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덕(權秉悳, 1868. 4. 25.∼1943. 7. 13.)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종암리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33인 민족대표로 참여한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 권문영(權文永)과 어머니 신문화(申文嬅)사이에서 태어났다. 호(號)는 우운(又雲)·청암(淸菴)·정암(貞菴), 자(字)는 윤좌(潤佐)이다.어려서 경북 상주로 이사하여 한학을 배운 뒤, 1876년 다시 미원 용곡리로 돌아왔다. 1885년에 스승 임약호(任弱鎬)의 권유로 동학(東學)에 들어가 최시형을 만난 뒤 동학의 연구에 매진하였다. 1887년에는 부친의 명으로 과거를 보았으나, 급제하지는 못하였다. 이해 보은에 동학의 육임소(六任所)가 설치되자 중정(中正)의 직책을 맡았다.1894년에 동학혁명 때 손병희(孫
곽재기(郭在驥, 1893. 2. 7.∼1952. 1. 10.)는 충청북도 청주 강외면(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상봉 출신으로 항일운동가(抗日運動家)이다. 활동 당시 김광삼(金光三), 김재만(金在萬)이라는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 본관은 현풍(玄風), 자(字)는 경(敬)으로 곽지엽(郭芝燁)의 아들이다.서울의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청주 청남학교(靑南學校)의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을 가르쳤다. 1909년 교사로 재직할 당시 항일비밀단체인 대동청년당(大同靑年黨)의 당원이 되면서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태극기를 제작하여 적극 시위 운동에 참가하였고 이 일로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바로 풀려났다. 그
충정영당(忠靖影堂)은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농소리 9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충북 유형문화재 제160호이다.1401년(정종1)에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여 좌명공신(佐命功臣) 3등에 오른 마천목(馬天牧)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영당 앞에는 시멘트가 깔려 있어 주차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수풀 사이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영당 입구에 도달하게 된다. 담벽 앞에 마천목의 영당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현재의 영당은 1942년에 세우고 1982년에 보수하여 정면 3칸, 측면 2칸의 부연을 달지 않고 처마 서까래만으로 된 처마[홑처마]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내부는 통간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과 좌우에 대문 옆에 있는 작은 문[협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마당 앞에 대문간이
을축갑회도 및 죽림갑계문서(乙丑甲會圖 및 竹林甲稧文書)은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원통리 401번지에 소장되어 있다. 충북 유형문화재 제135호(1983. 11. 30.)이다.을축갑계(乙丑甲契)는 1625년(인조仁祖3) 을축생(乙丑生) 7명의 선비가 36세가 되던 1660년(현종顯宗1)에 친목 모임을 조직하였다. 계원은 ‘민광도(閔光道), 민광시(閔光時), 변숙(卞潚), 신영식(申永植), 왕린(王潾), 이후직(李後稷), 지성구(池聖龜)’ 등으로 평생을 두고 신의가 두터웠다. 그 후손들도 이들의 뜻을 받들어 친교를 이어 나가고 있다.을축갑회도는 1686년(숙종12)에 계원들이 62세가 되는 가을에 중국 당나라 낙양의 기영회(耆英會)의 고사와 같이 사람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 각기 나누어 가진
충북 유형문화재 제135호(2001. 12. 11.)로 지정된 죽림영당(竹林影堂)은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원통리 40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운 좋게 ‘죽림영당진입로’라는 표지석을 만나 원통리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싱싱한 회양목이 양 옆으로 서서 방문객을 맞이한다.돌로 만들어진 경사로 끝자락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죽림영당. 방문한 날은 내부 문을 활짝 개방해 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 안에 걸린 ‘칠현갑회도(七賢甲會圖)’를 이렇게 수월하게 만나게 되다니 운이 좋다 해도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죽림영당(竹林影堂)은 1696년(숙종22)에 ‘민광도(閔光道, 1625~1713), 민광시(閔光時, 1626~1696), 변숙(邊淑, 1625~1695), 신영식(申永植, 16
충북 유형문화재 제160호(1987. 3. 31.)인 윤관(尹瓘) 영정(影幀)은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용계내추로 413-8번지에 있다.윤관(尹瓘) 영정 중 문관상(文官像) 1폭은 관복 차림으로 호랑이 가죽으로 덮여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은 가로 65cm, 세로 110cm로 되어 있다.무관상(武官像) 1폭은 갑옷을 입고 활을 들고 있는 전신입상(全身立像)으로 가로 75cm, 세로 170cm이며, 1980년 민복진(閔福鎭)이 그린 것이다.원래 함경북도 북청군 소재의 파평 윤씨(坡平尹氏)의 사당인 만뢰사(萬賴祠)에 봉안하고 있었으나 두 영정을 형체를 그대로 그려 1902년에 이곳으로 가져와 문숙영당(文肅影堂)에 모시고 있다.윤관(尹瓘, ?∼1111년)은
문숙영당(文肅影堂)은 1910년, 고려시대 중기에 여진족을 정벌한 윤관(尹瓘) 장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곳으로,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내추리 211-6번지에 위치하고 있다.문숙영당은 북이면의 넓은 들을 마주한 문숙공원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다. 문숙공원을 알리는 표지석을 만난 반가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곳에 세덕사(世德祠)가 함께 있음에 놀라움이 생긴다. 문숙영당은 1987년 충북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된 윤관(尹瓘) 장군(將軍)의 영정(影幀)을 모신 곳이고, 세덕사(世德祠)는 윤형을 제사지내는 공간이다.문숙공원 안쪽으로 넉넉하게 마련된 주차장에 타고 간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니 중앙에 서있는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무성한 나뭇잎과 그 몸체가 하늘을 향해 늠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