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클레스의 전몰자 추모 연설 읽기 (2)

민주주의(democracy)는 본래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demokratia)’에서 유래하는데, 그것은 ‘인민(demos)에 의한 지배(kratia)’를 가리킵니다. 인민에 의한 지배의 최선의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어느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거나(역으로 표현하면 스스로 지배하고), 번갈아 지배하고 지배받는” 것이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최선의 방식은 고대 아테네가 행한 것처럼 모든 시민이 모여서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민회’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대표와 공직자를 뽑아서 그 의사의 집행을 맡기는 ‘추첨’일 것입니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제도가 실제 그렇게 이상적일까요? 1개 종합대학 규모(고대 아테네에서 실제 정치적 권리를 가진 시민의 숫자는 3-4만명에 불과하였음)를 훨씬 넘는 현대 국가나 도시에서 모든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공동체의 정책이나 일상사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수천, 수만명 한꺼번에 모여 어떤 쟁점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며 충분한 토의를 하여 올바른 결정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였을까요? 고대 아테네의 민회도 실제는 소수의 선동 그리고 일시적 감정에 휩싸인 군중의 흥분과 야유로 인하여, 파행과 잘못된 결정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대표나 공직자를 추첨으로 뽑는다고? 결국은 우리가 일상에서 음식값 내거나 벌칙을 수행할 자를 정할 때 재미삼아 하는 것처럼, 고대 아테네인들은 제비뽑기 뺑뺑이 사다리타기로 자신들의 대표나 공직자를 선출하였다는 것인데, 위대한 정치사상가인 플라톤의 유명한 조롱처럼 선장 의사 악기연주자들도 그렇지 않거늘, 우리의 대표와 공직자를 그러한 방식으로  뽑는다는 것은 너무나 황당하지 않은가요? 정치적 지식이 전혀 없는 자나 도덕적으로 파렴치한 자가 언제라도 우리의 대표나 공직자가 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정치와 공직은 공동체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적어도 일반 시민보다 도덕적으로 탁월하거나 지적으로 유능한 자에게 맡겨야 하지 않을까요? 

▲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의 구조와 운용방식을 설명한 책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책들과 달리 이러한 책들은 많지 않다.

민회와 추첨, 그럴듯하지만 너무나 황당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바로 이러한 ‘민회(광장)’와 ‘추첨’의 역사적 실제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그리고 그것의 예상 가능한 모습은 어떠할까, 그것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평가로, 그 당시는 물론 2천5백년동안 정치사상가들은 끊임없이 논쟁을 벌여 왔던 것입니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실제 어떠하였을까요?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프닉스 언덕에서 열리는 민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수십 킬로미터를 걷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까요? 거의 매일 열리는 평의회와 같은 여러 회의의 일원이 되고자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가게 문을 닫았을까요? 민회에서 또는 평의회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하며 시민들을 선동하는 동료 시민의 연설을 그대로 지켜보기만 하였을까요? 역으로 자신은 자신의 의사와 이익을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것처럼 포장하여 관철시키려는 사악한 의도를 갖지는 않았을까요?

먼저 페리클레스가 이에 대하여 묘사한 부분을 살펴봅시다. 다음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수많은 정치고전에서는 의도적으로 묻혀 왔던, 그러나 최근에 가장 새롭게 주목을 받는, 페리클레스의 추모연설의 한 부분입니다.

이곳에서 각 개인은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심지어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정치 일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을 자기 일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아테네에서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책에 대한 결정을 우리 자신들이 스스로 내리거나 적절한 토의에 회부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말과 행동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나쁜 것은 결과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행동부터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다소 과장이 섞여 있겠지만, 페리클레스는 모든 아테네인들이 자발적으로 민회와 공직에 적극 참여하고, 민회나 평의회 등에서 각자가 심사숙고를 하고 다른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충분히 토의를 거쳐 정책을 결정하였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페리클레스가 여기서 말한 고대 아테네인들의 ‘적극적 참여’와 ‘사려 깊은 토의’는, 현대 대표적인 진보적․대안적 민주주의 이론인 ‘참여적/심의적’ 모델의 단초가 됩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보다 조금 후세대에 속하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한 정치사상가들과 투키디데스와 같은 위대한 역사가들은 페리클레스의 묘사와 전혀 다른, 민회나 시민법정이 일시적 감정에 휘둘려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잘못된 결정을 하거나, 소수의 선동과 그에 따른 군중심리로 명백히 비합리적인 결정에 이르거나, 동족들마저 참살하는 반인도적인 결정을 한 많은 사례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증언은 전회에 지적하였듯이 후대의 수많은 정치고전에서 비치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에 대한, 나아가 인민자치와 대중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을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위대한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와 플라톤과 같은 위대한 교사들중 누가 거짓말을 할까요? 하나의 역사적 사실도 보는 사람의 계급적, 이념적 입장에 따라 또는 개인적 경험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달리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의 정치체제의 실제 운용도 객관적인 정치상황 혹은 시민들의 정치의식의 변화로 수시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페리클레스의 연설과 위대한 교사들의 증언이 많은 부분에서 상이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살았고, 실제 이를 완성한 현실 정치가였습니다. 그에 반하여 당대의 민주정체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체제 지식인이었던 위대한 교사들은 펠레폰네소스 전쟁 이후의 아테네 민주주의가 급속히 쇠락하던 시기에 살았고, 실제 그들 모두는 그러한 민주정체로부터 일정 정도 탄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위대한 교사들이 증언하는 거의 모든 사례는 펠레폰네소스 전쟁기간이나 그 직후의 혼란과 공포가 지배하던 시기의 것들입니다. 공동체의 존망이 걸린 전쟁과 패전으로 인한 혼란, 공포, 피폐 앞에서 우리 인간과 정치사회는 얼마나 나약하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일 수 있나 하는 것은 우리는 수많은 역사를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아테네는 정치적 원죄(原罪)인가

그러나 그런 개인적 이념, 경험의 차이나 정치상황의 변화를 떠나, 위대한 교사들이 증언하는 비합법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반인도적인 정책 결정이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만의 독특한 문제인가 라는 근본적 의문을 듭니다. 오히려 그러한 잘못된 결정은 전제적 군주정체이거나 귀족중심의 과두정체에서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의 민주정체(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체와는 전혀 다른 선거중심의 대의제 민주정체)라고 하여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을 그것도 2차례나 결정한 것도, 인종차별을 묵인하거나 인종청소를 결정한 것도, 자국 이익만을 위하여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여 그 시민들마저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도 우리의 민주정체들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그 모든 잘못된 결정들이 우리의 선거중심의 대의제 민주정체 자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혹은 반인도적인 결정에 대한 가능성과 우려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체제는 없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교사들이 말하듯이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만의 문제만도 아니고, 그 후계자들이 말하듯이 인민자치 혹은 대중권력의 원죄적 한계도 아닙니다.

다시 페리클레스의 연설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찬양을 끝내며 페리클레스는 “우리는 지금 사람들에게도, 나아가 후세 사람들에게도 경탄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이 예언은 2천5백년간의 위대한 정치고전들의 일방적 폄훼가 끝나고 지난 세기 후반기에 돼서야 비로서 실현되었습니다.

▲ 프닉스 언덕위 민회가 열려던 평지. 멀리 아크로폴리스 신전이 보인다.

“우리는 후세 사람들에게도 경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참여민주주의, 생태민주주의, 산업민주주의, 풀뿌리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 심의(숙의,토의)민주주의, 추첨민주주의, 다문화민주주의, 공화주의, 공동체주의……지난 세기 후반기부터 등장한 현대의 수많은 진보적․대안적 민주주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참여적/심의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전에 지독한 보수꼴통 성향의 현직 국회의원이 포함된 토론회에 참석하였다가 그 의원이 자신 스스로를 참여, 심의민주주의자로 자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의원이 참여적/심의적 민주주의라는 현대 정치 용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단어에 대한 그의 잘못된 이해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대부분의 정치지망생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심지어 사회과학계열의 교수들도 그 의원처럼 참여적/심의적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흔히들 ‘참여적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정치에 보다 관심을 갖고 투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주장 정도로, ‘심의적 민주주의’를 의회에서의 정책결정과정에서 단순히 다수결에 의존하지 않고 보다 숙려된 토론과 합의과정을 거치자는 주장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만약 참여적/심의적 민주주의가 그런 정도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현실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이나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투표에 적극 참여합시다”, “국회에서 당리당략으로 싸우지 맙시다”라고 외치는 단순한 정치 캠페인이나 도덕적 설교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참여적/심의적 민주주의 이론의 근원에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체의 독특함 내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어느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고 스스로 지배하기’와 ‘번갈아 지배하기’, 그것의 정치제도적 구현인 ‘민회(광장)’과 ‘추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참여적/심의적 민주주의 주장자들은 고대 아테네처럼 모든 주민들이 직접 모여서 마을의 의사나 정책을 결정하거나, 또는 일반 시민의 성별․연령별․지역별․계층별․직업별 구성 비율에 따라 대표를 뽑거나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첨으로 대표를 선출하여 그들에게 공동체의 의사나 정책의 결정을 맡기고(심지어 일부 주장자들은 고대 아테네를 넘어 이러한 민주적 방식을 회사, 공장, 학교, 종교단체 등 사적인 분야에까지 확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든 주민이나 선출된 시민들에게 상정된 의제를 숙려할 시간과 수고를 강제하도록 하자는, 흔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급진적인 민주주의 이론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 선거제 민주주의의 상층계급적․친기업적 편향성, 막대한 선거비용의 부담, 대표들의 점증하는 부정부패,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 등의 여러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합니다.

누구라도 자신만의 용법으로 참여, 심의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고 그 지지자임을 자랑할 수 있지만, 적어도 그것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용법은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인민이 신(神)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들은 민주정치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고대 아테네와 같은 순수한 ‘인민자치’가 물리적으로 가능한 범위는, 공동체 규모가 원시적인 부족집단이나 1개 대학 규모 수준으로 ‘인민’의 규모가 제한되거나, ‘자치’의 내용이 지극히 지엽적인 사소한 주제로 한정되거나 현행 국민투표처럼 찬반의 선택으로 단순화될 때뿐일 것입니다. 그러하기에는 우리 현대 사회는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하고, 또한 외교 예산 조세 노동 복지 등 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이면서도 동시에 미세한 조정을 거처야 하는 문제도 다루어야 합니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직접민주주의의 가장 열렬한 찬미자로 잘못 알려진 루소조차도 그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 장 자크 루소. 그는 정치와 철학외에 예술, 문학, 교육 분야에 관한 많은 책을 썼다. 자녀 모두를 고아원에 내다 버린 그가 최고의 교육철학자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것은 자못 역설적이다.

민주정치라는 말을 엄격히 해석한다면(고대 아테네 민주정을 의미), 진정한 민주정치는 지금까지도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결합시키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이 전제되어 있다. 첫째 아주 작은 국가로서 인민을 쉽게 모을 수 있고 모두들 서로 알 수 있어야 하며, 둘째 관습이 매우 단순하여 많은 사무나 성가신 논의를 생략할 수 있어야 하며, 셋째 인민의 지위와 재산이 대체로 평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리와 권위의 평등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넷째 사치기 극히 적거나 전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치는 부의 결과인 동시에 부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만일 인민이 신(神)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인민은 민주정치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완전한 정부는 인간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나아가 그것이 현대 사회에도 가능할 것인가 여부를 떠나, 참여적/심의적 민주주의 사상가들이 동경하는 고대 아테네의 ‘참여성(적극적 참여)’과 ‘심의성(사려깊은 토의)’에 대한 페리클레스의 묘사도 많이 과장되었거나 일부의 불편한 진실을 덮어두고 있음은 명백하다고 생각됩니다.

아테네는 우리의 신화(神話)가 될 수 있나

고대 아테네 철학자들의 책을 읽다 보면, ‘시민덕성(civic virtue)’이라는, 우리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적 일상과 이익보다는 공공선 혹은 공공이익(common good, public good)을 우선시하고,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근간에는 이러한 아테네 특유의 시민정신이 자리 잡고 있고, 페리클레스가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을 ‘아테네에서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던 것도 이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의 머리가 우리와 달리 비상하게 정치적으로 활성화되었거나 공공선을 우선시하는 이타적 심성으로 충만했던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들도 민회의 정족수를 채우기 위하여 민회가 열리는 날이면 거리에서 배회하는 시민을 억지로 끌고 가기도 하고 시장의 노점을 강제로 철거하기도 하였답니다.(오히려 아테네인들의 획기적 발상은 이러한 회의에 참석하는 시민들에게 일정 수당을 지급하였다는 점입니다. 그 액수는 참석하는 회의에 따라 차등이 있었으나, 당시의 육체노동자의 일당 정도 수준이었기에, 이로써 생계에 억매일수 밖에 없는 하층민들도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할 실질적 기회와 물질적 동기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들의 의식과 심성이 우리와 전혀 달라, 아테네인들이 모두 기쁜 마음으로 프닉스 언덕 위에 모였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6천여명이 참석한 민회에서 어떤 쟁점에 대하여 충분한 토의를 한다는 것이 실제 가능할까요? 그곳에서 참석자의 1/10인 6백명만이 각자 5분 정도씩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 회의는 꼬박 3일 정도가 소요됩니다. 실제는 소수의 언변가들만 발언을 하고 다수는 청중 수준에 머물렀음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공성을 우선시 하는 시민정신만으로 회의를 한다는 것은 신(神)들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소수의 정략가들이 무책임하게 청중을 선동하고, 공동체보다는 개인적 이익이나 당파성에 입각한 청중들의 환호와 야유가 오가는 것이 바로 인간 세계의 모습일 것입니다.

결국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체를 현대 사회에서도 재현 가능할 것인가 여부를 떠나, 그것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현대의 참여적/심의적 민주주의 이론가들의 상상하는 만큼의 참여성과 심의성을 제대로 구현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현대의 참여적/심의적 민주주의 이론가들의 찬미와 달리, 인민자치 혹은 대중권력은 오히려 정치논리의 희생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대중매체가 발달하고 그에 대한 통제기술도 발달한 현대사회에는 그러한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할 것입니다. 인류 최악의 독재자인 히틀러, 무솔리니가 절대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하여, 박정희와 같은 제3세계 독재자들이 기존의 민주주의 과정을 회피하기 위하여 동원한 것도 바로 그 인민대중들이었습니다.  

▲ 수백만명의 지지자와 대중이 참석한 1937년 나치의 뉘른베르크 집회.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체의 참여성과 심의성을 극찬한 페리클레스와 역으로 그것의 파행과 잘못된 결정을 증언하는 위대한 교사들 중 어느 하나만이 역사적 진실이 아닙니다. 더불어 그것의 역사적 실제가 어떠하였건, 그것은 항상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는 원죄적 시발점도 아니고, 항상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신화적 전능자도 아닙니다. 어떠한 정치체제냐 그리고 어떠한 민주정체냐도 중요할 것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그 체제의 구성원들인 시민들의 정치의식 수준과 그 사회의 정치문화가 어떠한가,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어떠한가일 것입니다.

다음에 살펴볼 위대한 철학자이자 성인으로 추앙되는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의 사례는 이러한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민주적 정치문화의 중요성을 깨우치는데 중요한 역사적 실례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이를 통하여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에 대하여 무지한 배심원들과 대중 vs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의 진정한 수호자로서의 소크라테스’라는 프레임은 전혀 역사적 실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될 것입니다.   

◇ 최용현 약력
 
▲ 학력 
  - 청주신흥고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제40회 행정고시, 제2회 지방고시 합격
  -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 경력 
  -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창원지방검찰청 거창지청 검사
  -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
  -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 법무법인 청남 대표변호사 
  - 공증인 최용현 사무소 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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