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두요! 나 두!”

 

―남녀칠세부동석에서 비로소 깨어나는 여성들의 자의식. 들불처럼 번지는‘미투운동'에서 우리사회의 민낯을 봅니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웃기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조선시대 풍습이 그대로 살아있던 1900년대 초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글자대로 풀자면 “남자와 여자는 일곱 살이 되면 같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이 글은 유교경전의 하나인 ‘예기(禮記)’의 내측편(內則篇)에 나오는 말로 “아이가 6살이 되면 숫자와 동서남북 네 방향을 가르치고, 7살이 되면 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8살이 되면 소학(小學)을 배운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유교의 윤리가 워낙 엄격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세상 물정은커녕 철도 없는 어린 아이들을 남녀유별이라 하여 한자리에 같이 있지 못하게 했다는 것만 봐도 과거 우리 사회의 남녀문화가 얼마나 경직되고 엄하였었던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 하겠습니다.

중국의 한의학서 ‘황제내경’에는 “여자 나이 7살이 되면 신장의 기운이 왕성해져서 젖니가 영구치로 변해 이를 갈고 몸에 터럭이 자란다(女子七歲 腎氣盛 齒更髮長)라고 적고 있습니다.

신장의 기운이 왕성해진다함은 뇌하수체의 내분비 기능이 활발해져 성선(性腺)자극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해 어렴풋이 성(性)을 인식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일지언정 함께 있다 보면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애당초 함께 있는 것 자체를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원래 남녀칠세부동석의 ‘석(席)’은 돗자리 같은 물건을 뜻한 것이었지만 처음에는 잠자리에 까는 요를 의미하는 ‘석(蓆)’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남녀칠세부동석이란 한 자리에 있지 말라는 뜻과 한 이불에 재우지 않는다는 또 다른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남녀칠세부동석의 관습은 조선시대 ‘내외법(內外法)’으로 발전해 낯선 성인남녀 간에는 얼굴조차 마주하면 안 되는 법률로까지 강제화 되었습니다. 지난 시절 이 땅 우리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혹독한 속박 속에서 갇혀 살았는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남녀가 유별하다는 유교의 도덕관념은 사실 인간의 본능을 옥죄는 형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Me Too)운동’을 촉발시킨 서지현검사. 그의 용기에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NEWSIS

 한 여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로 촉발된 성추문 폭로 ‘미투운동’은 법조, 문화·예술, 의료, 교육, 군(軍)을 넘어 종교계로까지 전방위로 마구 번져 걷잡을 수없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영화도시 로스앤젤리스 헐리우드에서 유명 영화감독이 20대의 젊은 여성 38명을 성추행했다 하여 피해 여배우가 폭로함으로써 시작된 소위 ‘미투(#Me Too)운동’은 어느새 한국으로 건너 와 “나 두요!” “나 두요!”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온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대상이 각계의 내로라 하는 중진, 원로들인지라 일반에 주는 파장은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성문화는 지역과 문화에 따라 그 양상이 많이 다릅니다. 아직 유교적인 관념이 의식 속에 남아있는 우리나라는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성에 관한한 금기시(禁忌視)돼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일찍부터 성이 개방된 유럽에서는 남녀 간의 접촉자체가 자유롭습니다. 그들에게 성은 부끄러워하고 숨겨야 할 그런 대상이 아니라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듯 하는 일상적인 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곳 젊은이들은 18세가 되면 당연히 집을 나가 독립을 하고 맘에 맞는 짝을 구해 동거를 하는 게 사회의 공식이요, 관습입니다. 시중 사우나에 가면 남녀가 완전 알몸으로 함께 목욕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성문화입니다. 성은 감춰야 할 금기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완전자율, 완전개방입니다. 대신 분명한 게 있습니다. 그들은 양성평등에 의한 동등한 인격체로서 상대의 동의하에 관계를 형성하지 절대로 폭력에 의하거나 일방에 의한 강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반면 우리의 성문화는 여전히 남존여비라는 인식이 남녀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남녀 간의 은밀한 관계에서 마저 일방의 강압이 통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가부장적 남성우월이라는 독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작금 전개되고 있는 ‘미투운동’은 새로운 시대 여성들의 자의식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라고 보아야 될 것입니다.

다큐멘터리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면 동물의 세계가 다채롭게 전개됩니다. 그런데 그 많은 동물 가운데 어떤 동물도 암수가 사랑을 나누는데 폭력을 무기로 욕망을 채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맹수의 왕인 사자도, 포악한 하이에나도, 표범도, 들개도 그리고 그 어느 수컷도 암컷이 동의할 때만 짝짓기가 이루어집니다. 그러지 않고 힘이 세다고 해서 수컷이 아무 때나, 일방적으로 제 맘대로 행위를 하지는 못합니다. 암컷의 의사는 그렇게 존중되는 것이 동물세계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완력이나, 권력으로 욕망을 채우는 것이 다반사이니 인간으로서 그저 부끄럽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1961년 박정희소장이 탱크를 몰고 한강다리를 건너 민주당 정부를 무너뜨리고 쿠데타에 성공하자 가장 먼저 벌인 시책은 공직에서의 축첩자(蓄妾者)색출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이후 우리 사회는 웬만큼 재산이 있거나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면 첩을 거느리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있어 이 뿌리 깊은 적폐를 일소하는 것이 민심을 회유하는 일차적 과제였기에 먼저 공직자에 손을 댄 것입니다.

군사정권은 먼저 공무원을 필두로 공직사회의 축첩자를 가려 내 조직에서 축출함으로써 조강지처들의 한(恨)을 풀어주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당시 지방의 거부였던 어느 토호(土豪)는 한 지붕 아래 7명이나 부인을 거느리고 살아 “복도 많다”고 만인의 부러움을 산일도 있었습니다.

남녀란 원래 만나면 지남철(指南鐵)처럼 서로 가까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그런데 유교의 도덕관은 그러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금기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말라고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라고 하는 것이 유교의 가르침인즉슨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그 옛날 공자는 간과한 것입니다. ‘실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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