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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은 달놀이에서 돌아온 친구들이 왁작 떠들어대는 소리를 ‘어렴풋이/어렴풋히’ 들으며 “코를 베어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홍석중, 황진이≫ 속담은 “어떤 짓을 해도 정신을 못차릴 만큼 깊이 빠졌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홍석중은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김일성 종합대학 어문학를 나왔다. 소설 ≪황진이≫는 남한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출판 허가를 받은 최초의 북한 문예 작품이다. 북한의 유명 작가의 문학 작품이 남한에서 출판된 대표적 예로는 백남룡의 ≪벗≫, 홍석중의 장편 역사소설 ≪높새바람≫ 등이 있다.“진천 배티 성지[鎭川 梨峙 聖地]”는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배티로 663-13에 위치하며, 기념물 150호(2011. 3. 4.)이다.‘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01.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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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싹수가 노랑 싹수여. 그래도 명색이 한나라 정치를 한다는 놈덜이, “다람쥐 살림에도 규모가 있고, 뚜께비 눈 ‘깜짝이/깜짜기’에도 요량이 있는 것인디.”≪송기숙, 자랏골의 비가≫ 속담은 “어떤 일을 해도 규모와 요령이 있게 해야지, 막무가내로 하는 것이 아니라.”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송기숙(宋基淑)은 1935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장흥고등학교를 나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현대문학≫에 평론 ≪창작 과정을 통해 본 손창섭≫(1964)이 추천되었으며, ≪녹두장군≫(1987~94)은 동학혁명의 전 과정을 다루었다.주요 작품으로 소설 ≪암태도≫, ≪개는 왜 짖는가?≫,《오월의 미소》 등을 썼으며, 산문집으로는 ≪녹두꽃이 떨어지면≫,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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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1.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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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젊은 친구는 “낙양의 지가를 올린” 천재 작가요 나는 번역 ‘부스러기/부스럭이’나 하는 뭐 그런 처지지만 적어도 문필에 뜻을 두고 있는데 그만한 이래를 못하겠나.≪박경리, 토지≫ 속담은 “책이 무척 많이 팔린다.”라는 뜻으로 비유하는 말이다.박경리(朴景利)는 1926년 경상남도 충무시(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거쳐,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하였다. 1955년 ≪현대문학≫에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을 발표하였고, 1956년 ≪흑흑백백≫으로 추천이 완료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주요 작품으로는 장편 소설 ≪성녀와 마녀≫, ≪여원≫,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 등과 산문집 ≪Q씨에게≫, ≪원주통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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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5.12.2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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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박을 당하고 떼구루루 굴러서 ‘오뚝이/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나 앉던 것을 생각해 보고는 혼자 웃었다.≪염상섭, 무화과≫염상섭은 1897년 8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07년 관립사범부속보통학교(官立師範附屬普通學校)에 입학하였고, 1912년 보성중학교를 거쳐 일본에 건너가 1918년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예과에 입학하였다.문예 전문지 ≪폐허(廢墟)≫의 동인 활동을 계기로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면서 한국 근대문학을 앞장서서 이끌게 되었고, 1924년 8월에 첫 창작집 ≪해바라기≫를 출간하였다. 1922년 중편소설 ≪만세전≫을 집필, 연재함으로써 그의 뛰어난 현실 인식이 확인되었으며,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고 반일 감정을 리얼리즘으로 표현하였다.주요 작품으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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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5.12.2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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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선생께서는 천여 명의 많은 군사로 우리를 도와주신다 하니 미쁘고/밋브고 든든하기 한량이 없습니다.≪박종화, 임진왜란≫박종화는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 사숙(私塾)에서 12년간 한학을 수업하고, 1920년에 휘문의숙(徽文義塾)을 졸업하였다. 작품 활동은 1921년 ≪장미촌(薔薇村)≫ 창간호에 처녀작 과 의 두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하였다.주요 작품으로 단편 소설 ≪아랑의 정조(貞操)≫, ≪전야(前夜)≫ 등과 장편 소설 ≪다정불심(多情佛心)≫을 잇달아 발표하여 역사소설 작가로서 재량을 인정받았다. 1942년에는 수필집 ≪청태집(靑苔集)≫을 발간하였다.청주 신채호 사당 및 묘소(淸州 申采浩 祠堂 및 墓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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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5.12.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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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기서 소동을 피워보았자 살범을 가려 낼 방도가 있을지도 의문이고 설령 “한 마라의 토끼는 잡는다손 치더라고 그 뒤에 앉은 호랑이는 ‘놓치/놓이’고 말게 되지.”≪김주영, 객주≫ 속담은 “하찮은 앞잡이는 잡아도 뒤에 도사린 큰 세력은 잡지 못한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김주영은 1939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다. 대림농림고등학교를 나와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71년 월간문학 신인상 공모에 단편 ≪휴면기≫가 당선되었다. ≪객주≫는 조선 후기 상인사회를 중심으로 근대로의 자생적 이행과정을 그린 것으로, 향토색 짙은 토속어와 속어를 거침없이 썼다.주요 작품으로는 ≪겨울새≫, ≪아들의 겨울≫,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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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5.12.0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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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에 칼라 테레비 사다 ‘바치/받치’는 건 큰 호사구 대사업이구먼? 허기는 그려. 원제 “큰 것을 봤으야 즉은 것을 알지.”≪이문구, 우리 동네≫ 속담은 “견문이 풍부해야 사리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이문구(李文求)는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1959년 중학교 졸업 후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였다. 1963년 ≪다갈라 불망비≫와 1966년 ≪현대문학≫에 ≪백결≫이가 게재된 것을 계기로 등단하였다. ≪관촌수필≫은 1950-70년대 농촌을 묘사함으로써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현재의 황폐한 삶에 대비시켜 강하게 표현하였다.대표 작품으로 ≪암소≫, ≪장한몽1, 2≫, ≪매월당 김시습≫, ≪장동리 싸리나무≫ 등이 있으며, 산문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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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5.11.3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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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긴다”고 했다. 다시 사람들을 불러 ‘일으키/이르키’리라! 이놈들! 내 이제 더는 속지 않는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뻐꾸기 울었다.≪박태원, 갑오농민전쟁≫ 속담은 “많은 사람들의 힘을 합하면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라는 뜻이다.박태원(朴泰遠)은 1909년 대한제국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경성사범학교 부설 보통학교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 대학교 법정학과 중퇴하였다.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26년 ≪조선문단≫에 시 ≪누님≫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대표 작품으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갑오농민전쟁≫ 등을 남겼다.“청주 망선루(淸州 望仙樓)”는 청주시 상당구 남사로 115에 위치하며,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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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5.11.2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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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은 영생불사할 줄 아는 멍텅구리가 곧 사람이요, “남 곯리는 게 저 곯는 게요.” 남 잡이가 저 잡인 줄을 ‘말끔/맑끔’히 들여다보면서도, 남 잡고 남 곯려서 저만 살찌겠다는 욕심쟁이가 곧 사람이다.≪이희승, 묘한 존재≫ 속담은 “남의 속을 상하게 하는 게 결국 제 속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1896년 6월 9일~1989년 11월 27일)은 1896년 경기도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현,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에서 태어났다. 1903년부터 5년간 개인 교습처럼 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1911년 9월까지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지만 일본어 강요에 반발하여 경성고보를 자퇴하고 1912년부터 1913년까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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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5.11.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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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안 잡히고 고기 작살로 잡히겠느냐?" 미쓰 조는 네 놈의 심보를 물 속 들여다 보듯 훤히 들여다 보고 네 놈 대가리 위에 앉아 있다.≪강준희, 쌍놈열전≫ 속담은 ‘미끼로 꾀어서도 안 되는 일이 강제로 되겠느냐.’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강준희(姜晙熙)는 1935년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1966년 월간 ≪신동아≫에 ≪나는 엿장수외다≫가 논픽션 공모전 당선, 1974년 ≪서울신문≫에 ≪하 오랜 이 아픔을≫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었으며, ≪하느님 전상서≫가 ≪현대문학≫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주요 작품으로 ≪신굿≫, ≪하늘이여 하늘이여≫, ≪미구꾼≫, ≪서당 개 풍월 읊다≫ 등 30여 권을 펴냈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5.11.0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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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잎사귀/잎삭위’가 떨어져 뿌리만 남게 된 뒤에라야 꽃 핀 가지가 무성하던 잎새가 다 헛된 영화였음을 비로소 알게 되고, “사람은 죽어서 관뚜껑을 덮은 뒤에라야 자손가 재물이 쓸 데 없음을 알게 된다”는 말을 덧붙여 줬네.≪한승원, 갯비나리≫ 속담은 “아무리 소중하게 여기던 것도 죽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한승원(韓勝源)은 1939년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면 신상리에서 태어났다. 장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19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로 입선하고, 그해 ≪대한일보≫에 ≪목선(木船)≫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에 ≪불의 딸≫, ≪아제 아제 바라아제≫, ≪아버지와 아들≫, ≪시인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5.11.02 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