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제10회 청주공예비엔날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미디어아트’와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전시장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과 나누고 싶은 문제의식을 핵심적으로 드러낸다.

 

■ 미디어아트와의 융합, 공예의 확장성 모색

국내 최대 규모의 미디어 융합 전시인 ‘기획전 RE:CRAFT’는 대중이 갖는 공예에 대한 장벽을 미디어 아트를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또한 ‘공예와 미술의 미묘한 동거관계’,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공예는 공예인가?’, ‘디지털 시대의 손은 어디로 향하는가’의 세 가지 시선을 통해 ‘무엇이 공예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이처럼 4개의 섹션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관통하는 하나의 서사(narrative) 구축에 핵심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미디어 아트이다.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창을 통해 우리 삶 속에서 공예의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며 공예작품의 잠재력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섹션 1 ‘7개의 방’의 <Avyakrta: 대답되지 않은 질문>에서 이성재는 자신이 작업해오던 숲과 산의 실사 촬영 이미지를 기반으로 디지털 애니메이션 제작기법을 활용한다.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가상의 풍경이 관람객을 360도로 감싸는 조니 르메르시에의 <산>은 대상물의 표면에 빛으로 이뤄진 영상을 투사해 변화를 줌으로써 마치 작품이 다른 성격을 지닌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프로젝션 맵핑의 매력을 인상적으로 과시한다. 가상세계의 신비와 웅장함에 대한 감탄은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또 다른 물상에 대한 감각으로 이어진다.

조니 르메르시에의 <산>은 인상적인 가상의 풍광을 통해 프로젝션 맵핑의 매력을 강력하게 각인시킨다.

섹션 2 ‘공예의 시간’에서 겅쉐는 도자기를 다른 매체에서 활용해 보여주기 위해 스톱모션 기법을 적용한다. 직접 제작한 도자기 인형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된 <바다 사나이>에서 청나라 시대 공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한다. 신체 움직임을 사운드로 표현하기 위한 웨어러블 사운드 쥬얼리를 선보인 후니다랩의 <Orchestra Jewelry series>는 자기표현 역할을 하는 시각적 장신구의 기능을 청각적 기능으로 전환시키는 미래세대의 공예Next Craft를 제안한다.

겅쉐의 도자 인형들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바다 사나이>의 주인공이 된다

기술 진보가 가져올 미래사회의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공예의 관계를 대면하는 섹션3 '심미적 관계'에서 주목되는 것은 공예작가와 프로젝션 맵핑 아티스트의 협업이다. 공예작가의 철학과 정신이 반영된 작품 위에 이미지를 투영, 심미적 착시를 더하는 ‘순차협업succeeding cooperation’의 방식으로 구현된 공예와 타 장르간의 융합시도는 디지털 공예digital craft, 미디어 공예media craft로의 확장 가능성에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공예의 장식미와 빛의 미적요소를 결합한 작품들이 전시된 섹션 3의 공간은 시각적 아름다움의 향연으로 관람객들을 매료시킨다.

자연물, 인공물, 공예의 전통문양에 표현된 상징 기호들을 디지털미디어의 빛과 조합, 벽과 바닥에 나열한 이창화·김혜경의 <리듬-그리다>에서 공예품은 그 쓰임의 기능을 넘어 시각 조형물로서 미학적으로 확장된다. 흙으로 재현된 집들이 물의 삼투현상으로 서서히 와해되고 파편화되면서 폐허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김주리·김중현·박정선의 <휘경;揮景:걷다>에서 황량한 풍경 속을 걷거나 넘어지기도 하며 헤매는 여인의 영상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더욱 강렬한 쓸쓸함과 상실의 감흥에 빠져들게 한다.

이창화 김혜경의 <리듬-그리다>(뒤)와 이윤미 김영태의 <낯섦과 익숙함-관계짓기>(중간), 김주리 김중현 박정선의 <휘경;輝景:걷다>(앞)

김성수·김용찬의 <옥타곤×우주>는 전쟁이거나 축제처럼 보이는 군중의 형상을 디오라마 형식으로 구성하고, 그 주변을 3개의 원형 스크린으로 감싼다. 쏟아지는 별빛과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거대한 고래와의 조우를 통해 관람객들은 자신만의 ‘찰나의 우주’를 체험하게 한다. 구세나·김성준의 <자연이 주는 감정>에서 생명의 이미지인 물병 작품 위로 자연의 사계절 모습과 변화를 추상화된 패턴들로 채우는 영상은 행복한 느낌과 생명의 에너지를 전달한다.

김성수 김용찬의 <옥타곤X우주>로 경험하는 '찰나의 우주'
구세나 김성준의 <자연이 주는 감정>(앞)과 임소담 김은규의 <Shape of memories_xFractal cosmology>(뒤)

미디어 아트를 활용한 빛의 향연은 지난 청주공예비엔날레를 정리하는 섹션 4 ‘품다’에서 관람객들을 특별한 체험의 장으로 이끈다. 180평의 거대하고 텅 빈 공간에 설치된 32대의 프로젝터는 예술가의 정신이 손을 통해 전해지는 공예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도시, 도시와 사회와 관계 맺으며 존재함을 힘 있게 역설하고 효과적으로 설득시킨다.

섹션 4 '품다'에서 32대의 프로젝터들은 180평의 빈 공간을 빛의 향연으로 채운다

 

■ 만지고, 돌리고…공예의 능동적 향유

2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또 다른 20년의 미래를 모색하는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다양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관람객/대중과 더욱 밀접하게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한편, 예술 생산자가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새로운 소통 및 유통의 시대로서 미래사회 예술에 대한 고민 또한 담아낸다. 관람객들은 수동적 관람자의 지위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참여함으로써 작품을 좀 더 능동적으로 향유할 수 있다.

섹션 1의 <Layered stroke-05>, <Moveless-space>(노해율)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작품을 만져야 한다. 단단한 철에 모터와 추를 부착하여 관람객의 손길에 따라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반응형 작품이기 때문. 관람객은 자신이 마주한 대상을 만지거나 건드리면서 작품과 소통하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완벽한 정지는 불가능하다’는 우주의 물성을 환기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자넷 에힐만의 <공간과 시간을 여행하는 선>을 감상하기 위해서도 관람객들은 신발을 벗고 직접 카펫에 서거나 누워야 한다. 천장에 매달린 그물망의 색과 부피를 느끼며 빛의 황홀한 착시와 다양한 영감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익스프레스의 <Sound Figures>에서 관객의 참여는 저주파수의 진동으로 변화된다. 관객과 작품의 오브제가 사운드라는 매개체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자넷 에힐만의 <공간과 시간을 여행하는 선>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

섹션 2에서 김은지의 <howtounits Set 1, 2>는 관람객들에게 3D 프린터로 제작된 도자의 실을 꿰는 작업에 참여할 것을 권한다. 이는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로테크와 하이테크 사이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찾을 것인가, 무엇인가를 반복하면서 숙달되는 수행에서 찾을 것인가의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김은지의 <#howtounits>에서 3D 컴퓨터로 제작한 도자는 관객들이 실을 꿰는 행위를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섹션3에서 미디어 아트와의 융합으로 인상적인 ‘우주’를 만들어내는 <옥타곤×우주>(김성수·김용찬)도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체스판 같은 구조물을 관객이 직접 만지고 각도를 조정할 수 있게 돼있다. 작품의 안과 밖을 다각도로 관람함으로써 현실과 가상은 하나로 뒤섞인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을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다중의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임소담·김은규의 <Shape of memories_×Fractal cosmology>는 관람객의 움직임이 작품에 투영됨으로써 새롭고도 자유로운 경험을 안겨준다.

섹션 4 ‘품다’의 빔 프로젝터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조명이 따라가면서 빛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윤주철의 작품은 관람객의 발자국에 따라 생성되는 아름다운 돌기 형태가 다양한 방향과 흐름으로 춤추며 연출되며, 이승희가 ‘사색을 위한 숲’이라 이름 붙인 붉은 대나무 숲의 영상이 펼쳐지면 텅 빈 180평의 공간은 관람객이 깊은 사유 속에서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 변화한다.

'시대와 삶을 담아내는 공예'를 표방한 핀란드 카리나 쿠시스토 루카리의 <억압>

이와 함께 3층에 위치한 세계관 중 핀란드 관에서 만날 수 있는 <억압>(카리나 쿠시스토 루카리)은 여성들의 얼굴이 새겨진 가로 세로 28cm 크기 도자타일들이 바닥에 깔려있는 설치작품. 관객들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갈 수 있는데, 밟히면 깨지는 작품 감상을 통해 작가는 여성폭력의 근절 메시지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벽면과 타일에 “핀란드에서는 여성폭력 방지를 위해 매년 약 10억 유로의 금액이 쓰입니다” 등의 글귀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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