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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 귀 떨어진 것,” 어린애 입빠른 것 ‘못지∨않게/못하지∨않게’ 쓰잘 데 없는 것이오니, 선생님께서는 아무쪼록 침작하시지 않으심이 옳을까 합니다.[이문구, 《토정 이지함≫ 속담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이문구(李文求)는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1959년 중학교 졸업 후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였다. 1963년 ≪다갈라 불망비≫와 1966년 ≪현대문학≫에 이가 게재된 것을 계기로 등단하였다. ≪관촌수필≫은 1950-70년대 농촌을 묘사함으로써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현재의 황폐한 삶에 대비시켜 강하게 표현하였다.소설집은 ≪암소≫, ≪장한몽1, 2≫, ≪매월당 김시습≫, ≪장동리 싸리나무≫ 등이 있으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08.0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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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땔감을 거두는 것만을 생각할 뿐 나무를 기를 계획은 전혀 세우고 있지 않고 있으니 “아홉 길 깊은 샘물은 파지 ‘않고/안고’ 소 발자욱에 고인 물만 기대하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 속담은 “앞날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그때그때만 때워 넘기려 한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옛 풍광과 역사를 바라보는 단양팔경(4)“하선암”은 단양군 단성면 선암계곡로 1337에 위치하고 있다. 삼선구곡(三仙九曲)이라고 불리는 선암계곡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바위들이 있다. 그중 하선암은 단양팔경의 제6경으로 3단으로 이루어진 흰 바위가 넓게 마당을 내어주고 그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러니 앉아 있는 형상이 미륵 같다 하여 부처바위[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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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8.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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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수 아버지 말에 “‘가타/가하다’부타 말이 없이,” 한참 동안 저쪽을 보며 곰방대만 빨고 있었다.≪송기숙, 자랏골의 비가≫ 속담은 “옳다 그르다, 좋다 싫다 하는 아무런 의사 표시가 없다.”라는 말이다.송기숙(宋基淑)은 1935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장흥고등학교를 나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4년 ≪현대문학≫에 평론 이 추천되었으며, ≪녹두장군≫(1987∼1994)은 동학혁명의 전 과정을 다루었다.소설로는 ≪암태도≫, ≪개는 왜 짖는가?≫,《오월의 미소》 등을 썼으며, 산문집으로는 ≪녹두꽃이 떨어지면≫, ≪교수와 죄수 사이≫,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 등이 있다.옛 풍광과 역사를 바라보는 단양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07.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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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작은아들을 하늘같이 믿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꼭 ‘그렇지 않았다/그렇잖았다.’ “사람의 마음은 한 치 건너 두 치”라고.≪조정래, 한강≫ 속담은 “사람의 마음이란 작은 차이에도 마음 씀씀이가 매우 달라진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조정래(趙廷來)는 1943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광주서중학교, 서울보성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0년 ≪현대문학≫ 6월호에 ≪누명≫이 첫 회 추천되어 등단하였고, 12월호에 ≪선생님 기행≫이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주요 작품으로 ≪유형의 땅≫, ≪인간의 문≫, ≪메아리 메아리≫, ≪태백산맥≫, ≪황홀한 글감옥≫, ≪정글만리≫ 등을 출간하였다.옛 풍광과 역사를 바라보는 단양팔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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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7.1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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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팔방이 절망의 두꺼운 벽으로 둘러‘ 쌔여/싸이어’ 있다. 길림으로 간다지만 “아홉 마리 소 중의 터럭 하나 도움이 될는지” 제 집에 불이 났는데 남의 집 불을 꺼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박경리, 토지≫ 속담은 “뭔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뜻으로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박경리(朴景利)는 1926년 경상남도 충무시(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거쳐,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하였다. 1955년 ≪현대문학≫에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을 발표하였고, 1956년 으로 추천이 완료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장편 소설로 ≪성녀와 마녀≫, ≪여원≫,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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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7.1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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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를 ‘뉘어/누이어’ 놓고 그들은 그 위에서 피곤한 몸을 푼다.≪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李御寧)은 1934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다. 부여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서울대학교 국문학 석사, 단국대학교 국문학 박사를 취득하였다.주요 작품으로 평론 ≪이상론≫, ≪해학의 미적 범주≫, 소설집 ≪환각의 다리≫, ≪둥지 속의 날개≫, ≪무익조≫, 수필집 ≪신한국인≫, ≪지성의 오솔길≫,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을 출판하였다.“조헌(趙憲, 1544∼ 1592)”은 본관 백천(白川)이며 중종 39년(1544) 6월28일 김포군 감정리에서 부친 응지와 모친 용성 차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도원·후율이라 했고,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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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7.0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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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산이 ‘막혀/막히어’ 못 오며 물이 막혀 못 옵니까? “토란 잎에 이슬” 같은 우리 인생, 양반이나 중인이나 한번 가면 돌아올 줄 모르는 저승길이 되옵니다.≪오성찬, 한 공산주의자를 위하여≫ 속담은 “인생살이가 아주 허망하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오성찬은 1940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1969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별을 따려는 사람들≫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주요 작품으로 ≪별을 따려는 사람들≫, ≪한라산≫, ≪습작우화≫, ≪보제기들은 밤에 떠난다≫, ≪우리 시대의 애가≫, ≪슬픈 몽골반점≫ 등을 남겼다.‘신석구(1875. 5. 3.~1950. 10. 10.)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충청북도 청주(옛: 청원(淸原) 출신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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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6.2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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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도 얼마 안 남았고, 한 시간씩만 빨리 일어나면 ‘돼/되어’요. “가난이 일찍 철들게 하고 효자도 만든다더니” 아들은 이렇게 대견스럽게 말했다.≪조정래, 한강≫ 속담은 “가난에서 벗어나려 이런저런 궁리도 하고 실제 일도 하게 되니 일찍 철들고, 효자가 되기 쉽다.”라는 뜻이다.조정래(趙廷來)는 1943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광주서중학교, 서울보성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0년 ≪현대문학≫ 6월호에 ≪누명≫이 첫 회 추천되어 등단하였고, 12월호에 ≪선생님 기행≫이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주요 작품으로 ≪유형의 땅≫, ≪인간의 문≫, ≪메아리 메아리≫, ≪태백산맥≫, ≪황홀한 글감옥≫, ≪정글만리≫ 등을 출간하였다.‘신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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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6.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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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기르다 보면 반 의원도 되고 반 무당도 된다.”는 말이 있다. 그냥 ‘둬/두어’도 나을 병인지,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거짓말인지 참말인지…할머니들은 신통하게 잘 알고들 계신다.≪김대행, 문학이란 무엇인가≫ 속담은 “아이를 기르다보면 온갖 정성과 노력이 들어야 한다.”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산막이옛길”은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산막이옛길 88에 위치한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 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연결됐던 총 길이 4km의 옛길로서 흔적처럼 남아있는 옛길에 덧그림을 그리듯 그대로 복원된 산책로이며 옛길 구간 대부분을 나무받침(데크)으로 만드는 친환경 공법으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여 살아있는 자연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막이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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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6.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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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해/하여’서 못 당하는 일이 없다”는 속담도 있고 생각하기보다 당하기가 낫다는 옛말도 있다. 사람에게 있어 죽음보다 더 무섭고 겁나는 일은 없지만 죽음 그 자체보다는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 더 무서운 것이다.≪원종익, 생각하기보다 당하기가 낫다≫ “화양구곡(華陽九谷)”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202에 위치하고 있다. “화양구곡”은 1975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4년 국립공원에 편입되었으며 청주에서 동쪽으로 32㎞ 지점인 청천면 화양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청천면 소재지로부터 송면리 방향 9km 지점에서 3km에 걸쳐 화양천을 거슬러 올라가며 좌우에 산재해 있는 명승지이다.넓게 펼쳐진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의 울창한 숲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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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6.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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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리뼈가 맏아들이다,” 정강이가 맏아들보다 낫다, 발이 의붓자식보다 낫다. ‘나아/나’가서는 발이 효도 자식보다 낫다는 속담이 생기게 된 것이다.≪이응백,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서≫ 속담은 “다리가 튼튼하면 마음 놓고 행동 할 수 있어 마치 맏아들처럼 소중하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이응백은 1923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1949년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서울대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주요 저서로는 ≪한글 맞춤법 사전≫, ≪국어과 학습에 있어서의 단어지도문제(國語科 學習-單語指導問題)≫, ≪방송과 언어≫, ≪현대인명지명에 쓰인 한자조사(現代人名地名-漢字調查)≫, ≪국민학교 학습용기본어휘(學習用基本語彙)≫ 등을 남겼다.‘연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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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5.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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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란 잘 길러야 반 타작,” 예부터 전해온 이런 말은 ‘무엇이/뭣이/무에’ 의미할까. 대역이란 천연두병이며 소역이란 홍역을 의미한다.≪유안진, 도리도리 짝짜꿍≫ 속담은 “병을 제대로 고칠 수 없었던 옛날, 자식을 많이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라는 뜻에서 비롯된 말이다.유안진(柳岸津)은 1941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임동초등학교, 대전여자중학교, 대전호수돈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65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현대문학≫에 1965, 1966, 1967년 3회에 걸쳐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달≫, ≪별≫, ≪위로≫가 실리며 등단하였다.주요 작품으로 시집 ≪절망시편≫, ≪물로 바람으로≫, ≪날개옷≫, ≪달빛에 젖은 가락≫,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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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5.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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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후분이 좋으려면 초년 고생을 한다더니 계옥이 좋으려고 그렇던지, 사사이 괴어 돌아가 ‘온갖/온가지’ 일을 모두 “마른 수숫잎 틀리듯” 벗나는 때라.≪육정수, 송뢰금≫ 속담은 “일이 잘 되지 않고 어긋난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육정수(陸定洙)은 생몰년 미상의 신소설 작가이며, 신문학운동에 공헌이 많으며, 1908년 신소설 ≪송뢰금(松籟琴)≫을 발표하였다.‘변영봉(1886. 12. 26.~1952. 11. 15.)’은 충청북도 청주 출신이다. 충북 청주군(淸州郡) 북일면(北一面) 우산리(牛山里)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질 때, 청주군 북일면에서는 3월 21일 민문식(閔文植) 등 천도교인 10여 명이 주동하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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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5.1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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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수컷/숳것/숫것’이라고 다리 들고 오줌 누는 것은 일찌감치 배웠어! 선우지숙은 “콩밥은 누를수록 좋다”는 말을 늘 생각했다.≪한승훈, 까마≫ 속담은 ‘못난 사람은 못난 짓을 할수록 다루기가 좋다,’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한승원(韓勝源)은 1939년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면 신상리에서 태어났다. 장흥중학교을 거쳐, 장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19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로 입선하고, 그해 ≪대한일보≫에 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주요 작품에 ≪불의 딸≫, ≪아제 아제 바라아제≫, ≪아버지와 아들≫, ≪시인의 잠≫, ≪아버지를 위하여≫ 등이 있고, 동화 ≪어린 별≫, ≪우주 색칠하기≫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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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5.0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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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에 ‘좁쌀/조쌀’ 두 홉 모아 두면 정승을 이 사람아 부른다더니” 기껏 시골 장사치로 사과네 선달입네 사고 팔아 눈에 보이는 게 없구먼.≪황석영, 장길산≫ 속담은 ‘아주 하찮은 재물이나 권세를 믿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두고 빗대는 말이다.황석영(黃晳暎)은 1943년 중국 만주 장춘(長春)에서 출생했으나 8·15해방 후 서울에서 성장했다.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 철학과 졸업하였다.1962년 ≪사상계≫ 신인상에 이 입선된 후 10여 년 간 떠돌이 생활과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문학 활동을 중단했다. 1970년 이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당선되면서 창작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대표 작품으로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가는 길≫, ≪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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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5.0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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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주체 초대 대의원을 지낸 ‘셋방/세방’의 팽만돌 씨에게 여지없이 “코뚜레를 잡힌 신세”가 되어 방세를 주든 말든, 유신찬가를 읊든 말든 일체의 대꾸를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상락, 10·26은 일어나지 않았다≫ 속담은 “약점을 잡혀 꼼짝 못하게 된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이상락은 1954년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다. 1985년 ≪실천문학≫에서 ≪난지도의 딸≫로 문단에 등단하였다.주요 작품으로 ≪난지도의 딸≫, ≪지구는 가끔 독재자를 중심으로 돈다≫, ≪동냥치별≫, ≪광대선언≫, ≪누더기 시인의 사랑≫ 등을 발표하였다.이 몸이 자라난 것은 아버지가 낳고 어머니가 길러주심이니,어버이의 은혜와 덕은 하늘처럼 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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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4.2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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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숙이 곁에 모실 때는 대신들이 어디라 감히 버릇없는 언행을 못하더니, 지금은 자기네끼리의 ‘사삿일/사사일/사사닐’이며 음담패설까지도 하는 것이었다.≪김동인, 대수양≫김동인(金東仁)은 190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덕소학교, 평양 숭실고등보통학교 수료하고, 일본 도쿄 메이지 중학교, 일본 메이지가쿠인 대학교를 졸업하였다.주요 작품으로 ≪배따라기≫, ≪감자≫, ≪광화사≫, ≪붉은 산≫, ≪운현궁의 봄≫, ≪광염소나타≫ 등을 남겼다.“운보의 집”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 2. 18.~2001. 1. 23.)의 어머니 고향으로 1976년 부인(우향 박래현)과 사별한 후 1984년 운보의 집을 완공하였다.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이곳에 정착하여 자연을 벗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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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4.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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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속에 든 복은 누가 훔쳐 가지도 못하고 속이지도 못하는 법,” 신랑이든 신부든 제 복만 있다면 비록 혼인식이 초라했을망정 ‘훗날/후날’ 잘 사는 법이요.≪최래옥, 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다≫ 속담은 “제가 타고난 복은 누구라도 어쩌지 못한다.”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최래옥은 1940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주요 작품으로 ≪감기 걸리면 왜 콧물이 나오나≫, ≪천냥짜리 입담≫, ≪하늘님, 나라를 처음세우시고≫, ≪그래 그래, 좋아 좋아≫ 등이 있다.부처님의 법문이 머문 곳, 법주사(7)‘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보물 제1361호이며, 불상의 크기는 높이 235cm, 너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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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4.1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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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동은 “‘텃세/터세’ 높는 똥개”처럼 알 듯 모를 듯 우쭐대고 최선경은 나들이 길에 집을 잃은 영악한 발발이처럼 슬프게도 당황하고 있는 것이었다.≪천승세, 사계의 후조≫ 속담은 “제 연고지라는 것을 믿고 괜스레 우쭐댄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천승세(千勝世)는 1939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목포고등학교를 나와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점례와 소≫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내일≫, ≪포대령≫, ≪감루 연습≫, ≪황구의 비명≫, ≪혜자의 눈꽃≫, ≪선창≫ 등이 있다.부처님의 법문이 머문 곳, 법주사(6)‘법주사대웅전소조삼불좌상’은 보물 제1360호로 지정되었으며, 불상 크기는 비로자나불 509㎝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04.0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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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일/나라일’은 전례를 따르고 집안일은 선조를 따른다”는 말이 있으니, 비록 내 뜻대로 결정하여 이렇게 할 수 는 없으나, 사리로 보아서는 의당 이와 같이 해야 하는 것이다.≪조선왕조실록(정조)≫ 속담은 “나랏일이나 집안일은 앞서 지켰던 전범이나 조상들이 행했던 바를 따르리라.”라는 뜻이다.정조(正祖)는 조선 제22대 왕(1752~1800)이다. 이름은 산(祘)이고, 자는 형운(亨運)이며, 호는 홍재(弘齋)이다. 시호는 문성무열성인장효왕(文成武烈聖仁莊孝王)이다. 탕평책을 써서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실학을 크게 발전시켜 조선 후기 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룩하였고, 재위 기간은 1776~1800년이다.부처님의 법문이 머문 곳, 법주사(5)‘신법천문도병풍’은 보물 제848호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03.28 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