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고 만회하며…어른들도 자란다

몸이 다 자라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어른으로 불린다고 해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건 아니다. 아이가 청소년으로, 청소년이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현저한 차이는 없더라도, 깊어지거나 넓어지는 마음의 성장 혹은 유연해지고 관대해지는 내면의 변화는 계속된다. 어쩌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톰 맥카시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윈윈>(2011)과 루카 미니에로의 이탈리아 영화 <웰컴 투 사우스>(2010)에서 ‘아빠’ 혹은 ‘아저씨’로 불리는 중년의 남성들도 그렇게 한 발자국 나아가고, 한 뼘씩 깊어진다.

저지 주의 변호사 마이클(폴 지아마티)은 최근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내 재키(에이미 라이언)는 그런 남편에 감동했다지만, 가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 과잉으로 시달리던 끝에 받은 의사의 처방임을 꿈에도 모른다. 제대로 뛰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꽤 된다는 것도. 마이클의 삶은 툭하면 막히는 사무실 변기, 수리 안하면 터지기 일보 직전인 고장 난 보일러와 다르지 않다. 고만고만한 의뢰인들의 수임료만으로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자원 봉사하는 고등학교 레슬링 코치 일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재능도 없는데 열정마저 찾기 힘든 아이들과 씨름하기에도 지친 느낌이다.

“그게 옳은 일이니까, 그냥 돕고 싶었어.” 마이클은 치매로 심신상실 판정을 받은 부유한 노인 리오(버트 영)의 후견인이 된 데 대해 재키에게 거짓말한다. 집에서 돌보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요양보호시설로 보낸 뒤 1500달러의 돈만 챙긴 것이다. 그러나 비로소 숨을 쉴 것 같은 안도감도 잠시, 20년 동안 소식이 끊긴 리오의 딸 신디 대신 할아버지를 찾아온 손자 카일(알렉스 셰퍼)과의 원치 않은 동거가 시작된다. 무책임하게 아이를 방임하는 엄마에게 돌아가지 않겠다는 카일을 잠시 데리고 있겠다는 재키에게 그는 “우리가 꼭 나설 필요는 없는 일”이라고 만류한다. “지금은 누군가를 거둘 때가 아니니 애를 보내버리라”던 친구 테리(바비 카나베일) 말처럼 ‘제 코가 석자’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일이 튄다. 알고 보니 카일은 쟁쟁한 오하이오주 랭킹 2위의 레슬링 천재였다! 이 뜻밖의 ‘보너스’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 단번에 담배를 끊은 카일은 새벽 운동에 집중하며 뛰어난 실력을 과시한다. 자신의 능력을 단단히 신뢰하는 천재적 재능을 눈앞에서 보며 마이클 또한 오랜만에 맛보는 느낌에 설렌다. 일과 돈, 모든 것이 뒤엉킨 실타래 같던 시간 속에서 가질 수 없던, ‘모든 것을 통제하는 멋진 느낌‘을 카일처럼 만끽하기를 열망하게 된 것이다. 이혼으로 심신이 망가졌던 테리와 함께 레슬링에 빠졌던 청소년기의 열정을 되찾으며 마이클의 일상은 점점 생생한 활력과 비상한 긴장으로 채워진다.

톰 맥카시의 <윈윈>에서 마이클은 불순한 의도로 잘못된 선택을 했고 당연하게도, 그로 인해 궁지에 몰린다. 하지만 뒤늦게 찾아와 아버지를 데리고 가겠다는 신디 앞에서 “리오를 위해 최선인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더 이상 거짓이 아니다. “그냥 보내버려. 네 일부터 걱정해야지”, 테리의 충고는 정곡을 찔렀지만 “그렇게 하게 두면 안 된다”며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카일의 눈빛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정적 경기를 망쳐버린 데다 마이클의 거짓을 알게 된 카일이 자신을 비난하자 그는 차분하게 청한다. “네가 한 번 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실수를 인정하고 만회하기 위해 드러내는 그의 진심은 카일의 분노를 다독인다.

그렇게 마이클은 ‘믿어도 되는 어른’이 된다. 카일도 열여섯 살 다운 열여섯으로, 계속 크로켓 하자고 졸랐던 마이클의 딸 애니의 소원을 풀어주는 착한 오빠가 된다. 두 딸의 아빠 노릇만으로도 버거워했던 마이클은 아무런 물질적 보상 없이 리오와 카일을 돌본다. 덕분에 투 잡을 뛰고, 재키 또한 일이 많아졌지만 사무실에서 돌아와 바텐더 복장으로 손님을 맞는 마이클의 표정은 처음과 같지 않다. 그가 여전히 새벽에도 운동을 계속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그건 더 이상 의사의 처방을 따른 달리기는 아닐 것이다.

 

라노 우체국 지점장으로 부임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알베르토(클라우디오 비시오)의 경우는 좀 더 고약했다. 장애인 우선조항의 혜택을 탐내서 장애인인 척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하늘의 태양을 가리려는 가당치도 않은 거짓말이 발각되자 그는 남부 나폴리 부근 카스텔라바테 지점으로 2년간 전근 조치된다. 아들의 학교 문제로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것도 우울하지만, 아내 실비아(안젤라 피노치아)로부터 ‘쓰레기 짓을 하는 저질 남편’의 비난을 받은 건 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알베르토가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높고 험난한 산은 또 있었다. 알베르토는 카스텔라바테로의 전근을 ‘차라리 잘린 것이 나았을’ 최악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소식을 전하는 직장동료나 아내 실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 북부지역 사람들에게 나폴리 부근 지역은 차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한여름 50도에 육박하는 찌는 듯한 더위, 널려있는 쓰레기, 온갖 전염병의 위험성,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에, 착한 척하지만 알고 보면 다들 마피아라는 말까지. 울면서 찾아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래서 길 떠나는 알베르토의 차림새는 비장하다. 마피아 총탄 세례를 대비한 방탄조끼에 쥐덫까지 챙기고, 혹시 모르니 손목시계, 반지까지 아내에게 맡긴다. 과연 길도 험난해서 이리저리 헤맨 끝에 장대비 쏟아지는 한밤중에 겨우 도착한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하며 진저리를 친다. 느지막이 출근하는 직원들은 한없이 농땡이만 치는 것 같은데, 한 직원은 마피아인지 정체 모를 가루를 만지작거린다. 치즈 냄새도 역겹고 도무지 먹지 못할 음식들만 자꾸 권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만류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도 말을 알아들어야 뭔 일을 하지!

2008년 프랑스에서 히트했던 대니 분의 영화 <알로, 슈티>를 이탈리아 버전으로 바꾼 루카 미니에로 감독의 <웰컴 투 사우스>는 1861년 단일 국가로 통일되기 전까지 도시국가로 발전했던 이탈리아의 역사를 배경으로 지독한 지역감정과 분열의 현실을 코미디로 다룬다. 우체국 지점장까지 하면서도 알베르토는 자신의 눈에 들보가 들어앉은 줄 꿈에도 모른 채 살아왔다. 카스텔라바테에서 가슴이 따뜻하고 인정 많은 남부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 살아온 시간과 환경이 달라서 모든 것들이 조금씩 달랐을 뿐, 그 ‘차이’를 명백한 차별과 혐오, 적대의 원천으로 살아온 자신의 어리석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름다운 남쪽 마을에서 다시 재회했던 알베르토와 실비아의 가족은 2년 임기가 지나자 다시 밀라노로 돌아간다. 알베르토는 존경받는 남편, 아빠의 자리로 복귀했고, 아들은 밀라노에서 썼던 커다란 안경을 벗고 건강해졌다. 남부사람 다된 것처럼 보이는 알베르토는 마리아(발렌티나 로도비니)에 대한 마티아(알레산드로 시아니)의 말 못할 짝사랑을 거들어 결혼에 골인하게 돕기도 했다. 카스텔라바테로 올 때 자신의 불행을 연민하며 눈물 흘렸던 알베르토는 카스텔라바테를 떠나며 또 눈물을 흘린다. 외지인들은 올 때 한번, 떠날 때 한번 운다던 마티아의 말 그대로였다.

“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음 좋겠냐?”,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윈윈>에서 변호사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마이클은 정작 자신 앞에 닥친 문제 앞에서는 매번 헤맨다. 그러니 그와 재키의 돌봄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열여섯 살 카일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가 6천 달러 수리비 대신 보일러를 비닐로 일단 덮어둔 채 웅장한 뱃고동 소리를 대책 없이 견디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게 다 자란 어른들도 꼬인 문제 앞에서 초조해하고 무기력해하다가 종종 나쁜 선택을, 경우에 따라서는 해서는 안 될 최악의 선택을 한다는 것을.

<웰컴 투 사우스>의 카메라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남부 바닷가의 풍광을 처음 보여주는 건 알베르토가 카스텔라바테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 뒤다. 지독한 선입견과 편견,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에 온 몸에 담이 들 정도로 경계하던 알베르토는 자신이 묵을 관사를 살기 편하게 만들어준 직원들의 정성어린 선물과 노력에 감동한다. 마음의 경계가 풀리는 그때가 돼서야 알베르토와 관객의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잖아! 여태 몰랐었어.” 바다는 늘 거기 있었지만, 적대와 혐오의 마음은 눈앞에 있는 바다도 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마이클은 “네 일이 아니잖아”, “네 앞가림부터 해”, “당신은 빠져요”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반드시 나서야 하는 일도 나설 수 있는 처지도 아니지만, 마이클은 그래도 나선다. 그래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카일을 만나고 깨달은 때문이다. 돈, 승진, 명예 등에 목매던 알베르토도 남부사람들의 여유와 평화를 보고 스스로를 구속했던 감옥에서 풀려난다. 새롭게 삶의 가치를 깨달은 그는 처음과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중년을 위기로 만드는 환경에 순응한 채 살아오던 두 남성들은 그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실수를 만회하는 노력 끝에 더 좋은 어른이 된다. 그렇게 어른들도 자란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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