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골든타임은 유효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은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닙니다.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지금 가장 현명한 방법은
자진 사퇴하는 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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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壟斷) 사건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를 뒤 흔들어 나라를 수렁에 빠뜨린 채 국민을 헤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과연 박 대통령은 탄핵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기각이 돼 없던 일이 될 것인가? 지금 태풍전야의 긴장감이 온 나라를 휩싸고 있습니다.

작년 10월 29일 처음 불붙기 시작한 박근혜 탄핵·퇴진 촛불시위는 연 인원 1천만 명의 국민축제로 승화돼 이 나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고 그에 반대하는 친박 보수단체들의 만만찮은 태극기 시위 또한 맞불로 세를 과시하고 있으니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진보, 보수의 ‘애국심 경쟁’이라도 벌이는 것은 아닌지 착각을 갖게 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북한의 핵위협, 고고도 방어 미사일 사드(THAAD) 도입에서 비롯된 중국의 전 방위 보복, 소녀상 철거를 둘러싼 일본과의 외교 마찰, 미국 트럼프 새 정부의 심상찮은 외교 압력에 도대체 살아날 줄 모르는 경제상황, 그것도 모자라 조류독감, 구제역(口蹄疫)까지 발생해 가축들이 마구 땅에 묻히고 있으니 지금 대한민국은 안팎의 총체적 위기,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처해있음이 분명합니다.

거기다 탄핵을 기정 사실화하는 여야의 ‘잠룡(潛龍)’들이 조기 대선을 눈앞에 두고 앞 다퉈 공약을 쏟아내며 투전판의 타짜들처럼 나서고 있는 판국이라서 혼란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걱정되는 것은 탄핵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진보, 보수로 국론이 갈려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하의 추위도 아랑곳없이 해를 넘겨가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시위에 맞서 탄핵반대를 주장하는 친박 보수단체들의 태극기 시위는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보여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자신의 보신(保身)을 위해 국민을 둘로 갈라놓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실패에서 비롯된 이 상황을 수습하려 하기는커녕 설마, 위기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혼이 비정상인 사람들이 나를 엮어 몰아내려고 한다는 착각 속에 “우주가 도와줄 것”으로 믿고 그 믿음이 현실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들끓는 여론에도 아랑곳없이 시간 끌기로 버티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책임이 있는 피의자입니다. 직무는 정지된 상태이며 자신을 보좌하던 비서실장, 장관, 수석비서관, 그 밖의 전 현직 관련자들이 줄줄이 구속돼있고 사건의 당사자 최순실 씨 또한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박 대통령은 그들과 공범관계로 적시된 신분입니다.

탄핵이냐? 기각이냐?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천 길 벼랑 위에 서 있다. 과연 그의 운명은 어떻게 판가름 날 것인가. /Newsis

나는 지난해 11월 22일 자 본란 ‘진퇴유곡’에서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전제로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필자 개인의 생각이었지만 그것은 광장의 수백만 촛불민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퇴진은커녕 자신에게 쏠려있는 의혹에 대해 “아니다,” “모른다”로 일관하면서 뻔한 거짓말과 꼼수를 동원해 시간 끌기로 반전을 꾀해오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초기만 해도 “국민께 죄송하다”라고 머리를 숙이며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더니 어느 사이 그 모습은 사라지고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이 핑계, 저 핑계로 검찰의 수사도,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품격을 또 한 번 떨어뜨리는 비열한 행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평소 ‘법과 원칙’을 유난히 강조해 온 박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미운 사람을 심판할 때에만 쓰고 자신에게는 예외가 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법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탄핵이 가결되면 박 대통령은 그 즉시 대통령직을 상실해 청와대를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자리를 내려오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탄핵이 될 경우 박 대통령은 법에 보장된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말이 탄핵이지 탄핵이란 일반 공무원으로 치면 ‘파면’을 당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정상적으로 퇴임을 하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생활비로 현직의 95%에 해당하는 연금도 받고 거처 경비와 신변 경호원도 있고 3명의 비서관(1급 1명 2급 2명)에 운전기사도 보장됩니다. 사망하면 국립현충원의 대통령 묘역에 안치되는 특권도 누립니다.

하지만 탄핵을 당하면 경비, 경호 이외의 모든 예우가 상실됩니다. 박 대통령도 그것을 잘 알 것입니다.

지금 봐서는 누구도 결과를 낙관하지 못합니다. 광장의 촛불시위가 기세 등등하던 초기에는 탄핵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였지만 일부 헌재 재판관들의 임기가 맞물리고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 작전이 주효(奏效)해 결과를 점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온갖 설만 무성한 채 양쪽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탄핵이 되던, 기각이 되던 우리 사회는 또 한바탕 후유증을 앓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가결이 되면 보수단체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요, 기각이 되면 더 큰 촛불민심의 반발 또한 상상할 수 없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박 대통령은 일생일대의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 길은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선택의 갈림길이 아니고 천 길 벼랑 위의 막다른 길입니다. 자진 사퇴하느냐, 탄핵을 당하느냐의 절박한 시점에 서있는 것입니다.

현재 가장 좋은 방법은 대통령직을 스스로 사퇴하는 것입니다. 탄핵을 당하느니 마음을 비우고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을 내려놓는 일 말입니다. 그리고 국정을 파탄 낸 과오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청와대를 나오십시오. 지금 박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이번 탄핵 사건은 결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닙니다. 누구를 파탄내기 위한 공작도 아닙니다. 박 대통령의 무분별한 국정농단에 따른 범죄를 가리는 일일 뿐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죄 값을 치르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면 되는 일입니다. 국론이 갈려야 할 사안도 아니고 보수, 진보가 싸워야 할 일도 아닌 것입니다.

사퇴에도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늦었지만 그것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고집으로 일관하다 탄핵을 당하느냐, 헌재의 판결 전에 사퇴를 하느냐, 그것은 전적으로 박 대통령의 판단에 달려있습니다.

사촌 형 부인 김종필 전 총리는 “5천만 명이 내려오라고 해도 안 내려 올 사람”이라고 박 대통령을 혹평했다지만 지나친 고집은 몸을 상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고집을 꺾고 사퇴하는 것만이 자신에게도 좋고 나라를 위해서도 좋을 것입니다. 그게 정답입니다.

박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다음 국립현충원에 잠들어있는 존경하는 아버지, 어머니 곁에 누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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