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하며>

거짓말 전성시대

 

-100년 전 이 땅의 선각자들은
 
거짓말하는 버릇을 고치자고
 소리 높여 민족개조를 외쳤었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거짓말이 넘쳐난다-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도산(島山) 안창호선생(1878~1938 평남강서)이 청운의 큰 뜻을 품고 미국유학길에 오른 것은 1902년 10월 14일이었습니다.

그가 미국에 건너간 것은 선진국의 앞선 제도를 배워 조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교육입국이 목적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습니다. 25세라는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의 생각은 “미국의 교육을 제대로 알려면 기초부터 몸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산은 18세까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미국의 교육법 규정에 걸려 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이 커지자 그를 아끼는 주위사람들이 “동양인인 당신의 얼굴을 보고는 백인들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으니 그냥 18세로 속이고 학교에 들어가라”는 편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도산은 주위의 조언에 정색을 하며 “우리나라가 망하게 된 것이 거짓말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지도자들과 거짓된 백성들 탓에 나라가 망했는데 그런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미국까지 온 내가 거짓말로 학교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학교를 못 다닐망정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라고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때 다행히 청년 도산의 기개와 진심을 전해들은 여교장이 “18세까지의 법은 미국인을 위한 법이요, 안창호는 조선인이니 법에 저촉되지 않을 수 있소”라는 융통성 있는 해석으로 그를 입학시켜 주었습니다. 그의 바르고 정직한 태도가 교장의 마음을 움직여 어려운 입학의 특전을 베풀어 준 것입니다.

도산 선생은 고국에 돌아와 자신이 설립한 국민계몽단체 흥사단(興士團)을 이끌면서 강연을 통해 청년들에게 역설했습니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꿈속에서라도, 죽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도산선생은 “우리 민족이 독립하려면 모든 것을 개조해야한다”면서 “그 첫 번째로 거짓말 하는 나쁜 버릇을 고쳐야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일본식민지시대 육당(六堂) 최남선(1890~1957·한성,작가), 벽초(碧初) 홍명희(1888~1968·충북괴산,임꺽정작가) 와 함께 조선의 3대천재중 한사람이었던 춘원(春園) 이광수(1892~1950·평북정주)는 그 뛰어난 문재(文才)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생전의 친일행적이 흠이 되어 민족을 배신한 인물로 빛이 바랜 채 역사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춘원은 소설 ‘무정’을 비롯해 ‘흙’ ‘마의태자’ ‘원효대사’ 등 소설과 시, 평론 등 많은 작품으로 명성을 쌓았고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조선의 연인’ 이란 애칭을 얻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조선 사람은 나태한 민족임으로 도덕적으로, 민족적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민족개조론’의 발표를 계기로 큰 수난을 당했습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다시 거짓말을 낳는 게 거짓말의 악순환입니다. 거짓말 없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Newsis

춘원은 1922년 5월 ‘개벽’지에 실린 ‘민족개조론’에서 우리민족을 가리켜 ①거짓말 잘 하는 민족 ②탁상공론만 하는 민족 ③표리부동하고 의리 없는 민족 ④고지식하고 결단력이 없는 민족 ⑤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민족 ⑥전문기술이 없는 민족 ⑦절약을 모르고 낭비하는 민족 ⑧위생관념이 없고 더러운 민족 등 여덟 가지를 들어 조선민족을  구제불능의 민족으로 단정한 것입니다. 

글이 나가자마자 조선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고 춘원은 곧 공격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출판사인 ‘개벽’사에는 흥분한 민중들이 몰려들어 집기를 때려 부수는 소동이 벌어졌고 어떤 사람은 이광수의 집에 칼을 들고 침입하는 사건마저 일어났습니다. “할 말을 했다”는 이도 있었지만 “민족의 배신자”라는 비판이 들끓었던 게 당시의 상황이었습니다.

이광수뿐 아니라 최남선 또한 1928년 발표한 ‘역사를 통하여 본 조선인’이란 글에 ‘거짓말 잘하는 민족’으로 우리 민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친일행적이 거듭돼 독립운동 공로도 보람 없이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짓말은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남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거짓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때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곤궁한 처지를 피하고자 하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고 터무니니 없는 ‘새빨간 거짓말’도 있습니다. 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일을 조작해 말하는 습관적 거짓말도 흔히 보는 일입니다. 그것이 어느 것이든 거짓말은 남을 속이는 것이기에 다른 말로하면 사기(詐欺)가 분명합니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마련입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필연적으로 거짓된 사회가 됩니다. 거짓된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돼 불신사회가 됩니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거짓말을 하는 경우 중벌(重罰)을 받습니다. 모든 선진국이 그렇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거짓증언은 엄청난 형벌을 받습니다. 1974년 닉슨대통령은 거짓말 몇 마디로 대통령직을 잃었습니다. 사건의 핵심인 워터게이트 도청, 그 자체보다도 “나는 몰랐다”는 거짓말이 결정타가되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 또한 단순한 성적스캔들이 탄핵으로 갔던 것 역시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일본의 한 잡지는 “한국인은 숨 쉬 듯 거짓말을 한다”고 특집을 실어 인터넷을 달구었습니다. 내용인즉슨 한국에서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은 일본의 66배, 인구대비로는 165배라면서 “한국은 세계제일의 사기대국”이라고 보도한 것입니다.

잡지는 2013년 기준, 한국의 사기범죄 발생건수는 27만4000건인데 반해 일본은 3만8000건이었다고 수치까지 자세히 나열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일본이 1억2700만, 한국이 5200만이니 단순비교로 봐도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사법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수평비교는 무리가 있기는 합니다. 그렇긴 해도 수자로만 본다면 한국의 사기 범죄가 월등한 것은 분명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대통령의 탄핵으로까지 이어진 최순실 비선실세 조사를 지켜보면서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100년 전이나 오늘이나 거짓말을 잘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국회 국정조사청문회에서도 그렇고 특검조사에서도, 검찰조사에서도 피의자나 증인, 참고인들의 증언을 듣고 있노라면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국민들의 눈에도 거짓말을 손바닥 뒤 짚 듯 가볍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도 예사로 거짓말을 하고 재벌회장도 거짓말을 하고, 장관도 거짓말을 하고, 국회의원도 거짓말을 하고, 대학총장도, 교수도, 대통령 비서실장도, 수석비서관도, 거짓말을 합니다. 의사도, 군인도, 회사원도, 피의자도, 증인도 예외 없이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에는 지위 고하가 없는 듯 마치 ‘거짓말 경연대회’라도 열린 것처럼 앞 다퉈 거짓말을 합니다. “아닙니다,” “모릅니다” 일색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의아한 것은 보통 국민의 눈으로 보아서는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니고 진실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귀신이 곡 할 정도의 능청스러운 거짓말 ‘연기’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100년 전 선각자들이 제기했던 “거짓말하는 못된 버릇을 고치자”는 ‘민족개조론’의 우국충정을 이제야 비로소 알듯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을 이기는 나라, ‘거짓말 공화국.’ 양심회복운동이 시급합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대청소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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