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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경문에 막히고 사람은 인정에 막힌다지만 ‘유명자∨씨/유명자씨’만은 아무것에도 막히는 게 없었다. 약석이 무효였다. “자갈을 솥에 넣고 삶고 또 삶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김학철, 격정시대≫ 속담은 “어떤 사람을 생각대로 끌어들이거나 설득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비유하는 말이다.김학철(金學鐵[홍성걸])은 1916년 함경남도 원산 태어났다. 서울 보성고보에서 재학 중 중국 상하이로 갔다. 그곳에서 의열단의 후신인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했다.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격정시대≫, ≪20세기의 신화≫, ≪해란강아 말하라≫ 등과, 산문집 ≪우렁이 속 같은 세상≫을 출간하였다.“영춘향교(永春鄕校)”는 단양군 영춘면 영부로2884-3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10.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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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바람에 잡혀 들뜬 내가 미처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지. “밤 눈 어두운 고양이,” 그래서 근처 의원이 용한 줄 모른다는 말이 있는 게로구나.≪홍석중, 황진이≫ 속담은 ‘‘약은∨체를∨하지만/약은∨체를하지만’ 의외로 허술한 구석이 있다.’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홍석중은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김일성 종합대학 어문학를 나왔다. 소설 ≪황진이≫는 남한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출판 허가를 받은 최초의 북한 문예 작품이다. 북한의 유명 작가의 문학 작품이 남한에서 출판된 대표적 예로는 백남룡의 ≪벗≫, 홍석중의 장편 역사소설 ≪높새바람≫ 등이 있다.“봉화산 봉수지(烽火山 烽燧址)”는 진천읍 사석리 및 원덕리 산(봉화산)에 위치하며, 비지정문화재이다.옛날 통신시설이 발달하지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10.1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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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분이는 홱 ‘돌아서는∨척하다/돌아서는척하다’가, 영달의 겨드랑이 밑을 “통발에 미꾸라지 빠지듯” 잽싸게 빠져 나간다. 영달의 손바닥이 금분이의 엉덩이를 철썩 갈긴다.≪김춘복, 쌈짓골≫ 속담은 “어떤 것이 아주 잽싸게 빠져나간다.”라는 뜻으로 비유하는 말이다.김춘복(金春福)은 1938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1959년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59년 ≪현대문학≫에 단편 ≪낙인≫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1976년 ≪창작과 비평≫에 ≪쌈짓골≫을 연재하였다.주요 작품으로 ≪쌈짓골≫, ≪꽃바람 꽃샘바람≫, ≪계절풍≫ 등이 있다.“정송강사(鄭松江祠)”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송강로 523에 위치하며, 충청북도 기념물 제9호(1976. 12. 21)이다.선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10.1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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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남겨줄 샌님은 물 건너서부터 안다”고, 제가 ‘그때/그∨때’ 최가 놈과 혼인을 하려고 입을 악물리고 그리한 게지. 이종사촌은 무엇 말라죽은 게야!≪김우진, 유화우≫ 속담은 ‘어떤 사람의 됨됨이는 이미 한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다.’는 뜻으로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김우진(金祐鎭)은 1897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목포공립심상소학교 고등과 1년을 마친 뒤, 1915년 일본으로 건너가 구마모토[龍本] 농업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들어가 희곡을 전공했다.주요 작품으로 ≪난파(難破)≫, ≪산돼지≫, ≪소위 근대극에 대하여≫, ≪자유극장(自由劇場) 이야기≫, ≪사옹(沙翁)의 생활≫, ≪구미(歐美) 극작가론≫ 등을 남겼다.“김수사(金修史, 1912.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10.0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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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서 차에 태워가지고 골프치러 다녔고, 포옴 잡고 권위세우느라 영어에 능통한 최 비서 대동하고 “발가벗고 돈 한 냥 차듯” 동남아와 ‘미국∨등지/미국등지’의 외국 여행을 다녀왔다.≪강준희, 쌍놈열전≫ 속담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한다.’는 뜻으로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강준희(姜晙熙)는 1935년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66년 ≪신동아≫에 ≪나는 엿장수외다≫, 1974년 ≪현대문학≫에 ≪하느님 전 상서≫ 등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주요 작품으로 ≪하느님 전상서≫, ≪하늘이여 하늘이여≫, ≪개개비들의 사계≫, ≪염라대왕 사표쓰다≫, ≪바람이 분다≫, ≪서당 개 풍월을 읊다≫ 등을 출판하였다.“진천(鎭川) 길상사(吉祥祠)”는 충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09.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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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오나 “풀을 베면 뿌리를 없애라는” 일체로 ‘협종(脅從)∨등/협종등’은 귀화케 하옵기가 여반장이오나 한 가지 큰 화근이 있습니다.≪이해조, 화의 혈≫ 속담은 “좋지 않은 일은 그 근원까지 없애야 한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이해조(李海朝)는 1869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인평대군 10대손으로 아버지 철용과 어머니 청풍 김씨 사이의 맏아들이다. 할아버지 재만은 대원군의 참모로 활동하다 1883년 민씨 정권에 의해 처형되었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워 19세에 과거 초시에 합격했으나 신학문과 접하면서 신소설 창작에 뜻을 두었다. 1903년 양기탁·주시경·노익형과 ≪광무사≫를 조직해 ‘국채보상의연금’ 모금운동을 벌였다.한말에는 애국계몽운동에 기여했으나 한일합병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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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9.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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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신 ‘한∨켤레/한켤레’가 방 문턱 밑에 나란히 누워서 달빛을 깨물며 생글생글 눈웃음쳤다. “다복솔 밑에 숨은 꿩은 꼬리로 잡힌다고.”≪류영국, 만월까지≫ 속담은 “일을 미숙하게 하여 낭패를 본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류영국은 1941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났으며, 군산 사범학교를 졸업했다. 2000년 ≪국제신문≫ 장편소설 공모에서 ≪만월까지≫가 당선되면서 등단하게 되었다.주요 작품으로 ≪만월까지≫, ≪유령의 자서전≫ 등과, 산문집으로 ≪미처 못 다한 말≫, ≪먼 십릿길≫ 등을 출간하였다.“곽재기(郭在驥, 1893. 2. 7.~1952. 1. 10.)”는 충북 청주(淸州) 사람이다. 일찍이 서울에 올라와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고 다시 귀향하여 청주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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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2016.09.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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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전거를 피하다가 추럭에 ‘치는∨수가/치는수가’ 있는” 모양으로 슬픔을 가라앉히려고 술을 들이키다 도리어 덧드려서 몸부림치며 우는 수가 많았다.≪윤석중, 고향사에서의 객사·심훈≫ 속담은 “하찮은 것을 피하려다 큰 화를 당한다.”라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다.윤석중(尹石重)은 1911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930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24년 ≪신소년≫에 동시 ≪봄≫과 1925년 ≪어린이≫에 ≪오뚜기≫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1932년 ≪윤석중 동요집≫은 한국 최초의 창작 동요집이다.주요 작품으로 동시집 ≪어깨동무≫, ≪굴렁쇠≫, ≪잃어버린 댕기≫ 등과 동화집 ≪바람과 연≫, ≪열 손가락 이야기≫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09.0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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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만큼/날만큼’ 고맙고 기뻤다. “자식의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른 게 부모 마음이라더니.” 아빠, 버섯이 굉장히 맛있어요. 매일매일 먹었으면 좋겠어요.[조창인, 《가시고기》] 속담은 “부모는 제 자식이 잘 먹는 것만 보아도 지극한 만족감을 얻는다.”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조창인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와 중앙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주요 작품으로 ≪그녀가 눈뜰 때≫, ≪따뜻한 포옹≫, ≪가시고기≫, ≪등대지기≫, ≪첫사랑≫, ≪아내≫, ≪살아만 있어줘≫ 등을 출판하였다.“설성공원(雪城公園)”은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설성공원길 28에 위치하고 있다. ‘경호정(景湖亭)’은 설성공원 안에 있는 정자로, 1934년에 군수 권종원(權鍾源)
황경수 교수의 우리말 길라잡이
황경수
2016.08.29 08:51