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습니다. 반갑게도 눈이 왔습니다. 어느 누군가 함부로 칠해 놓은 얼룩에 신음하는 세상을 순백으로 포근히 감싸려는 듯 그렇게 살포시 눈이 왔습니다. 요란했던 세상도 잠시 포근함을 덮고 조용히 잠이 드는 것 같습니다.
겨울답지 않게 눈도 오지 않고 춥지도 않은 철없음에 이 시절이 많이 아쉬웠는데, 오늘에야 그 마음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세 사라져 버림에 그리움이 들기도 하지만, 잠시 순백의 포근한 이불을 덮을 수 있어 그래도 위안이 됩니다.
눈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윤동주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