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능력인가, 행실인가

 

 -구슬과 돌은 다릅니다.
   옥석을 구분해야 합니다.
   '좋은 인물'을 버리는
   어리석음은 안 됩니다.
   그것이 곧 지혜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러잖아도 선거로 과열됐던 여야정치권이 이번에는 인사청문회로 또 한바탕 시끌벅적합니다. 

워낙 갑작스레 치러진 선거라 인수위원회를 꾸릴 사이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그래도 한두 사람 씩 발표한 장관후보들에 대해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는가 싶더니 국회 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숨겨졌던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왈가왈부 논쟁에 불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 ‘흙수저’ 출신으로 온갖 고난을 이기고 오늘의 위치에 온 입지전적인 인물도 있고 국제무대에서 인정을 받고 남성의 전유물이던 외교수장에 발탁된 탁월한 여성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재벌개혁’을 입에 달고 살아온 강직한 학자도 포함돼 있어 대체로 잘한 인사라는 평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랬기에 야당 일각에서 조차 “너무 잘해 전율을 느낀다”는 극찬마저 나왔고 국민 여론 또한 호의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청문회가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이 드러나고 사실여부가 확인되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마구 확대, 재생산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어떤 이는 가족들의 위장전입으로, 어떤 이는 세금 탈루로, 또 어떤 이는 과거의 불미한 행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사청문회란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국회가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 장관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해 임명동의 혹은 적격·부적격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검증 절차를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김대중정부 때인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하면서 처음 도입되었고 노무현정부 때인 2005년 7월 모든 국무위원을 대상으로 인사청문회가 확대돼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인사청문회는 크게 후보자의 도덕성과 업무능력을 검증하는데 주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청문회 역사가 짧다보니 그때마다 야당들의 대여공격 무기가 되어 개인의 비리나 과거 행적들을 공개함으로써 집권당에 타격을 주는 수단으로 변질이 되어 있는 게 우리 국회의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야당은 신상 털기로 후보자를 공격해 망신을 주려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방패가 되어 이를 엄호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왔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지난 박근혜정권이나 이번 문재인정권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고성이 오고가고 후보자를 윽박지르기 일쑤인 국회인사청문회에서 강경화 외교장관후보자가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Newsis

물론 야당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의 약점을 들춰내 낙마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작은 것은 침소봉대해 여론을 악화시켜 타격을 주는 것이 기본 전략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야당이 아무리 강공을 편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더욱이 대선에서 패배한 지 채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야3당이 분풀이하듯 거친 공세를 편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합니다. 텔레비전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청문회 장면을 보노라면 의원들의 위세는 대단합니다. 언필칭 국민의 대표라는 미명하에 마구 고함을 치면서 후보자들을 죄인 신문하듯 겁박을 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민망하게 하기 일쑤입니다.

불과 1년 전만해도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가혹하리만큼 여당인 새누리당을 공격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국무총리에 지명된 사람이 4명씩이나 중도에 하차를 했겠습니까. 이제 정권이 뒤 바뀌어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그리고 국민의당이 마치 복수극을 벌이듯 집요하게 공세를 펴는 것을 보면서 권력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하구나하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어떤 야당의원은 입장이 바뀌어 후보자를 비호하는 여당을 향해 “호랑이가 고양이가 되었다”고 빈정대는가 하면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약을 올리는 코미디 같은 장면도 연출하고 있습니다.

1800여 년 전 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세울 때 항우(項羽)와 천하를 놓고 용호상박(龍虎相搏)하고 있었습니다. 전세는 항우가 유리했고 유방은 매우 불리했습니다. 그때 휘하에 있던 위무지(魏無知)가 진평(陳平)이란 인물을 추천합니다.

진평은 뛰어 난 지략가로 항우 수하(手下)에 있었는데 제대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자 몰래 유방을 찾아온 것입니다. 유방은 금방 진평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도위(都尉)의 직책을 주어 자신의 수레에 함께 태우고 다니며 자문에 응하게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기존의 장수들이 불만을 터뜨리며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 중 시대장(侍大將)인 주발(周勃)이 나서서 “진평은 겉만 번지르르하지 표리부동하기 짝이 없습니다. 소문을 듣건대 제 고향에 있을 때 형수와 밀통(密通)을 하는 패륜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또 위(魏)에서 중용되지 않자 초(楚)의 항우에게 갔고 거기서도 인정을 못 받자 이리로 굴러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자가 대왕의 총애를 받으니 장수들이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탁을 취소하심이 옳습니다.”

유방은 그를 데려 온 위무지를 불러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러자 위무지는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주발이 문제 삼는 건 그의 ‘행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를 데려 온 건 ‘능력’을 본 것입니다. 아무리 행실이 고결하더라도 그것이 지금 위기에 빠진 우리 한나라 진영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유방은 “과연, 그대의 말이 옳소”하고는 되레 진평을 한 계급 높여 호군중위(護軍中尉)로 승진시켜 아예 군을 감독하게 했습니다. 결국 진평은 장수들을 진두지휘해 유방이 항우를 꺾고 천하의 주인이 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뒤 위(衛)나라의 조조(曹操)가 촉(蜀)의 유비(劉備)와 오(吳)의 손권(孫權)과 각축을 벌이면서 사방에서 숨은 인재를 찾습니다. 유방과 진평의 일화를 미리 알고 있던 조조는 막료들과 둘러앉아 “형수와 밀통을 했건, 뇌물을 먹었건 상관없다. 행실이 좋고 능력이 있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런 자가 어디 있는가. 오직 능력만 있으면 된다. 나는 지금 그런 자를 찾는 것이다”하고 대인의 풍모를 보입니다. 역시 난세의 간웅(亂世奸雄)다운 인재 발탁 법이었습니다.

지도자가 인물을 발탁하는데 “능력을 볼 것인가, 행실을 볼 것인가”의 유래를 전한 이 고사는 그 옛날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걸출한 인물들도 가까이서 살펴보면 흠결 없는 사람이 흔치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상하게도 이름 꽤나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허물없는 사람이 없다 할 만큼 대부분 크건 작건 허점을 갖고 있습니다.

속담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없다”고 했듯 막상 공개된 자리에 내놓고 들춰 보면 십중팔구 흠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 옛말이 그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직자처럼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깨끗한 사람이 있다한들 능력이 또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적임자가 널려있는 것도 아닌 바에야 인사권자의 고민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사청문회가 후보자 개인의 인격과 전문성, 능력과 정책을 검증하기보다는 신상 털기로 개인의 자질구레한 흠결을 과장해 낙마(落馬)를 목표로 삼는데 있다하겠습니다.

인사청문회가 옥석을 가려 ‘좋은 인물’을 뽑자는 애당초 취지가 퇴색돼 행여 ‘좋은 인물’을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되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구슬(玉)과 돌(石)은 엄연히 다르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구슬은 보석이고 돌은 돌일 뿐인데 말입니다.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금지 규정도 현실에 맞게 고치고 후보자의 인권도 침해받지 않는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그런, 차원이 다른 청문회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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