥겨운 군악대 연주 속에 21발의 예포가 발사되면서 놀라움은 시작됩니다.

예도(禮刀)를 높이 빼든 의장대장의 “대통령 각하! 조선위병대 명예위병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라는 극존칭의 쩌렁쩌렁한 보고 소리, 끝이 없이 연도에 늘어서서 환호하는 수많은 시민들… 모든 것이 예상을 뛰어 넘는 뜨거운 환대였습니다. 70년 적대 관계를 이어 온 상대국의 국가 원수에 대한 영접치고는 어디서도 들어 보지 못한 파격적인 예우였습니다.

서울~평양 195km. 이수로 치자면 500리 도 안 되는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워낙 오래 등을 돌리고 지내 온 금단(禁斷)의 땅인지라 한 장면, 장면마다 낯설고 신비롭기까지 해 두 정상이 보여주는 일거수, 일투족은 그대로 극적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회담에서 두 정상이 ‘9월 평양공동선언문’을 통해 합의한 6개항을 직접 발표 할 때도 파격은 계속됐습니다. 잘 나가던 북미회담이 정체돼 과연 어떤 합의점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우려했던 것에 비하면 일단 성과를 이끌어 냈으니 우선 안도하게 됩니다. “이제 전쟁은 없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입니다.

자평(自評)이기는 하지만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는 사실상 남북 불가침 합의서”라거나 “평양공동선언은 실질적 종전 선언”이라고 한 청와대의 평가가 일견 그를 뒷밭임 해줍니다.

①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한다. ②남과 북은 교류협력을 증대하고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위해 실질적인 대책을 강구한다. ③남과 북은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해결을 위해 금강산상설 면회소를 개소하고 인도적 협력을 강화한다. ④남북은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 고조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적극 추진한다. ⑤남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실질적 진전을 이루어 나간다. ⑥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가까운 시일 내(올해 안) 서울을 방문한다.

우리 국민들은 오랜만에 구경 잘 했습니다. 2박 3일 동안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이 벌인 ‘평화 쇼’는 내용도 쏠쏠했던 데다 결과도 좋았으니 성공적인 흥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모든 것이 뒤떨어져 망하기 직전, 악의 상징처럼 알고 있던 평양, 그러나 마천루처럼 아파트가 늘어선 평양거리가 유럽의 어느 도시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 전율조차 느끼게 했습니다. 통일운동가인 작가 황석영의 책 이름처럼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였습니다.

백두산 정상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일 위원장 내외가 수행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백두산=정상회담 공동취재단 NEWSIS

이번 문대통령의 평양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19일 밤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명의 평양시민 앞에서 행한 연설이었습니다.

문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소개로 7분여 계속된 연설에서 “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가겠다”면서 “우리민족은 5000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는 사자후(獅子吼)에 평양시민들은 열 두 번이나 뜨거운 기립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실로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라며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는 의미 있는 발언은 북한 주민들에게 격려가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2000년 김대중·김정일 회담, 2007년 노무현·김정일 회담, 그리고 이번까지 정상회담을 수행한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이 ‘총론적 성격’이라면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은 ‘각론적 성격’이며 이번 5차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은 ‘실천적 성격’이 짙다”고 규정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남북관계가 18년 만에 비로소 본궤도에 들어섰다는 의미입니다.

평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평화야 말로 당대 최고의 가치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언제이건 전쟁은 인류의 공적(公敵)입니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광들의 불장난으로 인해 희생되었습니까. 1950년 6·25전쟁, 그리고 오늘까지 지속돼온 기나긴 휴전, 남과 북 우리 민족이 겪은 전쟁의 공포와 수난은 그 얼마였습니까. 지난해만 해도 일촉즉발, 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를 뒤덮지 않았습니까. 그랬기에 오늘 두 정상의 “전쟁은 없다”는 평화선언이 남북 국민에게 더욱 더 크게 들리는 것입니다.

남북의 적대관계는 바로 동북아의 불안, 세계의 불안요소입니다. 마찬가지로 남북의 평화는 곧 동북아의 평화이고 그것은 곧 세계의 평화이기도 합니다.

벌써 몇 해입니까. 1950년에 전쟁을 치러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고 1953년 휴전이 된지 65년. 그때마다 한반도는 시한폭탄으로 세계의 화약고가 돼 왔습니다. 언제나 독재자들은 안팎으로 긴장을 조장하고 불안을 부추겨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해 온 게 사실입니다. 북쪽에서는 남의 ‘북침’을 내 세우고 남쪽에서는 북의 ‘남침’을 구실삼아 불안을 조성해 정권을 유지해 온 것이 이 나라 현대사입니다.

이제부터입니다. 한반도의 시계바늘은 이제부터 새로 돌기 시작합니다. 김대중의 6·15선언, 노무현의 10·4선언이 워밍업이었다면 이제는 평화를 위한 실천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의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주변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와 동상이몽의 이해관계를 극복해 내야 합니다. 그것이 슬기요 지혜입니다. 엊그제 대동강 능라도에서 벌인 15만 평양시민의 대규모 집단 쇼를 보지 않았습니까.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국민이 하나가 돼야합니다. 통일로 가는 길에 여야가,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이라는 두 글자, 그것은 우리 민족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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