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들의 힘

 

―평화의 시동이 걸렸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짜릿한 순간,
그것은 역사에 남을 명장면.
야당에 대한 냉혹한 국민의 심판
그 원인은 오만과 독선―

 

과거 농사를 지어 먹고 살던 농경사회에서는 망종(芒種)을 전후한 이즈음이 연중 가장 바쁜 시기였습니다. 지난 해 수확한 양식이 떨어져 ‘보릿고개’가 한창이던 이때는 서둘러 햇보리를 벤 자리에 다시 땅을 갈아엎고 바로 벼를 심어야 했기에 잠시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뉴월 하루 놀면 동지섣달 열흘 굶는다”고 한 세시기(歲時記)에 보면 이 무렵의 하루, 하루는 농민들에게 금 쪽 같이 귀한 시간의 연속이었던 듯싶습니다.

올 6월은 때 이른 무더위에 뜨거운 대형이슈들로 하루가 참으로 바쁘게 지나갑니다. 12일 북한과 미국의 역사적인 싱가포르 회담에 이어 13일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일제히 치러지고 잇달아 14일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돼 전국에서 다시 “대~한민국!”을 소리쳐야하기에 차분한 날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실 꿈에도 상상할 수조차 없던 장면이었습니다. 12개의 강렬한 적청색의 인공기와 성조기가 화려하게 줄지어 세워져 있는 앞에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이 양쪽에서 걸어 나와 손을 잡는 장면은 그대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짜릿한 순간이었습니다. 현장의 기자들에 의하면 손을 잡은 시간은 정확히 12.5초. 그 순간을 위해 두 사람은 대를 이어 장장 68년을 기다려 온 것이니 ‘세기의 만남’이란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처음 만난 것은 1950년 7월입니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남한이 풍전등화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북한과 맞서 싸운 것이 역사상 두 나라의 첫 인연입니다. 3년에 걸친 6·25전쟁에서 미군은 36,574명이 전사했고 10만3,284명 부상, 3737명이 실종 되는 등 총 14만3,595명의 피해를 당했습니다. 북한군 역시 전사 29만4000명, 부상, 실종 등 332만 명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했으니 65년 동안 마주보고 총만 쏘지 않았을 뿐 적대관계로 이어 온 것이 북한과 미국 두 나라입니다. 북한은 기회 있을 때 마다 “미제 원수 놈들”이라고 이를 갈았고 미국 또한 월등한 군사력을 앞세워 북한을 위협해 왔습니다. 몇 달 전만해도 서로가 책상 위의 ‘핵 단추’를 들먹이며 전쟁 일보 전까지 갔던 것을 생각하면 극적 반전(反轉)도 이런 반전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불구대천, 적과 적의 만남, 원수들의 대좌(對坐)였던 것입니다.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한 순간 두 사람에게 쏠렸고 박수소리가 넘쳐났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평화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김정은은 이번 트럼프와의 회담을 통해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했습니다. 3대 세습의 독재자, 고모부를 살해하고 이복형을 암살한 잔혹한 인물, 정적을 숙청하고 인권을 짓밟는 철부지 등 온갖 악행을 일삼는 ‘천하의 악동’으로 불리어지던 그는 한 순간 신데렐라가 되어 국제무대 외교 전면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도 세계 제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과 마주 앉아 담판을 벌이는 모습은 그가 정상 국가의 지도자임을 명료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전 세계의 신문과 방송기자들 3000명이 싱가포르에 집결하고 국내의 모든 방송들이 정규프로를 중단하고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생방송으로 종일 화면을 채울 정도였으니 34세의 젊은 김정은과 72세의 노회(老獪)한 트럼프가 연출한 이번 연기는 세계사에 기록될 대사건임이 분명합니다.

석달만에 세번째 중국을 방문한김정은위원장이 시진핑주석내외와 함께 서있다. 왼쪽은 부인 이설주./NEWSIS

이번 북미회담은 만남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회담 반대론자나 회의론자들은 CB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가 어떠니, 뭐니, 트집을 잡고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만났다는 그 자체만으로 ‘평화의 시동’을 걸었다는 점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인류 지상(至上)의 가치는 평화입니다. 평화가 없이 인간의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난관이 있을 것입니다. 장애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뢰밭을 걷는 형국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지만 있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든다”는 성경의 말씀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지길 갈망하는 이유입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당에게 쓰나미라 할 만한 대형 참사를 안겨줬습니다. 선거 판세에 대한 여론 조사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예고하고 있었긴 하지만 야당이 그 정도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던 게 사실입니다.

전국 17개 시·도지사 가운데 14개 지역을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휩쓸고 단 두 곳, 그것도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 경북에서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했으니 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얼마나 컸던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기초 단체장인 시장·군수 역시 전국 226개 지역 중 더불어 민주당 151, 자유한국당 53, 민주평화당 5, 무소속 17이었고 서울의 경우 25개 구청장 가운데 24개 지역을 더불어 민주당이 석권했으니 이정도면 야당은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의 참패에 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른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시대를 역행(逆行)해 국민에 대한 오만이 불러 온 자업자득, 자승자박의 결과입니다. 당대표의 안하무인적 작태와 독선, 마구 내뱉는 막말,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로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켜온 업보(業報)가 오늘의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보수를 자칭하지만 그동안 걸어 온 길은 극우를 등에 업은 수구(守舊)의 행태였습니다. 좌우이념의 한 축으로서 합리적 보수의 길을 걸어 왔던들 오늘의 비극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70, 80년대 독재에 순치(馴致)된 그 국민들이 아닙니다. 선거 때면 ‘북풍(北風)’으로 국민들을 위협하고 비판적인 사람들을 좌파, 종북(從北)으로 매도해 통치를 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평소에는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국민들입니다. 그러나 잡초 같은 그들이 일어서면 무서운 태풍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4·19가 왜 일어났고 5·18이, 6월 항쟁이 어떻게 일어났던 가를 잊은 게 원인입니다. 정치를 하려는 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합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됨은 망각증이라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다면 오늘 보수 야당이 겪는 이 불행이 다시 또 되풀이 된다는 것일까? 그럼 다음은 어느 당? 대승을 거둬 희희낙락, 표정관리가 한창인 더불어 민주당이 아니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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