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시(詩)와 사랑을 싣고...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는 세상이니, 어쩌면 언젠가 ‘편지’라는 말은 교과서에나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편지를 쓰지 않는 세상에서, 택배나 고지서 등을 전하는 우편배달부의 모습이 억압적 노동환경이나 열악한 임금조건 등을 대뜸 떠올리게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니 한 때 묵직한 가방을 둘러멘 우편배달부의 모습이 심장을 두드리며 설렘을 안겨주곤 했다는 건 아득한 신화처럼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기억에서 시나브로 사라져가고 있는 우편배달부를 마이클 래드포드의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1994)와 박흥식의 <인어공주>(2006)에서 만나본다.

탈리아 작은 어촌 칼라 데 소토 섬에서 사는 마리오(마씨모 트로이시)는 백수로 하는 일 없이 지내면서 어부인 늙은 아버지에게 지청구를 듣는다. 극장에서 칠레의 유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 필립 느와레)가 자신의 섬에서 망명생활을 하게 됐다는 뉴스를 들은 뒤 마리오는 임시 우편배달부 모집 광고를 보고 취직한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오로지 한 사람, 파블로 네루다만을 위한 편지배달. 절대 네루다씨를 귀찮게 하지 말 것, 특히 그가 시적 명상을 할 때는 결코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게 사회주의자 네루다를 존경하는 우체국 상관 조르지오(레나토 스카르파)로부터 받은 작업 지시였다.

마리오의 눈에 시인이란, 특히 네루다라는 유명 시인이란 엄청나게 많은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남자였다. 대부분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섬사람들 틈에서 읽을 줄은 아는 정도였던 마리오가 그의 시집을 산 건 그 때문이었다. 그의 사인을 받아 친분을 과시하면서 여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하지만 네루다는 생각만큼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 하릴없이 지도책에서 칠레를 찾아보고, 알 듯 모를 듯한 그의 시집을 읽던 마리오는 어느 날 네루다로부터 ‘은유’라는 말을 듣는다. “그게 뭔데요? 시 쓸 때 사용하는 건가요?” 불쑥 튀어나온 질문으로부터 네루다 시인의 시 수업이 시작된다.

‘뭔가 말하기 위해 다른 것에 비유한다’는 은유란 알고 보니 어렵지 않았다. ‘하늘이 운다’는 건 비가 온다는 것쯤이야 웬만한 아이들도 알지 않던가. 은유는 아니지만 ‘인간으로 사는 것에 지친다’는 시 구절도 좋았다. ‘그런 느낌이 있었지만 딱히 표현하지 못했던 바로 그 마음’을 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같은 말은 요령부득이다. 그런데도 그는 시인이 되고 싶다. 시를 쓰면 여자들이 좋아하기도 하겠지만, 말하고 싶은 걸 다 말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정말 좋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그는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라는 네루다의 말을 좇아 해변을 혼자 하염없이 걷는다.

<일 포스티노>의 원작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 망명생활 중 겪었던 일을 소재로 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법한 평범하고 왜소한 남자 마리오가 누구라도 알아보는 유명 시인 네루다로부터 들은 은유와 시를 실제로 깨친 것은 로사 아줌마의 조카딸 베아트리체(마리아 그라지아 쿠시노타)를 본 순간이었다. “당신의 미소는 나비의 날개처럼 얼굴 위에서 펼쳐져요...당신의 미소는 장미, 서슬 퍼런 검, 솟아오르는 물줄기, 그대의 미소는 갑작스런 은빛 파도...” 눈을 떼지 못하는 그의 입에서 주옥같은 은유가 쏟아져 나오며, 고스란히 한 편의 시가 된다.

칠레로 돌아간 지 5년 만에 네루다는 칼라 데 소토섬을 찾는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파블리토, 여전히 아름다운 베아트리체와 함께 자신을 반겨야할 마리오는 이 세상에 없다. 유일하게 썼다는 네루다에게 바치는 시도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마리오가 남긴 단 한 편의 시가 ‘친구’ 노시인을 맞는다. 바다의 작은 파도와 큰 파도, 절벽의 바람소리,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질 소리, 신부님이 치시는 교회 종소리,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엄마 뱃속에서 들리는 파블리토의 심장소리…은유를 알게 되고 사랑을 찾았던 섬의 우편배달부가 녹음기에 담은 시, ‘섬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절창(絶唱)이었다.

 

맑은 얼굴을 한 스물 셋의 진국(박해일)은 남쪽 바다 끝 섬의 우편배달부로 전근 온다. 훤칠하게 큰 키에 말간 웃음을 머금은 그는 자전거를 타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 하리를 구석구석 훑는다. 때로는 고약한 심술을 부리는 광포한 바다와 싸우며 고된 노동으로 생존하는 마을의 아낙들과 아이들에게 그의 자전거 벨소리는 친근한 일상이면서 먼 바다 너머 또 다른 삶을 상상하게 하는 마법의 종소리와도 같다. 하지만 진국의 자전거 벨소리가 들릴라치면 심장이 마구 방망이질 치며 얼굴이 금세 홍시가 돼버리는 스무 살 연순(전도연)만큼이나 할까.

연순은 공부하라고 뭍에 보냈지만 농땡이만 치는 것 같은 까까머리 동생 영우(강동호)에게 매일 편지를 받는다. 그런데 딸랑거리는 우체부의 벨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총알처럼 튀어 나가기 직전 텀벙, 물그릇에 손부터 담근다. “시방 지 손에 물이 묻어갖고...” 사람 좋게 웃으며 우편물 수령부에 대신 사인한 진국이 사라지고 난 뒤 열어본 편지에는 달랑 ‘조연순 바보’라고만 적혀있다. 연꽃 연자에 순할 순자를 쓰는 까막눈 연순이, 방학 시작하자마자 조르르 돌아온 영우에게 버럭 화를 내고만 것도 그러니 당연하다. 매일 영우 편지를 들고 오던 우체부 진국의 얼굴을 이제 무슨 핑계로 볼 건가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진국의 자전거를 좇던 연순의 숨 가쁘고 허망한 달음박질도 끝난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표 나게 하는 연순에게 초등학교 국어책과 공책 꾸러미, 연필과 지우개 등을 선물한 진국과 매일 글쓰기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대신 이름을 써주고, 전보도 부쳐주고, ‘오라이’도 알려주고, 글씨를 가르쳐준 ‘선상님’ 진국은 하늘처럼 듬직했다. 하지만 박흥식의 영화 <인어공주>가 선사하는 해사하고 달콤한 행복은 여기까지. 어찌어찌 곡절 끝에 ‘선상님’이 ‘남편’, ‘나영 아빠’로 변하게 된 이후의 이야기는 씁쓸하다.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동화적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서 15번째 생일에 바다 위 세상을 보러 나왔던 아리엘은 사랑에 빠진 대가로 목소리를 잃고 끝내 공기의 요정이 되고 만다. 날랜 물질로 한 때 하리의 인어공주였던 연순은 대신 억세고 성마른 목소리를 얻는다. “지가 한 게 뭐가 있다고, 평생을 월급 한 번 갖다 주기를 했어, 뼈 빠지게 벌어놓은 돈 빚보증으로 다 날리고, 에이그 못난 놈...” 가장 노릇 제대로 못해 딸 나영(전도연)의 앞길마저 막는 진국(김봉근)에 대한 연순(고두심)의 악다구니를 밥 먹듯 듣고 자라는 동안 나영은 결심했었다. 절대로 ‘부모 자격도 없는 그 사람들처럼’ 가족을 만들지는 않겠노라고.

같은 우체국에서 근무하면서도 김진국 주사의 딸임을 철저히 숨겼던 나영은 큰 병을 알게 된 뒤 집을 나간 아빠를 찾아 하리를 찾았었다.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가 하리로 향하는 배로 이어지는 영화적 마법은 지치고 늙어 무기력해진 아빠 진국을, 하늘처럼 듬직하고 햇살처럼 밝았던 우체부 청년으로 되돌린다. “사람이 우선 착하고 봐야지라”, 수줍게 말하던 주근깨 그득한 섬 처녀 연순과 진국이 나누는 맑고 순수한 사랑을 지켜보던 나영은 어느덧 어린 딸의 엄마가 됐다. 목욕관리사로 일하는 엄마 연순의 목소리는 남편 진국 없이도 여전히 높고 억세지만, 손님들 모두 떠난 늦은 밤의 목욕탕에서만큼은 ‘인어공주’가 돼 물질을 한다.

름다운 바다, 섬의 정겨운 풍광, 순박한 사람들과 영화 내내 귓전을 간질이는 음악까지 <일 포스티노>와 <인어공주>는 보는 이를 대책 없이 무장해제 시킨다. 하지만 기적처럼 이루어진 만남이 선사하는 감동의 끝이 어두운 현실과 닿아있다는 점에서 더욱 닮았다. 어쩌면 너무나 일찍 찾아온 마리오의 죽음은, 가혹하게도, 그가 은유와 시의 세계를 알아버린 대가였을지도 모르겠다. <인어공주>에서 한때 연순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멋진 우편배달부 진국은 생활고에 찌든 아내에게 구박을 자초하는 무능력한 남편으로 살았다. 임시직으로 잠시 돈 벌다가 하릴없이 주방으로 갔던 마리오에게도 왠지 지리멸렬한 삶이 더 제짝인 것만 같다.

파블로 네루다는 ‘인간의 투쟁’과 ‘고통 받는 자’에 대한 시를 쓴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고국 칠레를 강제로 떠나야 했었다. 네루다에게 은유와 시를 배운 마리오는 물도 나오지 않는 강퍅한 섬 생활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현실을 바꾸는 꿈을 꾸게 된다. 마리오에게 좀 더 많은 삶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과연 멋진 시인의 삶이 허락됐을까. 그의 은유와 시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시적 연대가 그의 삶에 과연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쉽게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될 때 <인어공주>의 나머지 이야기들은 마치 못다 산 마리오의 것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두 영화는 우리를 희열에 들뜨게 했던 아름답거나 숭고한 많은 것들의 끝이 언젠가는 비루해지고 만다는 걸 일깨운다는 점에서 살짝 가혹하다. 한때 시를 싣고 사랑을 실었던 우편배달부의 자전거는 주인을 잃은 채 텅 빈 바닷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래도 어린 딸과 함께 낡은 사진첩에서 아빠의 자전거를 찾는 나영과 여전히 침 뱉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연순의 시간, 은유가 낳은 유복자 파블리토와 함께 살아가는 베아트리체의 억척스러운 시간은 계속된다. 자전거에 실린 시와 우정, 혹은 사랑은 따르릉 벨소리의 기억과 함께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설득시키면서, 두 영화의 노스탤지어는 비관과 회의 대신 삶의 생기와 활력을 전한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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