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흐른다

 

―순간순간이 명장면이 된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비핵화, 완전한 비핵화선언,
“이제 전쟁은 없다”는 합의에
전 세계가 찬사를 보냈습니다―

 

아주 좋은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문재인, 김정은 주연의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연출도 좋았고 연기도 좋았습니다.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까지 내놓아 관객들의 환호 속에 대 성공을 거두었으니 칭찬 좀 한들 낯간지러운 일은 아닐 듯합니다.

4월 27일 판문점(板門店)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순간 한 순간, 매순간,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오전 9시 20분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의 집’ 계단을 내려 와 분단경계선에 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기다리면서부터 본격적인 연기는 시작됩니다. 곧 건너편 판문각의 문이 열리고 거구의 김위원장이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문대통령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면서 분위기는 금세 숨이 막힐 듯 긴장됩니다.

검은색 인민복 차림의 김위원장이 황급히 경계선에 다가 오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왈칵 서로 손을 잡습니다. 정전 65년,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남쪽 땅에 첫 발을 딛고 남북의 정상이 첫 대면을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정확히 9시28분.

▷김정은 국무위원장: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네, 어서 오세요. 오시는 데 힘들지 않았습니까?”

▷김위원장: “아닙니다.”

▷문대통령: “반갑습니다.”

▷김위원장: “정말 마음 설렘이 그치지 않고요.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에서 만나니까, 또 대통령께서 이런 분계선까지 나와서 맞이해준 데 대해서 정말 감동적입니다.”

▷문대통령: “여기까지 온 것은 위원장님의 아주 큰 용단이었습니다.”

▷김위원장: “아니, 아니, 아닙니다.”

▷문대통령: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김위원장: “반갑습니다.”

문대통령의 권유로 남쪽 방향으로 향해 서자 플래시가 마구 터졌고 김위원장이 문대통령의 잡은 손을 이끌고 경계선을 넘어가 북쪽을 향해 서자 다시 플래시 세례가 이어집니다. 극적인 순간을 바라보던 100여명의 남북수행원들이 박수를 칩니다. 이 시각 10Km 남쪽 일산의 킨텍스 프레스센터에서 대형TV로 전송돼 오는 역사적 현장을 지켜보던 3000여명의 기자들은 놀라운 광경에 “와~!”하고 환성을 터뜨립니다.

두 정상은 ‘자유의 집으로 이동해 의장대를 사열한 뒤 회담장인 ’평화의 집‘으로 옮겨 1층에 마련된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 김정은 2018. 4. 27.’이라고 김일성 가문 특유의 필체로 서명을 하고 바로 2층 대기실로 올라가 자리에 앉아 인사말을 시작합니다.

▷김위원장: “차에서 내려 200m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를 걸어오는 동안 분리선도 사람이 넘기 힘든 높이도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적인 이 자리까지 오는데 11년이 걸렸습니다.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나, 왜 이렇게 오기 힘들었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담의 합의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합의한 것을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만찬 음식으로 많은 얘기를 하던데 어렵사리 멀리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가져왔습니다. 아, 멀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 대통령께서 편안한 마음으로 평양냉면을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순간 폭소가 터집니다.

▷문대통령: “한반도에 봄이 왔습니다. 오늘 온 종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는 만큼 10년 동안 못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날 남북정상회담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빅 이벤트였습니다. 회담을 취재 보도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특파원만도 1000여명이나 됐고 국내외 360개사 기자 3000여명이 불꽃 튀는 취재 경쟁을 벌였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지구촌의 기대가 그만큼 컸음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CNN, 영국의 BBC, 중국의 CCTV, 일본의 NHK 등 세계적인 방송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온종일 판문점 발 실시간 생방송을 계속할 정도였습니다.

오후 문대통령과 김위원장은 수행원 없이 숲길을 지나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도보다리 의자에 앉아 둘만의 단독회담을 이어갑니다. 공식적인 의제는 사전 조율한 대로 오전 회담에서 결론을 낸듯했고 그 밖에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곤란한 깊은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고 기탄없는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날 하루 판문점은 매순간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NEWSIS

오후 6시 드디어 회담 결과가 발표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흥분한 어조로 소리칩니다. “존경하는 남과 북의 국민 여러분,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평화를 바라는 8천만 겨레의 염원으로 역사적 만남을 갖고 귀중한 합의를 이뤘습니다. 긴 세월 동안 분단의 아픔과 서러움 속에서도 끝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우리는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함께 선언합니다. 한반도의 비핵화, ‘완전한 비핵화’를 합의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을 것입니다. 하늘, 땅, 바다, 어디에서도 남과 북의 적대행위는 없을 것입니다.” 이날 남북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핵을 폐기한다, 전쟁은 없다”남과 북이 똑같이 애를 태웠던 의제들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사항의 합의문들이 발표됐습니다. 한반도를 가로 지르고 있는 비무장 지대는 실질적인 평화지대가 될 것이다, 65년을 끌어 온 6·25전쟁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비무장 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든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한다,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8월 15일에 시행한다, 서해 북방 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남북 어민들의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한다,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한다…등등 여러 가지 합의문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친애하는 북과 남, 해외의 동포 형제자매들, 오늘 저와 문재인 대통령은 분열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이 응결된 이곳 판문점에서 력사적인 책임감과 사명감을 안고 첫 회담을 가지었습니다. 우리들을 위해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 기울이며 성대히 맞이하여 주신 한 혈육, 한 형제, 한민족의 따뜻한 정을 다 해준 남녘 동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화해와 평화에 목마른 남과 북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우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 일본의 아베총리, 프란치스코 교황,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 유럽연합(EU),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 세계의 지도자들과 단체들, 프랑스 스위스 독일 멕시코 브라질 태국 등 많은 나라들이 앞 다퉈 성명을 내고 지지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국토의 분단으로 겪는 남·북한 국민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그를 이해하는 인도주의적 격려와 성원이 봇물을 이룬 것입니다.

몇 달 전 만해도 전쟁의 먹구름이 뒤덮였던 한반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구름이 걷히고 평화를 이야기 합니다. 전쟁의 위기가 상상할 수도 없던 평화분위기로 반전된 것입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요, 그것을 기록하는 것도 사람임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일대 사변입니다.

‘봄이 온다’며 평양에 올라 간 예술인들이 한바탕 공연을 벌이더니 아닌 게 아니라 봄이 왔습니다.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고 판문점에 멍석을 깔더니 오늘 과연 평화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금물(禁物)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호사다마(好事多魔), 장애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주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국민적 합의와 성원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역사의 주인이 될 것인가, 만년 패배자가 될 것인가, 선택은 우리국민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 나는 길고도 긴 하루, 2018년 4월 27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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