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버린 시간,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서”

여성은 ‘집 안의 존재’로 그려진다. 종종 ‘집’ 그 자체와 동의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집을 떠올린다는 것은 집/안에 있는 누군가, 대부분은 여성인 엄마를 대상으로 하며, 집을 그리워한다면 대개 엄마를 보고파하는 마음을 달리 표현한 것이 된다. 그런데 많은 영화들에서 정작 집을 지키며, 집 자체로 환원되기까지 하는 당사자로서 여성/엄마들은 자꾸만 집을 떠난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아이 엠 러브>(2009)에서 럭셔리한 대저택의 안주인과, 레베카 밀러의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2009)의 주인공 또한 집을 나서고 만다. 더 이상 자신의 집에서 살기를 거부하고 떠나가기까지,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라노에서 직물업으로 막강한 부를 일군 상류층 레키가(家)에는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무성하게 가지 친 문화적 교양이 화려한 토핑처럼 얹혀있다. 단아하고 정갈한 아름다움, 세련된 교양미와 유려한 태도를 갖춘 러시아 출신 며느리 엠마(틸다 스윈튼)는 명품으로 치장한 채 품위 있는 자태로 밀라노 도심과 웅장한 저택을 누비고, 화려한 만찬을 완벽하게 세팅한다. 아름다운 밀라노의 풍광, 레키가문의 웅장한 대저택, 고가의 가구·회화 작품들과 나란히 <아이 엠 러브>를 구성하는 세상의 물질적 풍요와 화려한 풍모가 그녀의 온 몸을 통해 과시되는 것이다.

남편 탄크레디(피포 델보노)는 예술품 수입차 러시아에 들렀다가 예술품 복원사의 딸을 이탈리아로 데려왔다. 탄크레디가 지어준 이름 ‘엠마’로, 이탈리아인이 되는 법을 열심히 배웠고 누구보다도 밀라노에 어울리는 명문가 안주인이 됐다. 그렇게 밀라노로 오면서 러시아인이길 포기했던 여자는 러시아가 그리울 때마다 요리를 했다. 많은 민물고기를 끓여 맑게 우려낸, 투명하게 보이는 ‘우하 수프’를 유독 좋아하고 또 만들 줄도 아는 큰 아들 에도(플라비오 파렌티)는 엄마가 러시아인인 걸 좋아한다. 그래서 가족 중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걸 엄마에게 묻는다. “러시아가 그리워요?”

그러니 녹음 무성한 산레모에서 식당개업을 준비하는 에도의 요리사 친구 안토니오(에도아도 가브리엘리니)와 불태운 뜨거운 열정은 시어머니 지안루카(마티아 자카로), 예비 며느리 에바(다이안 프레리) 등 ‘레키가의 여인들’이 함께 한 안토니오 식당에서 ‘달콤 새콤 소스를 얹은 라따뚜이와 새우’를 맛보던 그 순간부터 시작된 건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에바의 생일파티를 준비하던 안토니오와 체온이 처음 맞닿던 날, 러시아 샐러드를 맛본 그녀는 러시아인 듯 밀라노인 듯 혹은 에도의 아기 때인 듯한 모호한 꿈을 꾸었었다. 그날 그녀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신의 러시아 이름 ‘키티쉬’를 기적처럼 떠올리지 않았을까.

러시아 정교회의 교회가 있는 남부 휴양도시 산레모의 산꼭대기에서 “진짜 이름이 뭐예요?”를 묻는 남자로부터 ‘키티쉬’라 불리는 그녀는 진정 자유롭고 평화롭다. 목걸이와 팔찌를 채워주고 신발을 신겨주는 밀라노의 남편과 달리, 그는 목걸이와 팔찌, 신발을 벗겨주고 금발을 싹둑 잘라 경쾌한 단발로 만들어준다. 편안한 플랫슈즈거나 맨발 차림인 채로, 햇살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실내에서 혹은 벌과 온갖 곤충, 벌레들이 함께 하는 풀밭 위에서 그녀는 안토니오와 한 몸이 된다. 얼굴이 벌겋게 익은 채로, 온 몸을 뜨겁게 달구어가며 에덴동산의 이브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레키가의 수장이 된 아들 에도는 파티에 오른 우하수프만 보고도 모든 사실을 눈치챌 만큼 자신과 안토니오를 사랑했다. “엄마와는 끝이야. 이젠 남이야!”의 선언을 끝으로 의식을 찾지 못한 에도가 영영 떠나던 밤, 아들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던 그녀는 ‘키티쉬’를 부르는 어린 소녀의 꿈을 꾼다. 장례식을 마친 후 “당신이 알던 나는 이제 없어. 안토니오를 사랑해”, 탄크레디에게 선언한 그녀는 서둘러 짐을 싼다. 그리고 고급 시계, 반지를 빼버린 푸른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녀가 달음박질쳐 나간 뒤, 언제나 굳게 닫혀있던 레키가의 현관문이 열려있다. 유일하게 러시아어를 나누었던 엄마와 아들 모두 사라진 집안의 모든 화려하고 비싸고 좋은 것들이 다 빨려나갈 만큼 활짝.

 

80대의 출판계 거물인 남편 허브(앨런 아킨)와 코네티컷의 새 집으로 이사 온 피파(로빈 라이트)도 만찬을 준비한다. 이마 주름이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50대지만 아름답고 단아한데 손끝도 야무지다. “헌신적이고 내조 잘하고 아름답고 똑똑하고 예술가한테 딱 맞는 현모양처”라는 샘(마이크 바인더)의 치사나 “환상적인 여자”라는 허브의 자랑이 딱히 빈 말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세 차례의 심장마비 끝에 “단순하게 살고 싶어서” 재산까지 다 정리하고 실버타운으로 들어와 죽음만을 기다리는 남편의 옆이 그녀에게 마침맞는 자리인가 대뜸 의심이 들 만큼.

밀라노와 산레모의 공간적 대립이 눈길을 끄는 <아이 엠 러브>와 달리 여성감독의 섬세함이 두드러지는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에서는 현재와 과거의 시간축이 대립된다. 노년의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피파의 현재가 갖는 평온함과 안정성은 “카멜레온인 척 하는 것도 이젠 지겹다. 나를 드러내고 싶다”로 시작되는 내레이션이 이끄는 과거 플래시백의 파괴적 긴장과 격렬하게 충돌한다. 약물중독으로 불안정한 내면이 요동쳤던 엄마(마리아 벨로)와 겪었던 애증의 시간 끝에 어린 피파(블레이크 라이블리)가 가출했던 게 열여섯 살 때였다. 이후 닥치는 대로 약물을 복용하고 젊음을 소모하며 막 살았던 게 ‘피파 리’로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 피파 사키시안의 파란만장한 역사였다.

탕진하는 젊음의 아름다움이 아까워 교육자, 보호자, 구원자이기를 자청한 유부남 허브의 제안을 피파는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삶의 에너지를 너무 일찍 소모했기에 이미 탈진상태였던 그녀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으나, 대가는 컸다. 허브에게 물질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안겨준 아름다운 상속녀 아내 지지 리(모니카 벨루치)는 남편을 빼앗아간 피파의 앞에서 품위 있게 권총을 입에 문 채 방아쇠를 당긴다. 그래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허브에게 헌신했다. ‘착하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절박하게 노력했던 것이다. 새로운 춤을 배우는 댄서처럼 노력하는 스스로를 낯설어하면서.

피파역을 맡은 로빈 라이트 또한 틸다 스윈튼처럼 정숙하고 단정하며 헌신적인 ‘가정의 천사angels of the home’로서 부족함 없는 존재감을 과시한다.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중년의 몸은 삶의 나태나 해이를 경계하듯 팽팽하게 긴장돼있다. 그러나 “이 집 너무 맘에 들어요. 안락하잖아요”, 자신에게 할당된 ‘대사’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훌륭한 연기자에게도, 조명 꺼진 무대에서 드러나는 민낯이 있었다. 밤새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케이크를 걸신들린 것처럼 퍼먹는 낯선 자신이 CCTV에 있었다. 비흡연자인 자신의 차량에 수북하게 쌓인 담배꽁초들은 말하고 있었다. 더 이상 어떤 안간힘으로도, 연기로도 버틸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미 도달해 있음을.

피파는 지저분한 맨발의 잠옷 차림으로 어둔 밤거리를 헤매다가 이웃의 젊은 이혼남 크리스(키아누 리브스)와 가까워진다. 체면과 의무, 자기억제와 죄책감의 굴레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몽유 상태의 그녀는 비로소 몸과 마음의 감각, 충동에 삶을 맡겼던 열여섯 살 때로 돌아간 듯, 유쾌하고 편안하며 자유롭다. 언제까지고 살 것 같던 허브가 샘의 아내 산드라(위노나 라이더)와의 불륜을 고백하자 집을 떠나려던 피파는 심장마비를 일으킨 허브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잠시 계획을 보류한다. 그리고 온 가족이 허브를 떠나보낸 뒤 추도식을 앞두고 크리스의 차에 오른다.

<아이 엠 러브>의 에필로그에서 엠마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마치 자궁 속 태아처럼 안토니오와 웅크리고 있다.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에서 피파도 오랜만에 이성애적 희열을 나눈 젊은 남자와 함께 길을 떠난다. 유사한 진행에 엔딩마저 닮은 두 영화는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그녀들의 떠남을 온전히 해방의 카타르시스로만 낙관할 수 있을까. 가령 <아이 엠 러브>를 ‘탄크레디/어둠의 공간’으로부터 ‘안토니오/빛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엠마의 서사로 정리할 수 있다면,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가 ‘또 하나의 성애적 합일’의 희망으로 읽힌다면, 이는 공간과 상대만 변경되는 또 다른 억압의 가능성을 아예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여성의 자아 각성과 해방적 성찰의 도구로 여전히 로맨스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있다는 점에서 여성 불륜/탈주 서사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정작 다른 지점에서 흥미롭다. 엠마와 피파의 ‘은밀한 삶’(<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의 원제는 <The Private Lives of Pippa Lee>이다.)은 목숨처럼 사랑했던 아들 에도와, 남편 허브의 전 아내 지지의 죽음의 원인(遠因)이 된다. 여성의 각성, 특히 성적 정체성의 자각을 다루는 많은 영화들에서 이는 새로운 삶의 모색을 좌절시키고 마는 패배의 원인(原因)으로 곧잘 제시된다. 엠마와 피파 또한 무거운 절망에 짓눌리지만 이들은 죄책감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형성을 거부한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랑을 선택하는 것으로 아들에 대한 애도를 수행하는 엠마의 달음박질이 전하는 에너지야말로 충분히 전복적이다.

피파도 자신을 배신한 남편의 추도식을 외면한 채 청바지 차림으로 여행을 떠난다. 떨면서 용서를 빌던 사만다를 달래고 평생 구원자를 자처했던 허브를 분노와 연민 속에 떠나보내며, 오랫동안 떨치지 못했던 지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도 시나브로 사라졌다. 세상에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그럼에도 상처 받고 또 이겨내며 살아감을 알게 된 때문이었겠다. 그래서 유난히 잘 통했던 아들 벤(라이언 맥도날드), 다시 사랑스러운 딸로 돌아온 그레이스(조 카잔)의 격려 속에 ‘휴가’를 떠나는 그녀의 얼굴은 밝게 빛난다.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지만, 그저 시작이라는 것만을 확신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지 않겠는가. 그녀들의 ‘사랑’ 혹은 ‘은밀한 삶’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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