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꽃샘추위에 눈발이 날려도 
새 봄은 어김없이 옵니다.
또 한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법 앞에 서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탐욕을 생각합니다―

 

천둥소리에 놀라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을 지나 춘분(春分)이 눈 앞 인데 이곳저곳에 눈발이 날리고 강원도 산간에는 폭설마저 쌓이고 있다는 소식이니 봄이 오다가 돌아 간 것인지, 아니면 아직 겨울인 것인지, 도대체 분간이 안 되는 요즘 날씨입니다. 절기상으로는 분명 봄인데 말입니다.

일 년 열두 달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누고 다시 24절기로 구분해 기후의 변화를 예측해서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절기(節氣)는 중국 주(周·BC1046~BC256)나라에서 시작돼 3천년의 역사를 이어 온 귀중한 생활교본입니다.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양의 유교 권에서 전해오고 있는 절기는 시령(時令), 또는 절후(節候)라고도 하는데 흙에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어 생존해 온 지난 날 농경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의 생활지침서였습니다. 늦었지만 2016년 중국정부에 의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그것이 인류역사에 기여한바가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서양의 역법(曆法)에 따라 공식적으로 음력을 양력으로 전환해 쓰기 시작한 것은 1895년 음력 11월 17일입니다. 고종황제는 이 날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공표하면서 온 나라 모든 백성이 양력을 쓰도록 권장했습니다.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 갈 때였지만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立春)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 봄이 온다는 출발 신호입니다. 입춘은 해마다 2월 4일, 또는 5일이지만 음력으로는 정월, 즉 1월이기에 이날이 되면 어김없이 날씨가 추워 ‘입춘한파’라는 말이 대명사가 되다 시피 하고 있습니다.

대략 15일 간격으로 이어지는 절기는 우수(雨水) 경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 곡우(穀雨)까지를 봄, 입하(立夏) 소만(小滿) 망종(芒種) 하지(夏至) 소서(小暑) 대서(大暑)까지를 여름, 입추(立秋)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秋分) 한로(寒露) 상강(霜降)까지를 가을로, 입동(立冬) 소설(小雪) 대설(大雪)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大寒)까지를 겨울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과거 농촌에서는 집집마다 절기와 날짜를 적어 벽에 붙여 놓고 날씨를 예측하고 순서에 따라 논밭을 가꾸며 한 해를 보내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구분하는 것은 그런대로 잘 들어맞지만 절기는 그때그때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과학시대에 3천 년 전의 예측이 100% 맞을 리가 없고 또 중국의 화북지방(華北地方)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어서 수만리 밖인 우리나라 기후에 정확히 일치하지 못해 오차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컴퓨터시대라 한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신비한 자연의 순환을 인간이 어찌 족집게처럼 맞출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절기는 계절의 변화와 시기를 가늠할 때 참고로 할 지표일 뿐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기상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절기는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알람(Alarm) 쯤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24절기에는 그에 따른 민간의 세시풍속과 속설이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입춘에는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글을 대문이나 기둥에 써 붙여 집안에 경사스러운 좋은 일이 오기를 기원했고 어떤 집에서는 ‘父母千年壽’(부모천년수) ‘子孫萬代榮’(자손만대영)이라, “부모는 오래 살고 자손은 대대로 번영하기를 기원한다”는 축문을 써 붙였습니다.

경칩에는 “삼라만상이 잠에서 깨어난다”하여 본격적인 봄이 시작됐음을 알렸고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봄이 왔음을 전하면서 “우수, 경칩 지나면 얼어 죽을 개잡놈 없다”고 봄이 온 기쁨을 걸쭉한 욕지거리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한여름 무더운 삼복더위가 지나고 처서가 오면 갑자기 시원해진 날씨를 두고 “모기가 턱이 돌아간다”고 하였고 또 한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소한추위를 빗대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고 우스개를 주고받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은 시끄러워도 봄은 온다. 남녘에 개화한 꽃들이 화사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NEWSIS

그런데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맘 때 한낮에 기온이 올라가 훈풍이 불고 따뜻해지면 봄이 온 걸로 착각을 하지만 봄은 그렇게 쉬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몇 차례 깜짝추위가 와 사람들을 불편하게하기 일쑤입니다.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인 것입니다.

하지만 춘한노건(春寒老健)이라하였습니다. “봄추위는 노인의 건강과 같아 오래가지 않는다”함이니 이제 추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듯합니다. 한두 번 반짝 추위가 있겠지마는 봄은 이미 우리네 마음속에 와 있습니다.

저 남녘에는 이미 매화를 필두로 꽃들이 화사하게피어 자태를 뽐내고 있다하니 미상불 봄은 날마다 백여 리 씩 북상을 하는 게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지금 평창에서는 동계올림픽에 이어 다시 패럴림픽(Paralympic Game)이 열리고 있습니다. 패럴림픽이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참가하는 장애인 올림픽입니다. 9일부터 18일까지 10일간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역대 최대 49개국에서 570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승부를 겨루는 또 하나의 스포츠축제입니다.

우리 한국은 6개 전 종목에 선수 36명, 임원47명 등 83명이 참가해 금메달 1, 은메달 1, 동메달 2개로 10위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 북한도 사상 최초로 임원과 선수 24명이 참가해 대회를 더욱 뜻깊게 하고 있습니다. 동계올림픽이 그랬듯이 이번 대회도 성황리에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기대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뜻밖에도 남북관계가 호전돼 위기감이 많이 사라지고 정상회담까지 합의해 놓은 상태이지만 여성의 성 피해 폭로 ‘미투운동(#Metoo)’이 일파만파로 확산돼 온 사회가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남존여비, 남성우월주의 뿌리 깊은 문화가 달라진 시대와 충돌하는 현상이 이번 ‘미투운동’의 실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울러 또 한사람 전직 대통령이 비리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서는 것을 보면서 대체 인간의 탐욕은 어디까지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제발 사회가 정상을 되찾아 국민들이 평안한 삶을 사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명심보감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花落花開開又落(화락화개개우락)

錦衣布衣更換着(금의포의갱환착)

꽃은 지었다 피고 또 피었다 지고, 사람들은 비단 옷, 베옷을 바꾸어 입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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