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프로포즈하지 못한다

각각 다른 곳에서 나고 자라 어느 한 곳에서 만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세상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서사 중 가장 많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나는 외로워 둘이랍니다’를 외치며 뛰어드는 결혼이라는 바다가, 사실은 절망과 고통의 블랙홀이기도 하다는 서사 또한 모르는 이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저하고 미룬다. “결혼하자, 우리!”의 용감한 제안과 무모한 결단을.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의 커플과, 김대환 감독의 <초행>(2016)의 커플에게도 어렵고 두려운 선택은 예외 없이 찾아온다.

어 시간강사인 준영(감우성)과 맞선을 본 연희(엄정화)는 처음 만난 날 남들이 며칠에 나눠서 할 절차를 한방에 끝낸다. 밥 먹고 영화 보고 차 마시고, 그리고 여관으로 직진한다. 지적인 데다 매너도 좋은 남자와 매력적인 데다 센스도 뛰어난 여자가 만났으니 뜸 들일 게 뭐란 말인가. 결단은 단호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데이트가 반복되며 서로에게 길들여진 몸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그 나머지 진도는 쉽게 나가지 못한다.

“나를 비롯해서 가난한 놈들은 다 빼”, “거짓말하면서 살 자신이 없어.” 타인을 흔쾌히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자기의식이 강한 인문학도,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지기에는 지나치게 냉소적이었던 준영과 함께 하는 미래란 연희의 선택지에 없었다. 재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친 연희는 의사와 벤처사업가, 회사원 중 안정적이고 윤택한 삶에 가장 가까울 법한 선택으로 의사의 아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원하는 사람, 마음이 향하는 사랑을 좇는 결혼에 평생을 헌신하는 객기 같은 건 깔끔하게 사양할 만큼 세상을 알았던 덕분이었다.

가지 못한 길을 처연하게 아쉬워하는 대신, 둘은 ‘결혼’을 ‘연기’하기로 합의한다. 남들처럼 ‘신혼여행’을 떠나 노을 지는 바닷가, 정감 넘치는 민박 집 등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사진을 찍고, 단정하게 앞치마 두른 채 세상 더 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새색시로, 함께 이불빨래를 하며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 젊은 부부로 ‘고민도 고만고만, 행복도 고만고만인 편의점 같은 결혼생활’을 연기한다. 한강이 내다보이는 옥탑 방에 차린 두 사람의 신혼집은 화사한 생기로 가득하고 ‘주말부부’ 행세는 완벽해서 다정하기만 하다.

이만교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영속화하는 사회적 장치로서 결혼제도는 껍데기만 남는다. 연희는 정성 들여 만든 생일 케이크 촛불을 끄는 치과 의사의 사랑스러운 아내 역할 또한 정성을 다해 수행한다.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축의금, 화환과 결혼서약서가 승인하고 공인한 결혼제도의 안팎을 불문하고 결혼이 결국 ‘퍼포먼스’라는 신랄한 진단을 거드는 건 준영의 친구 규진(박원상)이다. 결혼 전날 유부녀 애인과 진한 아쉬움의 입맞춤을 나눈 규진은 결국 결혼이 파국에 이르렀을 때에도 자신이 어떤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어떤 결혼이 진짜이고 가짜인가 중요하지 않게 된 현실을 곱씹는다. 하지만 ‘사랑 따로, 결혼 따로’를 당차게 선언한 연희는 정작 사랑하는 준영과의 진짜 결혼을 소망했던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그 소망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레 백기를 들어버린 준영에게 더 간절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둘은 “함께 가자, 우리” 말하는 대신 ‘함께 사는 연기’를 선택함으로써 간절함으로부터 도피한다. 그렇게 쇼는 이어진다. 세상에 발각되지 않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들키지 않은 채 열심히 연기를 계속하며.

 

영(김새벽)과 수현(조현철)은 7년차 연인. 이미 같은 식탁에서 밥 먹고, 같은 침대에서 아침을 맞은 지도 꽤 됐다. 하지만 아버지 환갑에 지영과 함께 오라는 수현의 형 전화를 받고 둘은 같은 질문을 서로에게 던진다. “어떡하니, 어떡해...”, “어떡하지?”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고 함께 살아가지만, 결혼이라는 거대한 성채와 맞닥뜨릴 때마다 둘은 번번이 어찌할 바를 모른다. 독한 마음 먹고 성문을 열 것인지, 포기하고 돌아설 것인지. 그런데 종편방송국의 계약직 작가, 미술학원 강사로 하루하루 버티면서 미루기만 했던 답을, 이번엔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지영의 생리가 끊긴 지 2주째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로?...진짜로?...진짜로?” 못 알아들은 것도 아니면서 수현은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는 물을 먹겠다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렇게 둘의 대화는 끊어진다. 그리고 지영의 인천 본가에 다녀온 다음 수현의 삼척 본가에도 들른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은 채, 어쩌면 못한 채 이런저런 번잡스러운 시간이 지나간다. 지영은 “언제까지 연애만 할 거냐”며 남들 사는 것처럼 따라 살지 못하는 딸을 답답해하는 엄마의 잔소리 앞에 또 다시 울컥해서 차가운 낯빛이 된다. 공장경비원으로 일하는 알콜 중독자 아버지를 경원하는 수현에게 삼척 본가 방문은 이번에도 역시나 끔찍한 시간이었다.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초행>에서 지영과 수현은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처럼,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제 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다. “나보다 똑똑하고 항상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치잖아. 만약에 그러면 어떻게 할 건지 한번 얘기 좀 해봐.” 지영의 가방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발견한 엄마의 채근에 지영 또한 수현이 그랬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2주 뒤 지영이 계약직으로 될 수도, 피디가 될 수도 있다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수현은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지만 굳이 지도교수를 찾아가 얼굴도장 찍고 굽실거려야만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잘 모르겠으니 할 말이 없는 건 그들만이 아니다. 선해 보이지만 믿음직스럽지는 못한 딸의 남자친구와 나누는 지영 아빠의 말은 자꾸만 핵심을 비껴난다. “죽어서만 가는 게 지옥이 아니야...그냥 살아보고, 그래도 이 사람이랑 죽을 때까지 살아도 되겠구나 싶을 때 그때 결혼해.” 삶의 피로가 가득하던 수현의 엄마는 “만약에요, 살아봤는데도 모르겠으면 어떻게 해요?” 묻던 아들의 여자친구 지영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생리는 끊기고 임신 테스트기는 샀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질문만 가득한 채 대답이 없는 세상을 <초행>은 가만히 지켜본다.

“내가 무서운 이야기 해줄까?” <초행>에서 지영과 함께 가야하는 삼척 행을 ‘무서운 이야기’라고 말하던 수현은 왜 삼척에 데리고 왔느냐는 지영의 질문에도 “무서웠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지영은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거냐고 되묻지 않는다. 대신 바닷가에 주차된 자동차 밖에서 차안에 앉아있는 수현을 향해 소리 지른다. “나, 너무 무서워!” 인천과 삼척을 오가며 두 사람은 번번이 길을 모르거나 주차된 차를 찾지 못하고 헤맸다.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앞으로 걷다 뒤돌아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모르는 것, 편하게 몸을 눕힐 둘만의 공간을 찾지 못하는 것, 그 모든 게 ‘무서워서’ 둘은 서로의 몸에 더 가깝게 밀착된다.

독이 큰 화두만 던져주면 배우들 스스로 장면과 대사를 만들며 찍었다는 <초행>의 연출현장은 어떤 영화가 나오게 될지 확신 못하는 불안과, 그 때문에 서로를 더욱 의지하는 마음이 공존했다고 한다. 앞을 짐작할 수 없고, 미래를 열어갈 의지도 부족하기에 더욱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던 영화 속 인물의 이야기에 마침맞게 어울렸을 법하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도 모든 것이 끝난 뒤 다시 옥탑 방을 찾은 연희의 엔딩이 관계의 지속을 말하는 것인지, 혹은 별 의미 없이 붙은 에필로그인지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모호함과 대답할 수 없음이야말로, “우리 함께 살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사실적인 답이 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연희와 준영은 변화하는 시간과 상황에 흔들리고 끝내 변색될지도 모를 자신들의 ‘감정’, 관계의 영속성을 회의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더 이상 안전하게 품지 못할 그 인간다운 취약성을 두려워하던 둘은 결국 허위의 퍼포먼스라는 위태로운 답안을 제시한다. 함께 했던 7년의 시간이 주는 연대의 힘 덕분인지 <초행>에서 지영과 수현은 연희와 준영 같은 두려움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듯 보인다. 하지만 둘의 역사를 만들었고 현재를 규정하는 둘 바깥의 모든 것, 가족과 환경의 억압에 버텨낼 의지도 능력도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결코 다르지 않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만들어진 2001년으로부터 15년의 시간이 흘러 찾아온 <초행>을 보는 경험은 사실 씁쓸하다. 단짝과 함께 낯선 길을 처음 떠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방해하고 조롱하는 현실의 강고함은 더욱 단단해지고, 의지는 더 무력해 보인다. 옥탑 방이나 좁은 아파트에서 이미 함께 살고 있으되, 그 살아감의 양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차마 결심하지 못하고 혹은 공식화하기를 두려워하면서 그들은 주저한다. 함께 하는 척하거나 미루거나 헤매면서. 그렇게 2001년 ‘미친 짓’이었던 결혼은 2016년 ‘무서운 것’이 되었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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