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부모가 되어간다”

제도이거나 구조로서의 가족은 세상의 많은 영화들에 탐구주제를 제공함으로써 다양하고도 풍요로운 영화 리스트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가족이라는 제도와 인간의 삶을 연결하는 강하고도 질긴 끈이 끊어지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가족에 대한 영화적 탐구는 이어질 것이다.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2016)라는 아릴드 안드레센 감독의 노르웨이 영화와 이동은의 <당신의 부탁>(2017)이 맞닿는 접점 또한 ‘가족’이다. 두 영화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우리는 가족일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질문한다.

랑스러운 아내 카밀라(엘렌 도리트 페테르센), 귀여운 6살 아들 다니엘(크리스토페르 베치)과 함께 하는 행복이 넘치던 시간은 너무 짧았다.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떠나간 아내의 빈자리 앞에서 키에틸(크리스토퍼 요나)은 자신이 얼마나 깊이 카밀라를 사랑했는지, 여전히 절실히 그리운지를 수시로 되새기며 고통을 곱씹는다. 노르웨이 영화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의 시작은 여태까지 보아왔던 ‘상실 그 후’의 이야기로부터 멀지 않다. 거의 완벽했던 삼각형의 한 변이 사라진 후 남은 사람들이 버텨내야 할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가 펼쳐지리라는 걸 예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석유회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로 유정 출장이 잦았고, 갑작스런 호출에 수시로 달려 나가야 하는 키에틸에게 혼자 다니엘을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일상은 슬픔을 압도할 만큼 어렵다. “그렇게 말고, 엄마처럼 해 달라”는데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는 따스하게 품어주는 가슴과 정성스런 돌봄의 손길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여섯 살 아이의 절박함을 짐작조차 못한다. “아빠 미워, 나가서 죽어버려!”, 분노 조절 장애와 수면 장애 증상을 보이는 다니엘을 두고 키에틸의 고민은 깊어진다.

“제 아들이 아닙니다...제가 왜 다니엘을 떠맡아야 합니까?” 하지만 키에틸의 응답과 선택은 뜻밖이다. 다니엘의 입양은 아이를 간절하게 원했던 카밀라의 요구에 마지못해 응한 것이었다. 자신을 ‘부도덕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듯한 사람들에게 그는 진심을 다해 말한다. “다니엘에게 필요한 걸 주고 싶어요. 난 못 준다고요!” 다니엘이 ‘더 사랑 받으며 자랄 수 있는 곳’, ‘좋은 환경’을 찾기 위해 키에틸은 아이의 손을 잡고 콜롬비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한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핏덩이 다니엘을 포기했을 생모를 찾는다면 혹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서.

창백한 키에틸의 피부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콜롬비아로의 여행은 가슴 아픈 ‘파양’의 과정이 될 수도, 가족 복원의 전기가 될 수도 있는 갈림길에서 위태롭게 진행된다. 키에틸은 다니엘의 입양과정에서 알게 된 택시 기사 타보(말론 모레노)와 그의 여동생 빅토리아(패트리시아 캐스타네다)의 도움을 받아 다니엘의 생모 줄리를 찾으러 다닌다. 마약과 범죄에 노출된 채 아무런 부양능력도 없이 아이를 낳는 10대 미혼모들과, 열악한 시설 속에서 자라나는 버려진 아이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그는 다니엘이라는 낯선 존재에 대해, 그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Handle with Care>라는 영어제목을 번역한 한글 제목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어떠한 애착관계도 맺지 못한 채 남겨진 두 남자의 현실을 한 줌의 거짓도 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그 덕분에 키에틸과 다니엘의 관계는 미래로 나아간다.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을 애써 부인하지 않고 “내가 왜 다니엘을 떠맡아야 하지?”라고 솔직하게 물음으로써, 키에틸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되는 길을 결국 찾아낸다. 콜롬비아에서 키에틸은 간절하게 아빠를 찾는 다니엘의 콩닥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그 시간을 잊지 않고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한다면 아마 그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의 손을 꼭 잡고 키에틸은 다시 노르웨이행 비행기에 오른다.

 

랜만에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대개 불편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2년 전 남편을 갑작스런 사고로 잃은 뒤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보습학원 원장 효진(임수정)에게도 그랬다. 안 그래도 학원을 정리하는 문제로 마음이 부산한데, 간만에 연락한 시동생은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꺼낸다. 죽은 남편이 첫 번째 결혼에서 낳았던 16살 종욱(윤찬영)이 오갈 데 없어졌다며 대신 맡아 달라는 것이다. 펄쩍 뛰며 만류하는 친구 미란(이상희)의 성화가 아니더라도 효진은 안다. 자신이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도 “키울 상황이 아니”라고 말하는 대신 자신의 집에 종욱을 들인다.

배우 임수정이 분한 효진은 늘 힘이 없어 보여서, “힘이라면 남아돌던 애가 기운이 없네”라던 절친 미란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러니 그가 “애는 아무래도 엄마가 키워야 하지 않겠냐”는 시동생 말에 ‘엄마’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갑작스레 각성했거나, 야무지게 엄마 노릇을 감당할 작정을 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과연 효진은 종욱과의 동거에 그다지 열성적이지도, 새로운 가족 만들기를 위해 전력 분투하지도 않는다. 기운이 없거나 기력이 딸리는 만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종욱과 불편한 동거에 익숙해진다.

‘엄마’라고 부르기를 강요하지 않는 서른두 살 젊은 ‘엄마’와, ‘엄마’라고 불러야 하나 지레 위축되지 않는 열여섯 살 ‘아들’의 동거는 청소나 화장실 변기를 올리고 내리는 등의 자잘한 문제들로부터 좀 더 심각한 문제들과 맞부딪친다. 종욱의 중학교 때 친구인 주미(서신애)가 덜컥 10대 미혼모가 되면서 종욱은 효진이 그랬던 것처럼 책임과 선택의 문제를 고심한다. 혼자 전국을 돌며 친엄마를 찾는 종욱과 동행하게 되면서 효진도 누군가를 돌보거나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비로소 알아가는 것 같다.

<당신의 부탁>에서 효진의 엄마-되기는 다른 많은 엄마 이야기들과 나란히 배치된다. 만삭이었던 미란은 초보 엄마가 됐고, 효진은 딸 잘 되기만을 기원하는 엄마(오미연)의 잔소리에 번번이 질색하지만 사촌언니가 대신 모시는 걸 죄송스러워 한다. 생각지도 못하게 미혼모가 된 주미의 아픔이 있어 간절히 아이를 원하던 서영(서정연)은 엄마-되기의 소원을 푼다. 종욱이 그렇게나 찾았던 친모는 아니지만 한때 종욱을 품어주었던 연화(김선영)는 늦은 밤 혼자 찾아온 종욱을 옛날 그때처럼 따뜻하게 안아준다.

영어 제목 <Mothers>가 알려주는 것처럼, <당신의 부탁>은 어떤 것이 더 우월하거나 특권적으로 자연스러울 것 없는 세상의 많은 엄마-되기의 갈래들을 품는다. 열 달 배 아파 낳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떠안기도 하고, 때로는 거부하기도 하는 관계의 다양한 지평 속에 엄마-되기, 곧 ‘모성’이 자리한다. 영화는 웬만해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효진이 무슨 생각으로 종욱과 함께 지내기로 결정했는지 분명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건 영화적 리얼리티의 부족이라기보다 영화가 제안하는 ‘모성/성’에 대한 새롭거나 폭넓은 정의를 위한 효과적인 선택으로 양해된다. '엄마의 자리에 어떻게 가게 됐는가'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엄마가 될 것인가’여야 하기 때문이다.

롬비아라는 멀고도 낯선 나라로부터 아이를 입양한 노르웨이 남성 키에틸과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죽은 남편의 아들을 받아들이는 효진에게 부모라는 자리는 이미 도착해있거나, 경황없이 도착해버린 곳이다.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나버린 사랑하는 아내의 소원, 남편의 부탁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됐다. 그들은 자신들의 적극적인 의지 대신 타인의 의지를 좇아 당도한 아버지/어머니의 자리로부터 흔쾌히 받아들이고 헌신할 수 있는 어떤 자리를 찾는 여정을 떠난다. 그 여정 끝에 둘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처럼 보이나 그 자리는 결코 처음의 자리가 아니다.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에서 다니엘을 입양했던 기관을 찾아간 키에틸에게 20년째 일하고 있다는 원장은 말한다. “그동안 여러 경우를 봐왔죠. 포기하기도 하고 새 가족으로 거듭나기도 하는데 왜 누구는 성공하고 왜 어떤 이들은 실패하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와 <당신의 부탁>은 20년째 풀지 못하고 있다는 그 질문에 한 가지 답을 제시한다. 두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사랑이라는 이름의 헌신과 분투, 혹은 가족이라는 구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전제하거나 신성시하고 신화화하지 않는 솔직함으로부터 ‘성공’의 실마리를 찾는다.

<당신의 부탁>에서 효진은 장난스럽게 데이트를 청하던 연하남에게 “마음이 그냥 얻어지는 줄 알아요?” 대꾸했었다. 키에틸과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효진과 종욱도 사소하거나 심각한 일들을 함께 겪어내는 시간을 지내고 친밀감의 지층을 구축하며 비로소 가족의 자리에 조금씩 편안해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와 <당신의 부탁>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담아낸다. ‘선험적으로 주어지거나 신화화되는 것’으로서의 모성/부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새롭게 정의하려는 의지가 선명하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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