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영문학) 교수

▲ 김상구 청운대 교수.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은, 순수하게 독창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예술품)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인용부호 없이 인용문만으로 된 책을 쓰고 싶다던 베냐민의 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명이 발전하여 역사를 이루면서 문화의 층이 더욱 두터워 졌고, 이에 새로움을 발견해 내려는 문화의 창조자들은 선배 시인들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한 몸짓을 해야만 했다.

헤롤드 블름이라는 미국 문학 비평가의 말을 빌리자면 후배 시인은 선배시인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놓이게 되는데, 후배 시인은 강한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의도적으로 그를 왜곡하고 방어적으로 읽음으로써 자신의 창조성을 부각시키려 했는데, 블름은 이것을 ‘영향의 불안(the anxiety of influence)’이라고 불렀다. 동서양의 훌륭한 작가들이 이 영향의 불안에서 자신을 담금질 하여 문학사에 훌륭한 작품을 남겨 놓고 있다.

후배시인이 ‘강한 시인(strong poet)’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배 작가라는 ‘문지방’을 넘어 자신의 독창성으로 우뚝 서기도 하지만, 많은 작가들이 선배작가의 자장을 맴돌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심지어 존경하는 선배작가들의 작품을 노트에 필사하며 그들의 문체와 내러티브를 모방해 보지만 자신의 것으로 육화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때로는 비루하게 표절하고 만다. 심지어 도용까지 하여 역사에 오명을 남기고 쓸쓸하게 퇴장하기도 했다.

타인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작품에 그대로 옮겨오는 일은 첫째, 상상력과 작가라는 양심이 견고하지 못한데서 출발한다. 소설가(작가)는 늘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돈키호테다. 영어로 소설(novel)의 어원적 의미는 ‘새로움’에 기원을 두고 있다. 18세기 이전의 로맨스와는 달리 산문이 새로워졌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는 해변가를 거닐다가 학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나도 저렇게 예쁜 여인을 언어로 창조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소설가는 스티븐 디덜러스처럼 언어로 새로움을 벼리는 대장장이여야 한다. 남의 훌륭한 문구를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비슷하게 옮기는 사람에게 소설가(작가)라는 칭호는 적절하지 않다.

▲ 대한민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신경숙 작가가 최근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둘째, 작가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구조, 즉 출판사와 평론가들이 작가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시장의 이득을 취하는 경우이다. 한마디로 인세(印稅)에 눈먼 경우이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창녀가 몸을 팔아 구두를 사는 것과 자신이 멋진 옷을 입고 시장(市場)에서 사상을 팔아 작가가 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비교한 일이 있는데 이것은 문학의 시장성을 의식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연예기획사가 연예인을 고용하여 상품화하듯 출판사가 막강한 영향력으로 작가를 거느리다시피 하는 것은 시장과 무관하지 않다.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는 평론가들을 동원하여 주례사 비평같은 허접한 미사여구를 늘어놓고 각종 판촉행사, 작가와의 대화를 벌이며, 때로는 베스트셀러로 둔갑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책을 구매하는 것은 보들레르가 멋진 옷을 입고 시장을 돌아다니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은 상상력의 빈곤, 작가의 양심, 시장의 이득과 관련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상상력이 빈곤할 때 작가는 표절의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독자의 많고 적음이 훌륭한 작가의 징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오히려 작가의 양심이 시장과 대칭을 이룰 때 고고한 작가로 남아있을 수 있다. 영국의 서머셋 모옴이나 미국의 F. 스콧 핏제럴드같은 작가는 처음에 훌륭한 소설을 썼지만 돈을 벌기위해 글을 마구 쓴 나머지 형편없는 작가로 추락하고 말았다.

신경숙은 자신이 넘어진 문학이라는 땅을 다시 짚고 일어나겠다는 인터뷰를 했는데 이 말의 진정성은 앞으로 발표할 그녀의 작품이 말해줄 것이다. 신경숙은 표절이라는 윤리의 커다란 운동장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문학뿐 아니라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표절의 종식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표절은 타인의 영혼까지 훔쳐가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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